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 갓피플 #53]집에 사는 사람이 행복한 집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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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에서 황 목수라고 불리는 서울한옥 대표 황인범 씨. 그는 목공부터 석공, 화공, 단청, 철기공 등 건축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역할을 하는 도편수다.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최초의 외국인 교수인 로버트 파우저 교수의 낡은 한옥을 고쳤던 과정을 작년에 책《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돌베개 간)으로 내기도 했다.

파우저 교수의 한옥 ‘어락당’은 도편수 황인범 씨가 참여한 대표적인 집이다.

그 집은 한옥에 대한 고민을 풀어줄 아이디어가 무궁한 집이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파우저 교수는 황 도편수가 지은 집을 뼈대가 좋은 한옥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황 씨는 자신의 책에서 한옥을 짓는 것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한옥을 짓는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솔직한 소통을 통해서 하는 것이며, 그 소통은 서로 존중하는 관계에서 나온다.”

파우저 교수의 집을 지은 경험은 그에게 집을 더 잘 짓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배운 계기가 됐다.

현재 서촌에는 황 대표가 만들고 있는 집이 곳곳에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그가 만든 8평 크기의 한옥을 방문했다.

마당에 들어서 고개를 드니 하늘이 훤히 보였다. 서울에서 하늘이 보이는 집에서 살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자체가 존경스러웠다.

집에 사는 사람이 행복한 한옥을 짓는 도편수 황인범 씨. 집을 짓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과 조화였다.

집을 지을 때는 함께 짓는 이들과 소통을, 짓고 난 뒤에는 그 집이 이웃과 이룰 조화를 중요시했다.

자신이 짓는 집이 언제나 사람들이 함께 하는 행복한 곳이기를 꿈꾼다.

목사를 꿈꾸다 목수가 되다

모태신앙으로 어렸을 때부터 목사가 되기를 꿈꾸며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학교 동아리 SCM(기독학생연합회)의 선후배들이 모두 목사가 되겠다는 걸 보고 여러모로 부족한 자신까지 목사가 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태신앙으로 자라 학교 다닐 때도 항상 장래 희망이 목사였습니다. 중앙대 독문과를 간 것도 나중에 신학을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대학 4학년 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나무를 만지며 몸을 쓰는 전통 건축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동안 방학이 되면 노동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곳에 가면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무엇보다 스스로 노동하는 일이 무척 즐거웠다. 그는 기자에게 자기가 몸 쓰는 일을 잘하게 생기지 않았냐고 물었다.

듬직한 외모에 뚝심 있고, 서글서글한 인상을 지닌 그와 목수라는 직업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대기업 시험을 볼 때, 전 창덕궁 보수공사 현장을 찾아가서 목수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될 줄 알았는데 떨어졌습니다.

그때 목수가 되지 못해 많이 낙심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가방끈이 긴 먹물들은 목수하기 힘들었습니다. 자꾸 머리를 굴리려고 하니까 그런 의식을 버려야 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무작정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사찰을 돌며 일자리를 찾았다. 그 당시 한국에서 나무로 지은 곳이 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97년 순천 선암사 문화재 보수공사 현장에서 그의 나이 스물 일곱 살 때 심부름을 하며 목수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도저히 부처에게 절하는 건 할 수가 없어

황 목수는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노인 목수들에게 한옥 짓기가 삶과 노동이 자연스럽게 일치하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처음엔 ‘오막살이’(담배 오마샤리프)를 사오라는 심부름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대패질, 톱질을 하고 먹을 긋는 단계에 이르렀다. 어느덧 지붕 위를 올라가 걷는 내공이 쌓였다.

두 번째 스승에게선 기술을 전수받았다. 목수 자격이 없으니 집에 가라는 말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스승의 기술을 배우고 있노라면 듣는 욕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목수 일이 4년 정도 됐을 때, 스승인 노인 목수들이 “쟈도 인자 목수라 불러야 안 허것는가?”라는 말을 들으면서 황 목수로 인정을 받았다. 목수생활 10년 만에 팀장(오야지)이 되어 첫 한옥을 지었다.

“10년 정도 하다보면 일 자체가 심심해집니다. 나무를 다루는 게 좋았지만 끝까지 그 일을 하려면 가치관이 맞아야 했습니다

절에서 막내 목수로 일할 때는 열심히 일만 하면 됐습니다. 하지만 점점 직급이 올라가면 스님과 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하기 전에 부처에게 절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하지만 법당의 부처님 앞에선 도저히 몸이 굽혀지지 않았습니다. 모태신앙인으로 서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문화재수리기능사 제3702 호 대목 자격을 지닌 문화재보수 전문가로 자리를 잡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고치는 일에 회의가 들었다.

10년 동안 문화재 수리만 하다가 2010년 우연한 기회에 서울 서촌(종로구 누하동) 한옥 건축 현장에서 도편수를 맡으면서 한옥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사람이 사는 집을 짓는 한옥 시공업체인 ‘서울한옥’을 차렸다.

2012 체부동 어락당

통인동 한옥 내부모습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은혜, 노동

“서촌에서 처음 지은 한옥은 문화재 한옥이었습니다. 여섯 채 정도 짓고 나니 서촌에는 문화재 한옥보다는 도시형 한옥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네 모임에서 알고 지내던 파우저 교수가 자신의 집을 1930년대 식 도시형 한옥으로 고쳐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파우저 교수의 집을 수리한 과정을 기록한 그의 책에는 한옥을 짓거나 수리하기 위한 준비과정부터 철거, 재료 선택, 주초석과 기둥 바로잡기, 설비공사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한옥에 대해 비싸고 불편하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장인과 노동자들의 땀과 노력으로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추위에 대한 문제도 요즘은 많이 개량되어 괜찮습니다. 여름엔 오히려 시원해서 에어컨도 필요 없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노동으로 그는 스스로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됐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 중에 하나가 고귀한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노동하는 인간을 만드셨다고 믿는 탓이다. 나무를 깎을 때는 수도하는 것처럼 구도자의 시간을 느낀다.

목수들이 나무를 깎을 때 받는 느낌은 다른 곳에서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나무를 다루면 정말 행복합니다. 나무를 깎을 때 나는 나무향기는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노동할 수 있는 이 일을 맡겨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지금도 감사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순천 선암사에서 목수 일을 시작하면서 마음에 품은 소원이 한옥교회를 짓는 것입니다.

2004년에 경상북도 영천시 자천교회를 수리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를 고치면서 무척 감격스럽고 남달랐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온다면 꼭 한옥교회를 짓고 싶습니다.”

서울한옥 www.seoulhan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