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있는 그들의 블랙가스펠

음악다큐의 새로운 방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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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음악다큐의 탄생

지금까지의 음악다큐멘터리는 소재에 따라서 두 가지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유명 뮤지션의 인생과 음악을 조명한 전기적인 다큐멘터리, 둘째, 음악이 중심이 된 역사적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나눌 수 있다.

197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더 유명했다는 전설적인 비운의 가수 로드리게즈(그는 슈가맨으로 불렸다)의 흔적을 쫓아 떠나는 <서칭 포 슈가맨>(2011)이나 2013년도 ‘EBS국제다큐영화제’를 통해 선보인, 비틀스의 개인 비서이자 팬클럽 매니저였던 프레다 켈리가 바라본 비틀즈의 세계를 다룬 <프레다, 그녀만이 알고 있는 비틀스>는 첫째의 분류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1960년대 반전과 평화를 외치던 미국의 젊은이들을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우드스탁 페스티발을 다룬 224분짜리 다큐멘터리 <우드스탁 페스티발>(1970)은 둘째 분류의 대표격이다.

모두 대중음악사적으로 유명 인물이나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영상기록으로서 다큐멘터리가 지니는 ‘사실과 해석’에 치중하고 있다. 흥미는 있지만 감동은 적은 편이다.

기독교음악다큐멘터리는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역사적인 해석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는 신앙적 감동을 추구한다. 음악을 통한 선교나 신앙회복의 메시지를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정형화된 기독교음악다큐멘터리조차 많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의 가까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기독교음악다큐멘터리는 케냐의 나이로비 외곽에 있는 쓰레기마을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모아 조직한 선교합창단 이야기를 다룬 <하쿠나 마타타 : 지라니 이야기>(2010)가 전부일 것이다.

이 영화는 베네주엘라 슬럼가의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는 실화를 다룬 <기적의 오케스트라-엘 시스테마>(2008)와 유사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인 선교사에 의해 조직된 선교합창단으로서의 역할이 도드라진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문화계에 기독교음악인이 적지 않고, 또한 교회가 세상에 자랑할 수 있는 예술영역이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음악다큐멘터리 제작이 부진한 것은 참으로 의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뜻밖에도 2013년이 가기 전에 신선한 기독교음악다큐멘터리 하나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흑인 영혼의 음악이라 불리는 소울 음악의 원류라 할 수 있는 ‘블랙 가스펠’을 배우기 위해 떠나는 한국 뮤지션들의 모습을 담은 <블랙 가스펠>이 그것이다.

이 영화에는 뭔가가 있다

<블랙 가스펠>은 일반적인 영화제작의 관행에서 벗어나 있다. 기획은 있지만 최종적으로 출연자들이 공연무대에 서야 하는 내용의 성격상 이번 다큐의 제작진의 생각대로 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아 보이지 않는다.

시나리오나 콘티가 없으니 모든 것을 출연자 개개인의 열심과 능력에 맡길 수밖에 없다. 특히 신앙적인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 이것은 마치 부흥회를 열어놓고 성령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일과 다름없다.

감독도 시나리오도 없이 단지 한국의 유명 뮤지션들이 뉴욕 할렘가의 교회로 찾아가 블랙 가스펠을 배우는 과정을 영상에 담을 때 뭔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설렘은 절반의 성공으로 나타났다. 성공의 가장 큰 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 한국출연자들의 신앙에 대한 열정이 단순히 연기로서는 이룰 수 없는 흑인 가스펠 음악의 감동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양동근, 정준, 김유미 그리고 크리스천 소울 그룹인 헤리티지와 미국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은 주일 흑인 교회에서 함께 찬양하며 예배드리기를 즐거워했다.

이미 나름대로 노래 꽤나 한다는 사람들이 짧은 시간 안에 흑인 가스펠을 영혼에 담아 노래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백인들의 노예로 살아오며 차별과 박해를 받아온 흑인 노예들이 마음 속 깊이 사무친 원망과 소망을 노래에 담아 주님을 향해 부르짖었던 그 느낌을 재현하는 일은 문화가 다른 한국의 젊은이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다면 흑인 노예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셨던 하나님과 아리랑의 나라 대한민국에 신앙의 부흥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동일하신 분이라는 사실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다.

둘째, 빈곤과 범죄의 대명사였던 뉴욕 할렘에서 흑인 가스펠을 일상적으로 부르고 연주해온 목회자와 전문가들의 음악인생이 스크린에 짙게 묻어나온 점도 성공에 한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벌서 은퇴했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찬양하는 노인 사역자들의 모습으로부터 삶과 신앙 그리고 노래가 하나가 되어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떠한 조작이나 연출이 없어도 훌륭한 그림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셋째, 양동근의 새로운 발견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대중성은 결국 음악과 양동근에게 있다. <블랙 가스펠>은 특별한 스토리 라인을 구성하고 있지 않다.

특히 갈등을 구성할 만한 특별한 요소도 부족하다. 기껏해야 위다 하딩 선생으로부터 ‘영혼 없는 플라스틱’ 같다는 핀잔을 받은 정도.

그러나 양동근은 오디션에서 누가 들어도 형편없는 노래를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딩 선생으로부터 진정한 소울에 ‘거의 가깝다’는 칭찬을 받은 유일한 출연자였다.

도대체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하딩선생이 발견한 양동근 내면에 있는 소울은 과연 무엇일까?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온 천하에 커밍아웃한 양동근이 자신의 소울을 앞으로 어떻게 대중 가운데 전개될지 기대가 된다.

남은 절반의 성공은 관객의 몫이다

이제 절반의 성공을 말했다면, 나머지 절반은 실패일까?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성공의 절반은 지금 진행 중이다.

이 절반은 관객들이 담당해야할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영화니까 형편없어도 돈 주고 보자는 말을 할 만큼 얼굴이 두껍지 못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극장에 가서 볼 만한 그 무언가가 있다.

궁금한 분들은 시편의 이 말씀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시 71:23)”을 묵상하고 영화를 보시면 그 무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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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구
고신대학교 국제문화선교학부교수. 영화평론가. 이메일 moviejin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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