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는 배우 김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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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가 2011년 5월 갓피플과 만났을 때는 아그네스와 어머니 이야기를 주로 들려주었다. 2009년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처음 만난 어린 아그네스(당시 6세)가 김정화를 ‘엄마’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미혼이던 김정화가 자기를 엄마라 부르라고 가르쳤던 것. 아그네스는 3살 때 에이즈 (HIV)로 부모를 잃었던 고아, 모유수유로 수직감염이 된 보균자이다.

엄마 손잡고, 오염된 연못이라도 그물 길러 같이 가보는 게 소원이라던 아그네스와 사흘 만에 헤어지던 날, 김정화는 “엄마 내일은 못 와” 말하고 흐느꼈다.

한국어는 ‘엄마’ 빼고 아는 게 없었지만 눈치는 벌써 차린 듯, 헤어진 뒤 아그네스가 현지 선교사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엄마 정말 안 와요?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엄마 다시 올 때 나 없으면 어쩌죠?” 2013년 1월, SBS ‘강심장’ 녹화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따지자면 발단은 김정화였다.

아그네스 사연에 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들은 출연자들이 눈물바다에 빠져버리고 덩달아 다른 출연자도 안타까운 자기 가족의 사연을 나눠, 잠시 분위기를 수습해야 했던 탓이다.

그해 겨울, 패션 매거진 에 특별한 웨딩화보가 실렸다. 김정화가 우간다에 가 딸 아그네스와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아그네스는 훌쩍 자라 있었다. 건강해졌고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김정화로선 세 번째 우간다 방문이었는데, 같이 온 남자를 ‘아빠’라 부르라 해서 아그네스는 어색했다. 남자는 엄마가 아그네스를 위해 쓴 노랫말에 곡을 써준 CCM 뮤지션 유은성이었다.

구호단체 ‘기아대책’을 통해 그 노래를 만들면서 알게 됐고, 김정화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시점 전후로 말씀을 나누고 위로하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둘은 2013년 8월 대학로 동숭교회에서 결혼했고 지난해 유은성을 쏙 빼닮은 아들 유화를 낳았다.

유은성은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로 시작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쓴 사람. 김정화는 최근 나온 남편의 5집 앨범 가운데 유은성이 관중 앞에서 공개 청혼을 할 때 부른 자작곡 ‘오늘 그대에게 하고픈 말’ 중에서 한 소절을 피처링 녹음했다.

“사랑해”라는 후렴구다. 하하의 부인 별이 이 앨범에서 유은성과 듀엣곡(하나님만이)을 부르며 처음 CCM을 녹음한 것도 별이 김정화의 오랜 절친인 덕이었다.

김정화는 18살이던 2000년, 가수 이승환의 뮤직비디오 ‘그대가 그대를’에 출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데뷔했다. 이후 MBC 시트콤 ‘논스톱3’에서 주목 받기 시작해 드라마 ‘유리구두’, ‘태양 속으로’, ‘백설공주’ ‘쩐의 전쟁’ 등과 대하사극 ‘광개토대왕’, ‘바람의 나라’, 영화 ‘그녀를 모르면 간첩’, ‘파란 자전거’ 등 다양한 작품과 연극에서 활동해왔다.

NGO 단체 ‘기아대책’의 홍보대사로 묵묵히 나눔을 실천하여 외모와 내면이 함께 아름다운 배우로 세상에 고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있는 김정화. 최근 11월 종영된 JTBC 금토드라마 ‘디데이’에서 정신과 의사 은소율 역할로 연기에 복귀한 그녀가 갓피플을 다시 만난다. 글 이한민 사진 도성윤

‘디데이’에서 어머니를 잃는 장면을 연기할 때,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겠다 싶었어요.
그럼요. 저와 다른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상황이 닥치면 그랬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연기한 거죠. 처음 엄마가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충격이 컸어요.

슬펐지만 내가 아픈 게 아니고 엄마가 아픈 건데, 엄마 앞에서 내가 울고 힘들어하면 오히려 엄마가 더 힘드니까 나는 씩씩해야겠구나, 그래서 엄마를 즐겁게 해주려고 했고요.

엄마도 씩씩했어요. 생을 마감하기까지 당신처럼 살기 얼마 남지 않은 분들 찾아가 복음 전하기도 하셨죠. 엄마 아프시고 주변에서 더 은혜 받는다고 하셨으니까.

