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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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배우 김유리를 ‘차도녀’ 혹은 ‘냉미녀’라고 부른다. 도회적 분위기에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의 여인이란 뜻인데, 가녀린 몸에 작고 선명한 이목구비는 그런 별명이 그저 어울린다.

그 덕분인지 최근 몇 년 새 두각을 나타낸 드라마들에서 그녀가 표현한 여인들은 대개 도심의 그늘에서 고독하거나 자존감을 내세우는 역할이거나, 혹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욕망에 이르려 하지만 그 언저리를 차마 넘어서지 못하고 갈등하거나 갈등을 일으키거나, 그리하여 잠시 시청자의 미움을 얻을 법 하지만 결국은 연민과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마는 특이한 캐릭터였다.

그렇다면 김유리는 참 특별한 배우다. 예상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그만큼 매력이 깊고 미래의 가능성도 무궁하다는 거다.

현재 방영중인 JTBC 금토 미니시리즈 ‘사랑하는 은동아’에서 주진모를 짝사랑하지만 거절당하는 조세령 역을 하는데 몹시 쿨하다.

김유리가 연기했던 ‘청담동 앨리스’의 재벌 상속녀 신인화, ‘주군의 태양’의 아시아 최고 스타 태이령, ‘태양은 가득히’의 서재인, ‘킬미, 힐미’의 한채연 등은 각각 성격은 다르지만 차도녀 별명을 얻기에는 유사한 점이 많았다.

오죽하면 지난 4월 ‘런닝맨’ 위험한 신부 편에 나올 때도 연기와 외모에서 두각을 나타냈을까? 실제 이런 여인에게는 말을 걸기 힘들 것이다. 도도할 테니!

지난 4월 열린 제12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 (SIAFF:Seoul Int”l Agape Film Festival) 의 홍보대사가 김유리였다. 이 영화제의 이전 이름은 서울기독교영화제. 기독교 클리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더라도, 보편적이고도 기독교적인 사랑이라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모든 영화가 시상의 대상이다.

세상의 모든 영화와 소통하려는 기독 영화인들이 꾸민 사실상의 선교적 문화행사인데, 그러므로 이 영화제의 홍보대사가 됐다는 건 배우의 정체성을 세상에 천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김유리가 궁금해졌다. 연기가 아닌 사람 자체도 예상대로 차가울까?

예상은 틀릴 수 있어서 언제나 흥미롭다. 초여름 일교차가 크던 날 스튜디오로 들어오는 그녀에게서 따뜻한 동풍의 냄새가 잇따라 입장했던 것이다.

배시시 웃으니 여름 담벼락에 장미꽃이 필 때의 향기도 문득 났는데, 사람들이 김유리의 웃음을 꽃미소로 부른 까닭이 선뜻 이해되었다.

글 이한민 사진 도성윤

봄부터 만나보고 싶었는데 여름에 만납니다.
훌륭한 선배님들이 많으신데 제가 나와도 될지 많이 망설였거든요.

사실은 저도 간증을 제안 받은 기회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려니 제가 너무 작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신앙적으로 성숙한 다음에, 어떤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될 때 간증하겠다고 해서 사양하다가 처음 용기를 냈던 게 서울국제사랑영화제 홍보대사를 맡은 거였어요.

그때도 처음에는 거절하고 싶었고, 그래서 이런 인터뷰는 사실 처음이에요. 제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끌어주시니까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차도녀’란 말 많이 들었을 텐데, 실제 성격은 다른 듯해요.
제 성격이 그리 여성스럽지도 않지만 도도하지도 않아요. 그동안 역할이 주로 그러다 보니까 그렇게 보셨을 텐데, 사실 차도녀 같지 않은 역할도 했었거든요.

그런 작품은 기억을 잘 못해 주시고, 심지어 주일에 교회 가도 가끔은 저 몰라보는 분이 계세요. 예배드릴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이니 그러실 테죠. 지금 나가는 교회요?

서울드림교회. 《더 멈춤》 쓰신 김여호수아 목사님 이 설교하시는 교회요. 제가 처음 예수님 믿을 때 온누리교회에서 목사님 말씀 많이 들었거든요.

