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의 시한부 인생에서 죽음을 배우다

‘안녕, 헤이즐’과 ‘두근두근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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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 두근 내 인생, 안녕 헤이즐

죽음을 알리는 문제보다 더 어려운 일은?

십대 청소년의 죽음을 묘사하는 영화는 사회적이거나 감상적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다. 올해 봄 화제를 일으켰던 이한 감독의 ‘우아한 거짓말’은 우리 사회의 은따(은근한 따돌림)가 일으키는 청소년 자살을 다룬 사회성 짙은 영화였다.

노골적인 학교폭력의 물리적 실상 대신에 왕따를 시키는 집단적 은따의 무서움을 분위기로 보여줌으로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공분과 사회적 경각심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재용 감독의 ‘두근두근 내 인생’은 선천성 조로증(早老症)으로 인해 80살의 신체나이를 갖게 된 16살 소년 아름(조성목)이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게 만드는 지극히 감상적인 영화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청소년들의 죽음이란 자살 아니면 몹쓸 병이나 사고가 원인인 까닭에 안타까움은 더 크기 마련이다.

실제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의 경우 청소년(15~24세)의 사망 원인은 ‘고의적 자해(자살)’가 인구 10만 명당 13명으로 가장 많았고, 교통사고와 암으로 인한 죽음이 그 뒤를 이었다.

자살이나 사고사가 아닌 병으로 인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어린 학생들이 죽음에 이르는 여정을 그리는 영화의 경우 성인의 죽음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현실의 문제를 관객들에게 제공하곤 한다. 그것은 왜 그들은 어린 나이에 일찍 죽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이것은 불치병에 걸린 환자들에게 그들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다.

특히 열 살도 채 안된 어린이에게 “네가 얼마 있지 않아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 “선생님, 왜 저 같은 어린 아이가 일찍 죽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고민을 얼마간 풀어준 사람은 죽음의 심리학자로 널리 알려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ubler Ross)박사다.

말기 암에 걸린 환자들의 심리단계를 밝힘으로써 호스피스 활동과 죽음 준비 교육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퀴블러 로스 박사는 그녀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생의 수레바퀴》에서 똑같은 질문을 받은 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더기라는 이름의 어린 아이가 ‘왜 자신이 일찍 죽어야 하는가’라고 한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했다.

“아주 짧은 동안만 피는 꽃도 있단다. 봄이 온 것을 알리고 희망이 있음을 알리는 꽃이기 때문에 모두로부터 사랑받는 꽃이란다. 그리고 그 꽃은 죽는단다. 하지만 그 꽃은 해야 할 일을 했단다.”

이 답은 죽음을 앞둔 어린 생명들에게 큰 위안을 줄 수 있다. 막연하게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는 것보다 어리지만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촉구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질 만큼 성장한 아이에게는 자신을 향한 긍정적 심리를 형성할 수 있는 까닭이다.

두근 두근 내 인생

영화가 가르쳐 준 죽음

조쉬 분 감독의 영화 ‘안녕, 헤이즐’과 이재용 감독의 ‘두근두근 내 인생’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청소년의 생의 마지막을 다루고 있다.

두 영화는 모두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베스트셀러였던 소설을 원작으로, 죽음을 앞둔 주인공의 나이가 모두 16살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영화 모두 꽃다운 청춘의 안타까운 죽음을 묘사하고 있지만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죽어가는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에 대한 지식을 전수하고 있다.

안녕 헤이즐

영화 ‘안녕, 헤이즐’은 말기암 선고를 받고 살아가는 십대 남녀의 ‘사랑과 죽음’을 통해서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의 모습을 긴 여운을 드리우며 그려내고 있다.

여주인공 헤이즐(쉐일린 우들리)은 갑상선암이 전이되는 바람에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하는 16세의 꽃다운 청춘이다. 호흡기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까닭에 항상 산소통이 들어있는 캐리어를 끌고 다니지만 말기암 환자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명랑하고 쾌활하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눈물을 흘리고 신세 한탄으로 이어지는 신파극만으로 이해되기 십상이지만, 두 영화는 죽음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첫째,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의료진들은 환자에게 곧 죽을 수 있다는 통보를 하기를 꺼려한다.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회피가 아니라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남은 시간 동안 삶을 정리하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둘째, 죽음에 대한 이해가 죽은 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자들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헤이즐이 말한 대로 요즘 장례식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산 자들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죽은 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추모사가 있다면 당연히 죽기 전에 들려주는 것이 옳다. 그를 사랑하고 또한 함께 했던 시간이 얼마나 감사했는지를 얘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셋째, 죽어가는 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어야 한다. 어떻게 위로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는 죽어가는 이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한다.

기저귀의 문화로부터 벗어나라

인간은 살면서 누구나 반드시 입어야 하는 두 종류의 옷이 기저귀와 수의다. 삶의 첫 옷이자 마지막 옷이란 의미 외에도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문화양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기저귀의 문화가 본능과 배설 그리고 쾌락 중심의 문화를 상징한다면, 수의문화란 성숙과 달관 그리고 초월의 문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문화를 지배하는 의식의 흐름에는 기저귀문화가 자리하고 있으며, 청소년 시절에는 더 그러한 것을 볼 수 있다. 살아있을 때 수의를 준비하는 옛 어른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보자.

수의를 마련하는 마음속에는 당연히 인생에 대한 숙고와 앞으로 남은 삶에 대한 계획과 다짐이 있지 않았을까?

‘안녕, 헤이즐’과 ‘두근두근 내 인생’은 우리에게 수의를 준비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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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구
고신대학교 국제문화선교학부교수. 영화평론가. 이메일 moviejin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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