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정선희의 힐링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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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편하게(!) 만날 수 있게 될 거라고는 짐작조차 못했다. 무심한 세상 시선과 건조한 사람의 마음으로만 가늠하자면, 그토록 아픈 경험에는 강산이 변할 세월조차 회복을 허락할 것 같지 않던 탓이다.

2008년의 ‘그 일’이 세상을 들쑤신 후에 세상은 한동안 그녀를 몰아붙였고, 그 일의 전후 세월을 돌이켜봐도 그녀만큼 삶의 다방면이 아팠던 유례를 꼽아보기란 사실 쉽지가 않다.

그랬던 정선희가 지금 우리 앞에 호숫가의 꽃처럼 서 있으니 말이다.

올해 들어 밥퍼 최일도 목사와 함께 씨채널방송 ‘힐링토크 회복’의 진행자로 발탁돼 치유하는 대화(healing talk)를 시작했고 CTS 창사 20주년 특별방송 간증자로 섰다는 소식 말고도,

이미 몇 해 전부터 여러 교회에서 간증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종종 들린 차였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그녀의 쾌활한 음성과 밝은 표정을 듣고 보는 일은 어느덧 일상이 다시 된 지 또한 오래다.

그런 정선희, 참 특별한 삶을 살아온 사람임을 대부분 알리라 싶어 ‘그해의 그 일’은 ‘그 일’로만 쓰고 지난다.

대개 우리는 그녀를 1992년 SBS 공채 1기 개그맨으로 공식 데뷔한 인기 희극인이자 톱클래스의 라디오 진행자로 알고 있다.

그런데 뿌리를 찾아보면 데뷔 전인 대학생 시절부터 MC 유재석과 배우 유승룡 등을 배출한 ‘비바청춘’이라는 청소년 오락 프로그램에서 일찌감치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니 천생 방송인인 건 분명하다.

방송뿐만 아니다. 정선희는 일본어 번역가이자 학습교재까지 펴낸 일본어 전문가이기도 하다.

《정선희의 톡톡 튀는 생활 일본어》와 《정선희의 드라마 일본어》가 제목 그대로 그녀의 책들이고, 일본에서 요시모토 바나나나 에쿠니 가오리 못지않게 주목받는다는 여류작가 가와카미 미에코의 에세이 《인생이 알려준 것들》의 번역자가 바로 이 정선희다.

동덕여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에 전공보다 희곡과 문학이나 일본어에 ‘필’이 더 꽂힌 게 시초였던 듯싶다.

어쨌든 오늘 우리는 정선희를 만나 무슨 말을 들을까? 책 제목처럼 ‘그녀의 인생이 알려준 것들’에 대하여 들을 것인가?

아니면 인생 이야기는 접어두고서, 그저 그녀 안에서 묵묵히 함께 계셔주신 ‘그분’의 이야기를 들을 것인가 정선희와 눈을 마주한 순간 기자는 직감했다. 이야기 자체야 그녀의 인생이 알려준 것들일지언정,

결국은 그분의 이야기를 들을 거라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평안이 세상 어디서 나나.글 이한민 사진 도성윤

그래도 그때 이야기를 안 꺼낼 순 없는데요.

그때 이야기 하는 거, 저 이제는 별로 스트레스 받지 않아요.

하나님이 저 대신 전투를 치러주시기 때문이에요. 처음부터 그래주셨고. 당시에는 제가 당한 일이 그렇게 다양한 전쟁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생각하시는 것만큼 제가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걸 못 느끼게끔 많이 만져주셨어요.

그렇게 해주지 않으셨으면, 저 못 견뎠죠. 인간적으로야 교회를 다니다가 그런 일을 겪었으니 신앙적으로 배신감 같은 걸 느꼈던 건 사실이에요.

아버지가 날 버렸다는 생각과 ‘내가 무슨 죄를 져서 이런 벌을 받는 거지?’ 하는 생각, 그러니까 벌을 받는 거라면 내가 너무 혹독하게 치르는 건 아닌가 싶은…. 그게 너무 심하니까 신앙이 흔들리더라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아찔해요. 이걸 내가 우리 아버지 아니었으면 못 견뎠다,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구나 싶은 거예요.

내가 만났던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이렇게 팽개칠 분이 아니라는 건 아니까, 인간이라 보이지 않는 걸 붙잡는 건 좀 한계가 있지만, 내 기억에 있는 하나님은 나를 버릴 분은 아니라는 확신과 믿음으로 붙잡은 거예요. 계속 살려달라고 기도했어요.