신앙은 어떻게 품게 되셨습니까?
원래 제가 모태신앙은 아니에요. 부산 출신에 무남독녀인데 부모님은 아직 교회 안 다니세요. 친척 중에 다니시는 분은 많으시고요.

어머니는 믿음은 없으시지만 마음판은 깨끗하고 법 없이도 살 분이신데, 교회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세요. 그걸 저도 이해하는 게, 사실 저도 교회에 대한 편견이 있었거든요.

아이 때는 집 근처에 사시는 가족 중에 크리스천이 있어서 방학 때 성경학교 따라가기도 했어요. 그때는 당연히 가는 건 줄 알고 사촌 언니 오빠 손잡고 갔었죠.

날마다 가면 스티커 붙여주시고 다 완성되면 선물 주고 크리스마스 때 공연도 하고, 그렇게 아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다녔던 것 같아요. 그 덕분에 교회가 낯설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크면서 하나님이 있다는 건 믿겠는데 교회에 대한 부담감이 생기더라고요.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가지는 것과 비슷한 건데, 무지했으니까, 몰랐던 거죠.

누군가 교회에 초대해주면 그 마음이 고마워서 가긴 해요. 그런데 교회 가보면 교회마다 성향이 다르잖아요.

어떤 교회는 기도할 때 방언도 하고 믿으라고 강요도 하고, 언젠가 초대해서 따라갔다가 분위기가 부담스러워 기도 시간에 살짝 밖으로 나왔어요.

그리곤 초대해준 분께 문자를 했죠. ‘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하나님은 믿고 싶지만 교회에서 상처 받는 모습도 보고….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지나다 20대 후반에 우울증을 심하게 겪었어요. 집 밖에 안 나가고 핸드폰도 꺼놓고 있었는데, 너무 신기하게도 그때 주위 분들에게 성경책을 다섯 권 정도 선물 받았어요.

받을 때마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어요. 하지만 교회는 나가기 싫은 거예요. ‘나 힘들어. 혼자 있게 내버려둬’ 이런 마음이었죠.

누가 인도를 해주었나 봐요.
유호정 선배님 가족이 전도해주셨어요. 동생 유호선 언니가 저랑 굉장히 친해요.

언니가 제가 너무 걱정이 된 거예요. 언니도 제가 교회는 부담스러워하는 걸 아셔서 어느 날 전화를 주시더니 “유리야, 교회는 가지 않아도 나랑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성경공부 할래?” 그랬죠.

오늘도 나오면서 언니한테 문자 보냈어요. “오늘 갓피플 인터뷰 하는데 언니 이야기 할 수도 있어요. 기도 좀 해주세요” 하고. 저한테는 목자님이니까.

저는 하나님을 사랑해서도 궁금해서도 아니고 그냥 힘들어하는 나를 너무 걱정해주는 언니의 마음이 고마워서 거절을 못하겠더라고요.

마음이 무거웠지만 일주일에 한번 교회는 안 가도 언니랑 둘이서 성경공부를 시작한 거예요. 그때 처음 한 게 온누리교회에서 하는 일대일제자양육이었어요.

첫 장부터 제겐 너무 어려웠어요. 나는 죄인이라는데, 무지하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거예요. “언니, 내가 살면서 문제도 안 일으키고 나쁜 일도 안 한 편인데 죄인이라고?” 그랬어요.

그 무렵 사람들이 제게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저는 종교는 없고요 바이블이라는 역사책을 공부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일대일제자양육의 마지막이 될 때쯤 너무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이제 누가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제 입으로 “저 크리스천이예요”라고 말하고 있더라고요! 양육을 받는 동안 제게 엄청난 일이 벌어진 거예요.

제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을 해서인지 감성적인 편인데 감정이 바닥을 치면 굉장이 심하게 내려가거든요. 그런데 그때 언니 덕분에 성경공부 하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믿고 우울증에서 벗어났어요.

처음 신앙생활은 어땠습니까?
온누리교회 특새(특별새벽기도회) 기간이었는데 새벽기도 드리고 와서 집에 와서는 일대일양육 숙제를 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경 읽고 성경에 대한 것만 읽는다든지 하고 있었던 거죠.

