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아내 된 ‘김밥’의 가수, 자두

1
6
25,372

김밥에 자두를 넣는 사람, 설마 있을까? 아마 없겠지. 하지만 한 10년 전부터 ‘김밥’ 하면 ‘자두’는 김밥에 단무지처럼 자동으로 떠오르는 이름이 됐다.

“잘~ 말아줘~ 잘 눌러줘~” 하는 빅 히트곡 ‘김밥’(2003년, 조준영 곡) 덕분이다. 대체불가능, 모창불가라는 독특하고 청량한 목소리로 “밥알이 김에 붙어 있는 것처럼 너에게 붙어 있을래~” 하는, 일상 언어를 가사에 담아 상쾌 발랄한 록큰롤 리듬에 맞춰 부른 이 노래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입에 착 붙어 있게끔 됐다.

그 자두가 지난여름 싱글 앨범 ‘굿데이’(Good Day)와 ‘땡큐베뤼머취’(Thank you very much)를 들고 새롭게 등장했다. ‘김밥’ 외에도 그동안 ‘대화가 필요해’, ‘식사부터 하세요’ 같은, 주로 생활 밀착형 노래를 흥겹게 불러 유쾌함의 원조로 불리는 가수 자두가 이번에도 현실감 넘치는 일상의 단어를 적나라하게 꺼내든 거다.

들어보니 유난히 힘든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해줄 노래들이다. 위로가 된다. 우울한 마음도 훌훌 날아가겠다.

“힘들었던 사람들은 눈물 닦고 / 지쳐 있는 사람들은 땀을 닦고 / 발끝만 보며 걷는 사람 고개를 들어 / 하늘 보며 외쳐 뛰어…!” 그러면 다음의 후렴 가사처럼 오늘은 ‘Have a Good Day’(좋은 하루 되세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행간의 가사가 귀에 척 걸린다. “믿는 대로 이뤄져라”다. (어라?!) 그 대목의 2절은 또 이렇다. “잘 보면 길이 있어 / 마음 잘 지키면 돼 / 외치는 대로 이루어져라~!” 어… 이거, 마태복음 9장 29절과 잠언 4장 23절 말씀에서 따온 거, 혹시 아닐까 싶은 것이다.

크리스천인 자두가 한 기독연예인 예배모임에서 사역했다는 소문을 오래 전부터 들어온 터라 충분히 (그런 뜻으로 지었을) 개연성은 있을 법한데, 좌우간 흥겨운 대중가요이니 속뜻이야 어떠하든 기분은 좋다. 이런 노래, 요즘 지친 사람들이 많이 듣고 힘을 내면 좋겠다.

그런 차에 지난 8월초, 라디오스타(KBS)에 나온 자두가 과거 ‘숨겨진 주당(酒黨)’으로서 연예계 술친구들을 몰고 다니던 ‘그때 그런 시절’이 있었노라 말하던 MC 김구라가 생뚱맞게 자두의 최근 새 호칭을 공개했다.

‘사모님’이라고! ‘라디오스타 최초 사모님 출연!’이라는 자막도 익살스레 떴다. 그 자리에서 자두는 목사의 아내가 되어 살아가는 근황을 소개하면서 유쾌하게 “할렐루야!”를 외치기도 했는데….

2013년 12월 결혼한 자두의 남편은 현재 일산 기쁨이있는교회(조지훈 담임목사)에서 영어예배를 섬기는 지미 리(Jimmy Lee) 목사다.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재미동포 출신이지만 결혼하고 한동안 아내에게 ‘제자훈련’을 했다 할 정도로 복음과 성령에 붙잡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자두는 자랑한다. 죽고 싶었다 할만큼 절망의 끝자락을 넘나들던 자두와 사모가 된 지금의 자두 사이에서, 하나님은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신 걸까
글 이한민 사진 도성윤

사모님이 다 되시고.
뜻한 바가 아니고 상상도 못했는데, 제가 이런 사람이 될 줄 정말 몰랐어요. 하나님이 진짜 저 같은 사람 인생을 펼쳐 가시는 게 너무 놀랍죠! 그게 저는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주님의 역사하심을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죄송하지만, 사실 주님이 참 재미있는 분이시잖아요!