하나님이 어떻게 해주시던가요?

하루하루 마취를 시켜주셨던 것 같아요.

너무 고통스러워도 다른 데를 보게 해주시고, 멱살 잡고 싸우고 싶고 세상에 나가 소리 지르고 싶었어도 “이거 봐라. 내가 너를 위해서 한 이걸 봐” 하시면서 제 시선을 흩트리셨어요.

제게 전투력도 싸울 의지도 없었지만, 그래서 인간적으로 싸울 모든 기회를 놓치게 하셨던 거죠. 만약에 하나님이 제게 그렇게 침묵할 지혜를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살기 위해 제 바닥을 드러냈을 것 같아요.

너무 못 견디겠다 싶던 어느 날이었어요. 내가 이래도 견뎌야 되느냐고, 싸울 거라고, 차 안에서 소리 지르며 울었어요.

왜냐하면 친한 친구들조차 제가 왜 말을 하지 않느냐며 저의 침묵을 이상하게 받아들였으니까요. 그러니까 정말 못 견디겠더라고요.

제가 알고 있던 것도 별로 없지만 아는 선에서라도 억울한 걸 표현하겠다고, 그러니까 답을 달라고 울며 기도하다 차 안을 두리번거렸죠. 평소 집과 차 안에 책을 널어두고 보는데, 책 하나가 문득 손에 잡혀요.

제목도 기억나지 않지만 “하나님, 제가 이 책을 열었을 때 하나님의 답이 있으면 좋겠어요” 하며 펼쳐봤어요. 저도 참 뜬금없지요? 그랬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펼친 책에서 이런 글이 떡 나오는 거예요.

“진정한 크리스천은 전쟁터에서도 신사다움을 잃지 않는 자이다.” 아,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울고 났더니 후련해지는 거예요. 분하지도 않고 약 오르지도 답답하지도 않고요.

어쩌면 이게 내가 바라던 답은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보여주신 답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때 싸움이 내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 거예요. 그런 생각으로 모든 행동을 멈췄지요.

저는 그렇게 마치 포인트들이 누적되듯 치유가 되어온 것이지 한순간에 기적처럼 다 낫고 그랬던 건 아니었어요.

때로 한순간에 바뀌는 기적도 있겠지만, 당신의 자녀가 포인트 하나 적립하고 딱지 하나 생기는 그런 과정을 거칠 때 뭔가 가르치고 싶으신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하나님이 그 과정에서 나한테 주고 싶으신 선물이 있으신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참아지고 기다려지더라고요. 그렇게 해주지 않으셨다면 제가 몹시 다혈질이라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지금 눈을 보면 그냥 편해 보입니다.

그래요? 그런데 이렇게 편해진 지가 몇 년 안 됐어요. 처음에는 일을 하려고 편한 척을 한 적도 있었거든요. ‘왜 내게?’ 하는 궁금한 점은 몇 개 있어요.

“아버지, 제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뭐가 원인이었을까요?” 몇 년 동안은 그걸 알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만들어주시더라고요.

한 2년 전부턴가, 어느 순간부터 기도하고 묵상하는데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 싶은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이 너무 좋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면서 하나님을 붙잡기 시작했어요.

‘내가 또 바빠지더라도 지금의 이 평화를 잊지 말자’ 하면서, 너무 절박해져 기도하면 정말 그만큼을 채워주세요. 그 안에서 100퍼센트 감사를 느끼는 것이죠.

저는 이래도 어쩌다가 더렵혀지기도 하고 때 타기도 하고, 계속 제자리에서 신앙의 진도가 안 나가기도 해요.

그런데 아버지가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떼를 좀 써도 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이 정도 힘들었으면 나는 반항을 좀 해도 되겠지 해서 반항도 좀 했어요.

하나님 무서운 건 아는데 좀 섭섭했던 거, 하나님께 삐친 거죠. 예배에는 가지만 입은 싸늘하게 죽 내밀고 있고…. 그런데 정말 우리 하나님이 멋지신 건 급하게 서두르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항상 기다리세요. 그분이 얼마나 나를 짝사랑하시는지요….

하나님이 어떻게 짝사랑하셨을까요?

어제 체험한 일인데, 제 조카가 매주 토요일에 제 집에 와서 공부를 하고 가거든요. 할머니랑 사소한 일로 다투다가 “그럼 내가 여기 안 오면 되잖아!” 하더래요.