저는 우리 엄마가 하나님 그렇게 잘 섬기셨는데 왜 아프게 하셨나, 그게 안타깝고 궁금했어요. 엄마가 개척교회 섬기셨는데, 주일 식사는 항상 엄마가 준비하셨어요.

새벽예배 빠지지 않으시고 수요예배, 철야 예배는 항상 가셨고, 개척교회다 보니 새벽에 성도가 많이 없잖아요.

제가 가끔 밤샘 촬영하고 ‘지금쯤 엄마 교회 있겠다’ 싶어 가보면 목사님 하고 엄마 단 둘이 예배드리고 계신 거예요. 그래서 저까지 셋이서 예배드린 적 많았고, 심지어 목사님이 늦잠 주무시면 엄마가 전화로 깨우기도 하시고(웃음). 그런 엄마에게 왜 이런 병을 주셨나 생각했거든요.

항암치료하시며 머리카락 손발톱 다 빠지는데도 교회 안 빠지고 성가대 서시고 교회 청소 봉사 다 하는 모습 보면서, ‘아, 저 모습이 은혜로구나! 저렇게 아프고 힘든데도 저걸 감당하는 건 은혜 아니면 할 수 없는 거구나’ 많이 느꼈죠.

오래 전부터 아그네스의 엄마이기도 했죠. 이젠 아들 낳은 진짜 엄마가 됐고.
우간다의 딸, 아그네스를 만난 게 2009년이었어요. 촬영을 위해 간 건 데, 저는 아프리카 아이가 나를 엄마처럼 대해줄까 내심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마을 입구까지 아그네스가 달려와 폭 안기는 거예요. 그리고 사흘을 같이 지내며 저를 엄마라 부르라고 한 건데, 나중에 제 엄마 아프고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 생각 할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나요.

엄마가 밤 늦어지면 저더러 가라 하시거나 먼저 들어가 자겠다고 하셨어요. 그게 사실은 통증이 와서 그러신 건데, 가족과 자식에게 아픈 모습 안 보이시려고 혼자 앓으셨던 거예요.

엄마 마음이었던 거죠. 저는 그걸 알지 못하고 엄마랑 더 많이 같이 있어주지 못했던 게 마음 아팠고, 아그네스 두고 올 때 그래서 더 울었던 것 같아요.

사흘 만에 헤어져야 해서 아그네스 안고 울며 “엄마 내일부턴 못 와. 기다리지 마” 했는데, 원래 아프리카 아이들이 감정 표현을 잘 안 한다고 해요.

그런데 아그네스는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눈물이 가득해지며 말없이 제 품에 안기더라고요.

헤어진 뒤 선교사님이 아그네스에게 이렇게 물으셨대요. “엄마 간다는데 왜 가지 말라거나 다시 오라는 말 안 했어?” 그랬더니 “(에이즈 보균자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엄마 그 먼데서 다시 왔을 때 나 없으면 어떻게 해요?”하더래요.

출국 전에 그 말 전해 듣고 제가 다시 아그네스 보러 가겠다고 오열했어요.
“아그네스, 넌 죽지 않을 거야! 엄마가 꼭 다시 너 보러 올 거야!” 말해줄 거라고!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이 저를 말리셨어요. 그건 어린 아이에게 ‘희망 고문’ 같은 거라고.

그런데 놀랍고 감사하게도, 이듬해 말고 2년 뒤부터 거의 매년 아그네스 보러 해마다 한번은 아프리카 가게 해주셨네요, 하나님이! 결혼하고선 남편 하고 웨딩 포토 찍으러도 가고요.

지금은 한국 나이로 중고생이 됐는데, 아프리카 여성이 성장이 빨라 벌써 다 큰 처녀 같답니다.

아그네스랑 처음 만날 때 잊지 못할 추억은?
엄마가 먼저 뭐 해줄까 물으니까 같이 물 길러 가재요. 걸어서 한 삼십 분 거리의 연못에 가서 오염된 흙탕물 길어오는 건데, 그걸 엄마랑 같이 가는 게 꿈이었다는 거예요.

시내 가서 장난감이나 옷 사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 물에 약 타서 정수해 마시는 건데, 그 몇십원 몇백원 약 살 돈이 없어 그냥 먹고 탈나고, 에이즈 걸린 엄마가 수유하면 바로 전염되는 걸 뻔히 알면서 먹일 게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먹여서 또 병이 대물림되는 현실이었어요.

깨끗한 물, 영양가 있는 음식, 약 제때 먹이면 건강하게 자라며 꿈도 펼칠 수 있는 아이들인데, 아그네스도 그래서 그렇게 된 아이고. 그래서 그 후 기아대책 홍보대사로 봉사하기 시작했어요.