제가 어릴 때부터 주님을 만났지만 설익은 자두 같아서 종교생활을 했고,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많았고, 그런데 다시 회심하고 나서 풀린 게 주님과의 친밀함을 회복한 거예요.

제게 주님은 너무 유머러스하시거든요! 아가서에서 사랑받는 술람미 여인처럼 저는 사랑받는 자이고요. 예수님이 완전 최고! 사는 게 완전 재미있어졌어요!

제가 ‘김밥’ 이후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고통스러운 고립의 시간을 보낼 때가 한참 있었는데요, 하나님을 깊이 알아갈수록 완전, “진짜, 와~ 완전 우리 아버지 최고~” 막 이러게 됐거든요! 사모가 되어선 공적 자리에선 좀 자제하는 편입니다만(^^).

모태신앙이었나요
반(半)모태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제가 3살 때, 제 밑으로 동생 둘 있는데 엄마가 둘째 뱃속에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나셨으니까 제게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는 교회에서 자라왔고, 개척교회가 불처럼 일어날 때 엄마도 불 받으셔서 성령님 체험하시고 개척교회 섬기셨고.저희 집이 피아노학원을 했거든요.

제가 원래 가수 되려던 게 아니고 피아노 전공하려다가 사춘기 때 튕겨나간 경우인데, 여섯 일곱 살 때도 교회 예배드릴 때 반주할 사람 없으면 제가 했어요.

엄마가 열심이셔서 아빠, 친가, 외가에게 다 구원의 복음을 전하신 믿음의 젖줄 같아서, 엄마 따라 기도원 가고 방언 기도 듣고 자랐고, 교회 문화엔 아주 익숙했죠. 그러니까 모태는 아니었어도 교회 아이로는 자랐던 거죠.

사춘기가 특별했다고요.
어려선 굉장히 순종적인 아이였는데, 사춘기 되면서 보통 여자아이들처럼 성격이 조금 까칠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밖으로 나가고, 마치 남자아이처럼 가만히 있지 못했어요.

세상의 틀과 어른들의 생각 같은 모든 것들에 저항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인 마냥 반대정신을 온몸으로 표출해서 어른들 볼 때도 살기어린 눈빛이었고, 친구들이 연예인 좋아하고 아기자기한 거 좋아할 때

저는 “반대정신은 역시 락이야” 하면서 홍대클럽 같은 데, 지금처럼 추고 노는 데 말고 진짜 음악 하는 데 교복 입고 가서 연주 들으러 다녔죠. 그렇게 사춘기 때부터 세상 어둠에 심취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바로 데뷔를 하게 되어서, 부모님이 오래 기도하게 해드렸죠.

자두’라는 이름이 본명은 아니죠.
이름이 김덕은이에요. 작명소 같은 데서 지었다는데 한자 뜻이 큰 덕(德)에 은혜 은(恩), 큰 은혜인 거죠. 뜻 자체가 지금 보면 진짜 하나님의 큰 은혜로 사는 자가 된 셈인데요.

자두는 물론 예명으로, 원래는 ‘더 자두’라고 해서 남자 가수와 같이 듀엣으로 시작하다 나중에 저만 자두로 활동하고 있는 거예요. 학생 때부터 저를 딸기라고 소개했는데, 데뷔할 때 소속사에서 누가 다른 과일 이름 중에 제게 어울릴 만한 걸 고른 거예요.

주님을 다시 만난 후로는 하나님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과일 같은 삶을 사는 뜻이라고 정체성을 달리 하게 된 것이고요.

