지독히도 나를 애먹였던 ‘털보’라고 불린 환자가 있었다. 그는 구레나룻과 앞가슴에 털이 수북하게 나 있었다. 하지만 털 때문이 아니라 난폭한 행동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그는 옆에서 보기에도 딱할 정도로 입만 열면 욕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간병인들도 이틀이 멀다 하고 바뀌었다. 그러자 담당의사는 내게 상담을 해보라고 했다.

“안녕하세요. 전 이 병원의 전도사입니다.”그가 나를 보더니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질렀다. “뭐야! 내가 병신이 되었으니 예수를 믿으라고 찾아왔어? 나한테 하나님을 믿으라는 소리를 하면 죽여 버릴 거야!”

온갖 욕설을 퍼붓는데 내 평생 그렇게 많은 욕을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우리 병원이 기독교 병원인 걸 알기 때문에 타 종교인들도 목회자라고 하면 무례하게 굴지 않는다.

나는 무안해서 얼굴이 벌겋게 되어 바로 나왔다. 그리고 간호사 데스크로 가서 말했다. “저 환자에게는 도저히 말도 못 붙이겠어요. 내게 욕하는 것 좀 봐요. 정신과 치료를 먼저 받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정신과로 보내야 한다는 내 말이 그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자기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한다며 나를 죽이겠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니 이쪽 병동으로는 오지 말라고 간호사들이 내게 전화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원목실로 불쑥 들어왔다. 나는 순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뜻밖의 말을 했다. “전도사라고 하셨지요? 지난번에는 죄송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를 정신과로 보내라고 했을 때는 전도사님을 찾아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가 정말 미쳐가고 있는 게 느껴져서
스스로 정신과를 찾아갔지요.”

그가 정신과에 갔더니 의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과거를 얘기해달라”라고 했다고 한다.

“저는 나이도 성(姓)도 정확하게 모릅니다. 어느 고아원에 버려졌고, 원장의 성을 따라서 이름이 지어졌고, 그때 발견된 그 나이가 지금 나이죠.”

목사가 운영하는 고아원이었는데, 원생들은 언제나 배가 고팠다. 그래서 ‘여기에 더 있다가는 굶어죽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하고 도망쳐 절로 들어갔다. 절에서는 굶기지는 않았는데 수도(修道)를 시킨다며 “물을 떠오라, 나무를 해오라”라고 하며 때리는데 그 매가 무서워서 다시 도망쳤다.

하지만 배운 기술도 없고, 학교도 다니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게 막노동 일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하철 공사장에서 선발대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일을 했다. 그렇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노름을 하고, 술을 마시며 방탕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 공사장 현장에서 암반이 떨어지면서 허리를 다쳐 하반신 마비가 됐다. 그런데 자기가 소속된 하청업체 대표는 보상해줄 능력이 안 된다고 했고, 건설회사 측은 하청 업체의 책임이라며 발뺌했다. “내가 이 꼴이 됐는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이런 세상을 왜 살아야 합니까?”

그런데 그 의사가 제 말을 다 듣더니 손을 잡으면서 ‘참 억울한 인생을 살았군요. 내가 당신이었더라도 그렇게 화가 났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지요.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러면서 그에게 지극히 정상이라고 말했다. “당신이 정상이 아니라면 제가 약을 처방해줄 수 있지만 정상이기에 도와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신 제가 예수 믿는 사람이니 당신을 위해 기도를 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했다.

‘세브란스병원이 예수쟁이 병원이라고 하더니 별짓을 다하는구나.’ 그러면서 속으로 욕을 하고 있는데 손등에 그 의사의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기도가 끝난 뒤에 의사가 서랍을 열더니 봉투에 뭔가를 넣어 주었다. “병원에 있으면 돈을 쓸 일이 많을 거예요. 아직 보상 문제가 해결이 안 됐으니 급한 대로 이거라도 보태 쓰십시오.”

그는 엉겁결에 사양도 못하고 휠체어를 밀고 진찰실에서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고 목젖이 당기면서 눈물이 흘렀다. “전도사님, 평생 저는 제대로 울어본 적이 없어요. 고아원에서는 아무리 울어도 누구 하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놀라운 말을 했다. “그 의사가 믿는 예수를 나도 믿어도 될까요?” 나는 감격하여 사영리를 전한 후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함께 드렸다.

예수님을 믿은 후, 그는 나와 같이 환자 심방을 다녔다. 또 자기는 하반신은 못 쓰지만 손은 움직일 수 있다면서 전신마비 환자들을 섬겼다. “제가 소변을 뽑아드릴까요? 매점에 가서 뭘 좀 사다드릴까요?”

모두 그를 보며 ‘예수를 믿으면 사람이 저렇게 달라지구나’ 하며 신기해했다. 그가 퇴원할 때 우리는 그를 ‘천사 털보’라고 불렀다.

퇴원 후에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그를 돌보던 간병인(권사님)의 양아들이 되었고, 그의 딱한 사정을 알고 건설회사에서 적당한 보상을 해주었으며, 좋은 여자를 만나 가정도 이루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건 불완전마비였던 그가 지팡이를 짚고 걷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못했는데 어떻게 그 의사는 한순간에 그를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처음에 내가 그를 만났을 때 말은 공손하게 했지만 속으로는 그를 판단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겉으로 친절히 대했어도 그는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의사는 진심으로 그를 만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말로써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전도사가 아니라 내 몸과 물질과 시간을 바쳐서 사랑하고, 진심으로 공감해야겠구나.’

세상에 변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랑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 진실한 사랑 앞에서는 누구라도 변화될 수 있다.

† 말씀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로마서 12장 15절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한일서 4장20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한일서 4장 7절

† 기도
주님, 사람들을 나의 임의로 판단하고 진심으로 대하지 않은 것을 회개합니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자로써,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나의 진심과 시간과 물질을 바쳐 다른 이들을 사랑하기로 결단합니다. 저를 도와주소서.

† 적용과 결단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진실한 사랑으로 내게 보내신 모든 이들을 대하기로 결단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