책 《안녕, 아그네스!》도 내고 아그네스를 위한 노래도 만들어 부르게 된 것이죠. 노랫말이 이래요.

이 노래의 작곡자가 지금 남편이 됐어요.
오래전에 제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쓴 적이 있었어요.

이분이 그 곡 지은 분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거든요. 결혼이란 건 하나님이 예비해주셔야 할 수 있는 걸 텐데, 전도사님(유은성)을 만난 시기가 제가 힘들 때라 시기가 맞았지 싶어요.

아그네스 노래 만들 때는 일로써 만났지만, 마무리하고서 엄마가 갑자기 안 좋아지셨어요. 남편도 기아대책 홍보대사여서 단체서 여럿 오실 때 같이 예배도 드려주시고 호스피스 병동에도 와주면서 가까워졌죠.

2012년 연말에 엄마 돌아가시고 교제를 시작했는데, 데이트할 때 시간의 십일조를 같이 드려보자는 제안을 제가 했어요. 같이 큐티 나눔을 해보자는 거였는데요, 원래는 한 시간만 해보자는 게 두 시간, 세 시간이 되더라고요.

저희 부부가 결혼한다니까 참 많이 관심 가져주시고 말도 많이 들었는데요, 청년들이 물어보는 게 결혼할 때 무슨 사인이 있냐 그래요.

남편이 그러기를 남자가 먼저 알아볼 수밖에 없는 거래요. 아담이 하와를 볼 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알아봤으니까요. 여자도 싫으면 할 수 없는 거니까 당연히 마음이 가야 하는 게 맞는 것이고.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 같이 드리는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해줍니다.

말씀을 읽고 나누면 서로의 삶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면서 깊이 서로를 알 수 있고요. 또 남편이 신학을 한 사람이니까 성경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만약 남자친구나 여자친구가 믿음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사람이라 해도, 이런 시간을 가져보라고 꼭 권하고 싶어요.

한동안 신앙생활을 잘 못한 적이 있었다고요?
어려서 데뷔하고서 한 5년은 바빠서 거의 신앙생활을 못했던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주일은 항상 교회에 있는 거라는 생각을 해왔는데, 일요일의 방송인 SBS 인기가요 진행을 오래 하는 동안 주일에 예배드리는 건 상상을 못했어요.

그러다보니 마음이 우울해지고 힘들어졌죠. 제가 원래는 연예계에 꿈도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관심을 받는 것이 어찌 보면 감사하고 복받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비관적인 생각을 많이 했어요.

A형이라 그런지 소심하고 낯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연예인이 되면서 누구에게 다 이야기할 수도 없고, 가족이랑 만날 시간도 없다 보니까 우울해지는 거예요.

그러나 보니 잠들 때 “왜 나를 연예인으로 만드셨어요?” 하는 기도도 하고요. 그때 다이어리 보면 우울하다, 죽고 싶다는 말이 많았고, 사실은 제가 가장 왕성하고 활발하게 활동할 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우울한 시기였어요.

그때는 그냥 지치고 힘들고, 영적으로 공급받지 못하니까 주변도 못 돌아보고, 아마 그때 주변 사람들한테도 알게 모르게 많은 상처를 줬을 거예요. 그래서 대학교 다니면서 연기자 김정화가 아닌 인간 김정화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걸 연기해야 할 때가 많으니까, 어느 정도 살아보고 느껴보고 고민해봐야 연기하는 게 달라질 테니까요.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지 말고 일반 사람처럼 살아도 보고 싶다고 활동을 줄이고 친구들 사귀고 여행도 다니고, 그렇게 한 2,3년 지내는데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셨던 거예요.

고난이 신앙을 다시 회복한 계기가 되었겠군요.
내가 너무 가족을 소홀히 했구나 하는 걸 느끼고, 일도 했지만 엄마 병간호도 하러 다니면서 엄마랑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엄마 아팠던 게 전환점이 되었지만, 제가 하나님과 다시 친밀하게 된 계기라면 역시 아그네스 이야기를 또 할 수밖에 없어요.

아그네스 만나고 한국에 돌아와 제가 가장 크게 변한 건 하나님이랑 깊은 교제를 시작하게 된 것이에요. 아프리카가 어렵다는 말은 들었지만 제 눈으로 보고 오게 됐고, 내 딸이,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그 현실에 있다는 걸 생각하니까 너무 마음이 아픈 거예요. 그러니 기도할 수밖에 없었어요.