주님을 다시 만난 계기는
다시 회심한 게 ‘김밥’ 부르고 좀 지나서였어요. 저는 사춘기를 그렇게 특별하게 겪으면서도 주목을 많이 받았거든요. 중학생 때부터 밴드활동을 하고 일찍 어른들이랑 어울리고, 제 목소리도 굉장히 독특한 편이고 외모도 평범하지 않았어요.

한여름에도 큼직한 고글 쓰고 머리 퍼머하고 털모자 쓰고. 어디 가도 경쟁자가 딱히 없었고 사람들이 저 보고 다 잘한다고 인정해주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교만과 오만이 장난 아니었어요.

지금이야 제 재능이나 역할이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선한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쓰임 받아야 할 것인 줄 알지만, 그때는 그게 하나님이 맡기신 거란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다 내가 잘나서 하는 거라 생각한 거죠.

그렇게 데뷔하고 김밥 부를 때까지 거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처럼 살다보니까, 주님이 계속 노크를 하고 계셨겠지만 제가 주님을 만날 겨를 자체가 없었어요.

“아 주님 잠깐만요. 아직 오실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맨날 술에 절어 들어오니까 엄마가 뭐라 하시면 “알았다고! 나도 기도할 거라고. 교회 갈 거라고!” 하며 속 썩이고요.

그러다 어린 나이에 배신을 당하고 관계와 물질에 어려움이 밀어닥쳤어요. 법적인 문제도 얽혀 이도저도 못하게 됐고, 당시 기사화만 안 됐지 감출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았어요.

그러니 더 술에 의존하게 되고, 점점 더 중독으로 빠지게 됐어요. 잘 돼도 술, 안 돼도 술, 심지어 집에서도 술 없이는 살지 못하니까 나중엔 집안 식구가 저 어떻게 될까봐, 잘못된 선택을 할까봐 학생이던 동생들까지 순번을 정해 불침번을 설 정도가 됐어요.

영적인 눈과 귀가 닫혀 있었기 때문에 극한 상황으로 몰리고, 낙망 정도가 아니라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들고 진짜 소망이 없었을 때, 어른들이 그때 말하길 네 나이보다 10년은 더 든 다음 겪어도

힘들 일을 너무 일찍 겪는다고 혀를 차실 정도로 힘들었을 때, 하나님이 개입하시더라고요. 돌아와야 한다고, 그때 불러주지 않으셨다면 저 아마 극단(極端)으로 갔을 거예요.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시던가요
주님이 저 아시잖아요. 굉장히 즉흥적이고 거칠고 에너지가 많은 성격인데, 끝까지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너를 사랑해”라고 말씀해주신 게 2003년 가을에서 겨울 넘어갈 사이,

딱 요 무렵 쌀쌀해질 때였던 것 같아요. 나 같은 딸을 불러주시는 따뜻한 음성을 듣고, 주의 전으로 기어가기 시작한 때가. 그때 제가 KBS 라디오 DJ를 하고 있었는데요,

초대석이란 코너가 있었어요. 대선배 한 분이 컴백할 때 모시는 자리였는데 방송 스태프들이 긴장하면서 저더러도 신경 쓰라는 거예요. 옛날에는 한 성격 하던 사람이라고.

그래서 혹시나 싶어 생방 아닌 녹음으로 진행한다는 거예요.

저는 성격 자체가 누구를 견제하거나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편이 아니고, 오히려 저랑 대화하다 보면

안 시킨 말도 하고 2곡 하기로 한 거 4곡 부르게도 하는 장점이 있어서 누가 와도 별 신경 안쓰는

스타일인데, 저한테 그런 말 한 건 특별해서 ‘누구신데 그래’ 하며 신경 좀 썼죠. 인사도 깍듯이 하고.어, 그런데 생각보다 세지 않은 거예요.

도리어 너무 온화하고 너그럽고. 요즘에야 디지털 방식이라 대화만 미리 녹음하면 되지만 그때는 (테이프 녹음할 때라) 음악이 나가는 사이에 잠깐 따로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거든요.