엄마가 섭섭해서 제게 말해주는 걸 듣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이 조카 같은 말과 행동을 하나님께 얼마나 했던가?

그런데도 그 조카가 한 말에 저도 발끈해서 “아 그럼 오지 말라 그래!” 하고 방 청소를 하다 순간 울컥 한 거예요. 하나님은 나를 얼마나 짝사랑하고 계셨는데, 그토록 오래도록…. 너무 죄송한 거예요.

나는 조카가 한 말도 못 참는데 하나님은 계속 나를 참고 기다리시고 인도해주셨던 거잖아요.

한번은 안문숙 씨랑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일’ 있고 몇 년 지나서였어요. 문숙 언니가 제게 “그런 일이 왜 일어났다고 생각해?” 그러시는 거예요.

제 딴엔 제가 이 과정을 통해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식으로 이성적으로 생각나는 답을 했더니 언니 말이 참 충격적이었어요.

“하나님이 (그런 일을) 허락하신 게 아니라, 네가 사고를 치고 하나님이 뒷설거지를 하고 계신 거라는 생각은 안 하니?”

이젠 세월이 좀 지났고 이런 말을 해도 오해를 안 할 것 같아 하는 말이라는데, “맞아요! 언니가 얘기해주니까 그런 것 같아요!” 했어요.

그리고 생각해보니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찔했어요. 그건 하나님이 벌주신 일도 허락하신 일도 아니었어요.

그런 거라면 제가 돌이킬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어요. 하긴 그래도 돌이키지는 않았겠죠. 인간이니까. 결국 제가 선택한 거였더라고요.

그래서 치르는 대가 같은 건데, 최대한 안 아프게, 당신의 딸을 해치지 못하게 지켜주셨던 거더라고요. 그런데도 저는 한동안 삐쳐 어리광 부리고 주저앉아 있었던 거죠.

세월이 고통을 치유해준 건 아니었나요?

그것도 맞아요. 좋은 날이 올 때까지 이를 악물고 버틸 수도 있지만, 세월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성경에도 주인이 주고 간 돈을 다 다르게 쓴 세 명의 종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에게도 주어진 시간이 있는 데 하나님 안에서 그 세월을 버티듯 살아가느냐, 아니면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며 보내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오늘도 제가 씨채널방송에서 한 뮤지컬 배우를 만났는데, 하나님과 함께한 삶과 함께하기 전의 삶에서 뭐가 달라졌느냐 물으니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기다림이 즐거워요”라고요. 옛날 같으면 공연 하나 쉬고 다음 공연을 기다리는 시간이 막연하니까 너무 초조했을 텐데, 지금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다리게 됐다는 말이죠.

방송을 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리액션에 좌우돼 살아요.

방송을 많이 하고 명예롭게 달렸을 때 짜릿한 이면에는 건조하고 암담하고 순식간에 밑으로 꺼지는 느낌도 있거든요.

저도 방송할 때 사람들의 리액션으로 자존감이 왔다 갔다 하는데, 하나님과 함께하니 그게 상관이 없어지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세월이 진짜 좋은 약이 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 세월을 보내야 하는 거예요. 그런 세월이라면 약이 될 수 있다고 저는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어요.

삶에서 먼저 회복된 부분이 어디던가요?

가족이었어요. 내가 날개가 꺾이고 나니까, 전에는 가족이 짐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굉장히 든든한 울타리인 걸 보게 하시더라고요.

어머니는 지금도 저를 위해 늘 새벽 기도를 하시는 분이지만, 저는 사실 어머니의 신앙 뒤에 많이 숨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어머니는 한 번도 저한테 딸 인생 신세 망쳤다는, 흔한 그 한국 엄마들의 관용어를 말한 적이 없어요.

“너는 굉장히 특별한 아이이기 때문에 너에게 특별한 미래를 준비해주셨어. 하나님이 너 그걸 감당할 수 있게 훈련하고 계시는 거야. 너한테 쏟아지는 축복들을 보통의 힘으론 감당 못하니까 너를 좀 보통 이상의 훈련으로 길들이시는 거야.” 그러셨어요.

그러면 어떨 때는 좀 짜증이 났어요. 나는 보통으로 살고 싶다고!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그런 말과 기도가 계속 쌓이다보니, 지금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건 “엄마가 내게 최면을 걸었다” 그래요. 누군가에게 그런 최면을 걸어주는 건 참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어머니가 기도하는 분이고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교제하는 가운데 해주신 말씀이니까요.