집 앞 교회 금요철야 가서 모자 푹 눌러 쓰고 맨 뒤에 앉아 엄청 울고 기도했어요. 그때 제 신앙이 아마 가장 뜨겁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원래 좀 소극적이고 기도할 때도 묵상하는 편인데,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니까 제 삶이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어요.

내 삶을 감사하게 되고 주변을 돌아보게 되고, 나한테 주셨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그게 모두 행복한 것이고 기쁘고 감사한 것뿐인데, 내가 그걸 몰랐구나 하며 회개하고 잘못 살았던 것을 돌아보게 됐고요.

갓피플매거진엔 2011년 5월 소개됐고 이번이 두 번째인데, 지난 6월엔 아기 돌잔치 소식이 있더군요. 결혼하니 무엇이 좋아요?
제 편이 많아진 거죠. 저는 물론 남편이 좋고 감사하지만 특히 시부모님이 너무 좋으세요. 은퇴하신 목사님이시거든요. 어머니도 당연 사모님이셨고. 일흔을 넘긴 나이이신데 생각이 아주 젊으세요.

저희랑 말도 잘 통하시고요. 제가 엄마 돌아가시고 결혼한 거라 어머니가 새로 생긴 셈인데, 한번은 아주 밤늦게 어머니 댁에 갔는데도 밥을 차려주신 거예요.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에게 카톡을 보냈어요,

“어머니 너무 감사해요. 이렇게 밥을 먹으니까 옛날 제 엄마가 저 촬영 끝나고 오면 밥 차려주신 게 생각나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바로 답을 주셨어요. “정화야, 나도 나이 서른에 엄마 돌아가셨단다. 네 마음 어떤지 내가 알아. 그러니까 앞으로 어머니라 부르지 말고 그냥 엄마라고 불러.” 완전 감동이었어요!

그날 이후로 저는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러요. 이제 결혼 2년밖에 안 됐는데 친정 엄마 대하듯 때론 말도 편하게 해요. “엄마, 오늘 밥 뭐 했어? 엄마, 이건 어떻게 (요리)하는 거야?” 그러고, “엄마 집에 반찬 없어? 내일 손님 오시는데 먹을 게 없네” 그러면 다 싸주시고, 홍삼 달여 저 먹이시고, 진짜 엄마처럼 대해주세요.

저희 남편이 막내고 시누이가 두 분 계신데요, 원래는 형님이라 불러야 하잖아요. 저는 그냥 언니라고 부르거든요. 언니들도 저 동생 대하듯 그냥 “정화야” 부르시고.

심지어 저는 언니 남편분까지 오빠라고 불러요! 엄마는 하늘나라 가셨지만 더 좋은 가정을 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저 위해서 기도 많이 해주셨나 봐요.

두 분이 같이 예배드린다는 사연을 SNS에서 종종 봤는데, 그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면?
결혼하고서 남편 덕에 찬양집회에 한 몇 백 번은 참석했을 거예요. 단기간에 이렇게 많이 예배를 드려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면 예배의 홍수 속에서 감사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데, 희한한 게 남편이 찬양집회를 하면 하나님이 그때마다 다른 은혜를 주세요. 남편의 찬양과 메시지를 들을 때 회복되기도 해서 눈물 흘릴 때도 많고요. 너무 감사하죠.

저는 그동안 다니던 교회를 지금도 출석하고 있는데요, 방배동에 있는 늘함께교회랍니다. 작은 개척교회인데, 남편이 사역 때문에 주일은 같이 있지 못하지만 매주 수요일 찬양하는 예배를 남편이 인도하고 있어요.

저는 물론 같이 참석하지요. 흥미로운 점은, 저희 교인들이 멀리서 오는 분들이 많아서 오히려 수요예배에는 소문 듣고 오신 다른 교회 분들이 더 많은 겁니다.

기도제목을 나눠주시면.
저도 녹음에 참여한 남편의 5집 앨범이 나왔잖아요. 앨범 위해 기도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고. 남편이 ‘여울돌’이라는 어린이 환자를 돕는 NGO의 홍보대사이기도 한데 그 모임에서 아픈 아기들의 영상을 보고 많이 아프고 눈물 흘렸어요.

이제 나도 저만한 아기의 엄마인데, 우리 아기는 감사하게도 건강하지만 저렇게 아픈 아기들과 그 가족을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돕는 일에 함께 하고 싶어요. 우리 아들을 잘 양육해 하나님이 주신 복을 다른 이들에게 나눌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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