안 그래도 녹음 도중에 하나님 믿는 이야기 과감하게 하고 그래서 ‘이분 왜 이래’ 그랬는데, 제게 따로 이러시는 거예요.

“자두 씨, 혹시 교회 나가” 그러면 그냥 나가요 그러든지 지금 잘 못 나가요 간단히 하면 될 것을, 구구절절 우리 엄마는 권사님인데, 다니는 교회는 저긴데, 어렸을 때는 나도 교회 잘 갔었는데 어쩌고 한참 말하면서 눈은 마주치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그 선배님이 이러세요.

“믿는 연예인들과 이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모여 매일 예배드리고 철야하고 기도하는 모임이 있는데, 언제든지 나한테 전화하고 와.”

그 말에 “네, 갈게요” 했어요. 너무 오랜만에 들은 예수님 이야기에, 매일 술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었을 때 예수님이라는 진리의 이름을 들으니까 죽어 있던 것 같던 영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더라고요. 가야겠더라고요.

‘아, 내가 예수님을 믿었지. 그 예수님, 다시 만나야겠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죽겠다. 이렇게 죽느니, 죽을 때 죽더라도 차라리 예수님 한 번이라도 불러보고 가자.’ 하는 마음으로 갔어요.

그 모임이 나중에 미제이(MeJ : 미디어 연예 예술계 기독인모임)로 발전한 모임이었고, 그때 저를 인도한 분이 가수 에스더 씨였어요. 이제는 ‘전도사님’이 되셨고 저는 ‘사모’가 돼 사람들 앞에선 서로 호칭 부르기 어색합니다만(웃음).

첫 날 갔는데, 제 또래는 별 없고 고난을 겪은 선배들만 가득한 거예요. 다 울며 기도하고 있어서 ‘여기 내가 올 자리 아닌가’ 처음엔 생각했는데, 지하에 있던 그 작은 교회에 들어갈 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하더니 하염없이 네 시간, 다섯시간 그냥 울기만 했어요.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엉엉 계속 새벽까지 울다가 오고. 다음날도 가서 울어야지 해서 갔는데 8시간을 울고 다음날도 울고.

많이 울면 눈가에 핏줄이 다 터지는 거 아세요? 그때 보던 성경책은 온통 눈물자국이에요. 그때 들은 주님의 처음 음성이 “딸아, 사랑한다”였어요. 저는 “네 죄를 사하노라” 이런 말씀 들을 줄 알았는데, 그 사랑한다는 말씀에 모든 것이 녹더라고요.

그렇게 몇 날 몇 년을 기도하고 예배하고, 잠을 자도 예배실에서 자고 새벽에 집에 돌아가고, 스케줄 끝나면 성전으로 또 달려가고, 외국 나가거나 지방 가는 일 없으면 거기서 살다시피 했어요.

그렇게 한 4,5년,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간증을 하고, 미제이 사역을 섬기며 찬양과 예배를 드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남편 목사님은 어떻게 만나신 겁니까
제 남편은 제가 뭐 했던 사람인지 몰랐어요.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니까. 미제이에서 나와 선교하는 작은 교회에서 양육받고 있었는데 안디옥교회처럼 선교하러 흩어지면서 교회를 찾던 중에 지금의 기쁨

이있는교회로 가게 됐고, 그날이 남편 목사님도 교회 안의 영어예배 사역자로 초빙돼 임명된 날이었어요. 그래서 담임목사님 방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기도 받기도 했지만 이렇게 될줄은 몰랐죠.