하나님을 언제부터 믿기 시작하셨는지요.

제가 다닌 중고등학교가 미션스쿨이었는데, 집안이 오랜 불교라 교회 다니기 시작한 건 대학교 때 좀 기웃거리다가 개그맨 되고 나서 한참 힘들다 싶었을 때, 엄마가 먼저 교회를 다니고 나서였어요.

주변에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많으셨대요. 중보기도로 엄마가 바뀌는 거 보고 저도 믿음이 생겼어요. 중보기도 중요한 거 그래서 알게 됐어요.

며칠 전 어느 교회 간증 가서 제 중학교 은사님을 만났는데요, 그 분이 제 사진 붙여놓고 저 힘들 때 그렇게 기도를 해주셨다는 거예요. 그런 기도의 흔적을 하나하나 느껴요.

7개월만에 라디오 복귀할 때 방송국 게시판에 아홉이 악플이던 날,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이런 말을 해주는 거예요. “교회 앞 지나다 선희 씨 생각나 기도했네요.”

그러면 그 자리에 붙들려서 2시간을 채울 힘이 생기는 거지요. 또 내일을 기다리고 기대할 힘이 생기는 거고, 그렇게 충전 안 해주셨으면 저는 진작 방전됐지요.

이제는 하나님이 일대일 만남을 원하시고, 나를 직접 보기를 원하시는 걸 알아요. 예전에는 내 문제를 엄마가 기도해줘도 응답해주셨는데 요즘엔 응답이 없으셔요. 그러니 내가 기도해야 돼요.

내 기도를 기다리신다고요(웃음)!

주변에 힘든 일을 겪는 사람 보면 무슨 말을 해줍니까

이제는 그런 사람에게는 무조건 힘내라는 말을 잘 못하겠어요. 스스로 힘 낼 수 없는 상황인 걸 저는 아니까. 대신 그 사람을 자꾸 들여다보게 되요. 그리고 기다리게 돼요.

하나님이 저한테 그러셨듯이. 그게 하나님의 모습이니까. 닮아가려고 흉내를 내려는 거지요. 소울 없는 위로래야 금세 알잖아요.

반대로, 본인이 힘들 때 진정성을 느낀 위로의 말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아픔을 겪은 사람,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인데 와서 그냥 “밥 먹자” 하고 묵묵히 밥 한 공기 같이 먹어줄 때, 그때 눈물이 많이 나왔어요.

이 사람도 아팠겠다, 많이 힘들고 외로웠겠다, 그런 게 느껴지지요. 저도 이젠 그런 사람 되고 싶어요.

화려한 거? 이제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그때 기도를 할 때 “하나님, 나 너무 힘들어요. 너무 고단해요” 그랬어요. 정말 너무 고단하더라고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때 주신 느낌이 “왜 너 혼자 하려고 하니? 혼자 하려니까 고단하지. 너는 왜 나한테 일할 시간을 안 주니” 그러시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두 번째 주신 느낌은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이었어요. 깃발이 푯대에 걸려 있으면 상징이지만 떠난 순간 헝겊조각이잖아요.

‘아, 내가 깃발이라면 나는 하나님을 붙잡아야겠구나, 그러면 나를 펄럭이게 해주실 거구나, 그러면 나도 누군가에게 상징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주셨어요.

깃발이 매달려 있으면 되지 딱히 할 일이 없잖아요.

제가 하려고 하면 외롭고 고단하지만, 하나님께 매달려 있으면 나부끼게 해주시는 거예요. 인도하시고 세팅도 해주시고. 그래서 요즘 간증을 하러 가도 무슨 말 일부러 하려 들지 않아요.

할 말도, 제가 한 것도 없고요. ‘그냥 가서 웃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힘이 날 거야’, 이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 이제는 하나님만 기대하는군요.

제가 궤도 이탈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중심 잡아주시고, 이제는 저를 통해서 이루실 비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앞으로 어떤 일로 저를 어떻게 쓰실지 기대하고 있어요.

겪은 아픔이 제게 멍이 아니라 다른 한두 사람에게는 하루를 더 살게 하는 힘으로 쓰였으면 좋겠다고 기도 할 정도까지는 된 것 같아요.

세상에 힘든 영혼이 많은데, “저런 사람도 웃네? 그럼 나는 오늘 좀더 웃어볼까” 이런 자극제로 쓰일 수도 있을 거 같고, 그런 방송을 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