돌이켜보면 그때 성경을 제일 많이 읽고 제일 많이 기도했던 것 같아요.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감동을 잊을 수 없죠. 너무 감사했어요.

이전에 교회 따라갔을 땐 기도하는 모습이 뉴스에서 본 이단 교회들이 하는 것 같아 반감이 있었던 건데,

이제는 그렇게 전심으로 기도하는 분들이 ‘얼마나 힘들고 간절하면 저렇게 온 몸으로 목 놓아 기도하실까?’라고 이해가 되고 제 마음이 변했더라고요.

저는 아기 신자라 그렇게 기도하진 못했지만 제 마음을 그렇게 움직여주시더라고요.

우울증은 왜 왔던 것 같아요?
남자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여자는 나이가 30이라는 숫자에 가까워지면 심적 부담이 생각보다 커져요.

일이 잘 되고 바쁘게 산다면 넘어갈 수 있겠지만, 한창 일할 나이에 저는 일도 잘 안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나는 누구인가 싶고 연기를 하고 싶은 게 내 욕심인가 싶고, 여러 가지 고민들이 한꺼번에 오더라고요. 꿈과 현실의 격차 때문에 제2의 사춘기를 겪는 것 같았어요. 서른이 되면 인생이 끝날 것만 같았던 거죠.

그래서 이제는 서른이 되어가는 후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줘요. “내가 서른이 되는 12월 31일이 지나 1월 1일이 맞이해봤는데, 변한 건 아무것도 없더라.”

너무 당연한 건데, 저는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물론 저는 직업상 다른 사람에 비해 더 힘들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런 어려움을 잘 넘어갈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을 만나서 말씀으로 치유되었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중심을 잡을 계기가 되었고요, 지금도 부족한 게 많아서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전도하진 못하지만 주위 사람에게 열심히 하나님 이야기하고 교회 데려가기도 해요.

내가 너무 힘들었을 때 나를 숨 쉴 수 있게 해준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걸 알려주고 싶다고 말하곤 하지요.

영화제 홍보대사가 된 것도 그런 마음 때문이었군요.
누구보다 제가 저를 잘 알잖아요. 누가 뭐라 해도 교회 안 나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서울국제사랑영화제홍보대사 요청을 받을 때도 영화를 통해 조금 더 쉽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렸으면 했던 거예요. 백날 이야기해봤자 마음을 열고 듣지 않으면 안 들리잖아요.

저도 경험해봤지만 무작정 교회만 데리고 가는 게 중요하지 않잖아요. 하나님을 만나게 해야 하고 갈급함을 채워주어야 하는 건데, 그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는 사람에게라면 “커피 한잔 할까? 일요일에 뭐 해? 교회 잠깐 같이 갔다가 밥 먹자” 이렇게 편하게 전도할 수 있지만 친분이 별로 없는 사람에게는 영화만큼 좋은 소재도 없잖아요.

정말 자연스럽게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게 영화니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 영화제 홍보대사를 했던 겁니다. 아쉬웠던 건 그 영화제가 더 많이 알려지지 못했던 것 같은 거예요.

최근 전도했던 사례는?
최근 일을 말씀드리면, ‘태양은 가득히’에서 함께 연기했던 조진웅 선배님이 얼마 전 ‘우리는 형제입니다’에서 목사님 역을 했을 때, 촬영 기간 내내 매일 말씀 메시지를 보냈어요.

‘시골목사의 아침묵상’을 보내준 건데, 거기엔 사심(!)도 있었죠. 오빠가 하나님을 알았으면 하는 사심! 너무 좋은 기회잖아요.

나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가끔 “유리야 고마워” 답이 오더라고요. 어느 날 촬영하는데 오빠가 기도하고 시작하고, 대사에도 없는데 자연스럽게 ‘아멘’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거예요.

또 영화 발표회 때 “종교가 없어서 목사님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걱정됐는데 동료가 아침마다 보내준 ‘시골목사의 아침묵상’ 글귀가 도움이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동료란 게 바로 전데, 놀라웠어요.