저야 중학교 영어 수준이고 남편은 겉모습만 한국인이지 말은 완전 미국 사람이니까. 그렇게 교회 생활을 같이 하는데, 교회니까 더 조심하게 되잖아요. 안 그래도 나이는 들었지,

출중한 외모에 싱글이고 미국 살다 온 목사님이라 교인들이 관심 가지고 결혼시키려는 분도 많고, 청년들이 많은 교회고 눈독 들인 자매도 많았다고 그러고, 저야 가수니까 작은 교회에서 일개 성도라 해도 일거수일투족이 더 눈에 띄잖아요.

그러다 차츰 관계가 발전하게 됐는데요, 남편은 둘이 같이 (교제를) 시작했다고 말하지만 저는 명백하게 제 남편이 먼저 시작한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제 생일에 선물을 쿠폰이라고 주는데

‘치킨을 사달라고 말할 수 있는 쿠폰’이라 그러고, 제가 영어로 된 프로그램을 하다 잘 몰라서 채팅룸에 물으니까 한국 지리도 잘 모르는 사람이 한국어 도와줄 사람 데리고 찾아와 도와주고,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남편은 결혼하자고 프러포즈만 하면 다 되는 건 줄 알았지만, 여기는 미국이 아니니까, “잘 이해 못 하겠지만 나는 부모님 허락도 받아야 하고, 우리가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으니까 담임목사님 허락도 받아야 하고, 무엇보다 하나님 허락이 일순위고, 그런 거 없으면 결혼 못한다” 그랬죠.

하나님 허락 사인도 응답으로 받고, 신랑이 담임목사님께 말씀드리니까 의자가 뒤로 넘어질 정도로 놀라시더래요.나이가 6년 차이라 교회 오빠와 여동생 같은 사이에서, 교회 목사와 성도 관계에서 여보 당신 관계로 여기까지 오게됐네요. 주님이 재미있으시단 말, 맞지요

남편 소개를 해주신다면
남편에게는 ‘나의 간증’(my witness)이라는 메모를 붙여놓고 제게 절대 버리지 말라고 부탁한 투명 테이프 하나가 있어요. 한국 와서 사역할 때 단돈 1만원으로 반년을 살 땐가 1,2천원짜리 그 테이프 하나 살 돈이 없어 문구점에서 그냥 나올 때 ‘주님, 투명테이프를 제게 주세요’ 기도했더니

집 앞에 떡하니 누가 버리고 간 테이프였던 거예요. 그런 간증 너무 많은데, 복음과 믿음에 너무 강력하게 붙잡혀 살아서, 저 결혼하고 한 1년은 결혼을 한 건지 제자훈련 받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니까요!

제 직업은 가수이고 교회에서는 사모이지만, 이제 이것이 분리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뭘 한다(doing)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존재 자체(being)가 중요하다는 개념을 남편이 잡아준 건데요, 하나님 안에서 정체성이 올바르다면 다른 것들은 다 정리되게 마련이라는 거죠.

기도제목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고립의 시간에 유일하게 저를 먹여준 통로가 사실은 갓피플이었어요. 지금도 운전할 때 갓피플TV 어플 틀어놓고 다니거든요. 갓피플 매거진에 매달 크리스천 연예인 소개될 때마다 축복하고 중보하고 있다는 말 먼저 하고 싶어요.

창작하는 엔터테인먼트 영역의 많은 부분을 사탄이 가져간 건데, 창조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이 가운데 역사하셔야 맞잖아요.

말씀을 듣지 않는 이 세대에 문화를 주도하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실체가 이 문화 예능 영역에 나타나시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름다운 향기로 나타나도록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크리스천들이 세상에서 소금 역할을 해야 하는데, 누군가 녹아야 세상에 소금 맛이 날 거잖아요. 그렇게 녹을 자신이 없기 때문에 저도 매번 두렵습니다만, 세상과 분리된 크리스천 문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세상이 예수 문화로 변화되도록 사는 것이 요즘 저와 남편이 기도하며 고민하는 주제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도록 연예 영역의 동료들이 쓰임받으면 좋겠고, 우리 모두가 그런 풍미를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더보기 (사진을 클릭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