원래 꿈은 그림 그리는 것이었다고요.
엄마가 그러시던데, 어릴 때는 누구나 크레파스 색연필 갖고 놀지만 저는 그걸 들고 유치원보다 미술학원에 먼저 갔대요. 저한테 그림은 너무 익숙했던 것 같아요. 좋아하고 가끔 칭찬받기도 해서 미술을 많이 좋아했죠. 그런데, 지나간 이야기지만 아버지 반대로 미술을 중간에 하지 못하게 됐어요. 그게 섭섭했고, 마음 한구석에는 ‘나중에는 꼭 미술 할 거야!’ 하는 생각은 갖고 있었어요. 그리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는데 주위 가족들이 권유해서 2학년 때 다시 화구를 잡았어요. 그림이라는 게 감성이 필요하고 감성은 나이에 따라 달라지고 그게 스킬이 되는 건데, 놓아버린 게 아쉬웠죠.

미대생일 때 연기자가 되었다지요.
저는 말썽 안 피우고 부모님 시키는 대로 하고 억울해도 참고, 그런 성격이에요.

어려서 길거리 캐스팅 받은 적도 있었고 크니까 주위에서 배우 해보라고 권유는 많이 받았지만, 제 성격이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어요.

그런데 평범하게 그림 그리고 학교 다니다 우연히 연기 수업을 받게 되었어요. 처음엔 아르바이트 하는 기분으로 광고 사진을 찍거나 하면서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는데, 그룹으로 연기수업을 해보니 제가 성경을 몰랐던 것처럼 연기도 너무 몰랐던 걸 알았어요.

처음엔 그저 대본 잘 외워서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게 연기인 줄만 알았거든요.

표면적으론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연기 수업을 하니까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저 스스로에게 던지게 하시는 거예요. 거기에 블랙홀에 빠져 들듯 몰입하면서 제가 이 수업은 계속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도 참 많이 울었는데요, 좀 늦은 사춘기가 왔던 것 같아요. 제가 생긴 건 이래도 잘 안 울어요.

요즘엔 하나님 이야기 듣고 찬양만 들어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영화 볼 때 빼고는 실제 생활에서 그렇게 연약하진 않거든요. 제가 십대에도 사춘기를 겪지 않고 지났나 봐요.

연기 훈련을 받을 때 사춘기 나이는 지났지만 내가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끊임 없이 했고, 그래서 연기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이죠.

얼마나 열심이었냐 하면 학교를 휴학 할 정도였어요. 그 무렵 드라마 작가 이금림 선생님에게 우연히 연결이 돼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데뷔시켜주셨어요.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때나 아쉬움은 없었어요?
하나님이 저를 그렇게 부르신 것 같아요. 옛날엔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그런 계기가 없었다면 하나님을 지금보다 더 뒤에 만났을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하나님이 크게 치시기 전에 알아서 돌아오라고 하셨던 것 같아요. 그땐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왔어요.

집안일로 아버지 건강도 안 좋으셨고 소속사에 빨간 종이가 붙기도 하고,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한없이 작아지더라고요.

사람들은 늘 발전하고 싶어하는데, 제 앞길에 조금이나마 작은 빛이 보였다면 그렇게까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겠지만,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구나 하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그래서 억울하거나 아쉽지는 않아요.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처음 사람들이 나에게 연기를 제안할 때 마음의 문을 더 열었더라면 하는 거예요.

아는 교회 오빠 없습니까?
사람들이 ‘교회에 오빠 없어?’라고 물어보면 전 늘 이렇게 이야기해요. “교회 오빠가 있는 경우는 아주 행운인 거야. 교회 가보면 형부들은 많아!”

그 유명하다는 교회 오빠, 어디 있는지 저는 모르겠어요(웃음). 연애,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건데, 사람 만날 기회가 의외로 없거든요. 좋은 사람 만나고 싶죠. 기도해요.

갓피플과 나누고 싶은 기도제목은?
하나님과 처음 만났을 때 첫사랑을 나누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중심 잃지 않고, 지금 이 자리를 계기로 하나님께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으면 해요. 조금이나마 누군가에게 제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