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

국제시장에서 발견한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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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흥행공식 보다 중요한 우리의 아버지

윤제균 감독의 화제작 ‘국제시장’이 개봉 28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겨울방학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개봉한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이나 ‘호빗 : 다섯 군대 전투’ 등 할리우드의 블록 버스터 영화들을 물리치고 이룬 업적이어서 더욱 주목받을 수 밖에 없었다.

윤제균 감독 개인으로서는 ‘해운대’ (2009)의 1,145만 명의 기록을 훌쩍 뛰어 넘을 기세다. 그는 두 편의 천만 관객 동원 기록을 가진 흥행영화의 귀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국제시장’의 흥행원인을 보수와 진보의 관점에서 오는 갈등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덕분이라는 해석은 크게 마음에 둘 필요가 없다.

이미 ‘해운대’나 ‘1번가의 기적’ 그리고 훨씬 오래 전 영화인 ‘색즉시공’에서 봤듯이 윤제균 감독의 영화에서 정치적 색채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의 영화가 대중성을 갖는 이유는 갈등이 충돌과 파괴로 이어지기 보다 용서와 화합같은 갈등의 해소에서 오는 카타르시스에 있다.

윤 감독은 ‘해운대’만 하더라도 블록버스터 급의 재난영화가 갖는 시각적 효과에만 매달리는 법이 없었다.

사실 헐리우드가 만든 컴퓨터그래픽으로 인해 높아질 대로 높아진 눈을 가진 한국의 관객들이 한국영화 속 특수효과에 크게 감동할 가능성은 크기 않다.

윤 감독은 시각적 효과로 승부를 보기보다 재난 속에 내재해된 인간애, 특히 세대 간의 갈등이 화합되는 면을 보여주고 있다.

‘해운대’에서는 투쟁과 갈등을 중심으로 영화를 끌어가기보다 영화 속 개인들끼리 반목하고 대결했던 구도들이 거대한 죽음의 물결 앞에서 화해와 용납의 결론을 맺었다.

주인공 만식(설경구)은 사랑하는 애인 연희(하지원)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한편으로 만식은 선주이자 해운대 거대 상권을 가지려는 작은아버지(송재호)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쓰나미 앞에서 작은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하는 조카를 구하고 숨을 거두므로 용서와 화해의 길을 열었다.

‘국제시장’에서의 갈등은 외부로 표출되기보다 내면화한 것으로 나타난다.

6·25전쟁 당시 흥남부두에서 여동생을 잃고 아버지로부터 가족을 보살피라는 책임을 부여받은 주인공 덕수(황정민)는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가족에 대한 책임과 가난한 현실 사이에서 내적인 갈등을 겪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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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그리고 나중에는 여동생을 시집보낼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서 광부가 되어 서독으로 가기도 하고 노무자가 되어 목숨을 걸고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그가 노인이 되어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혼자 읊조리는 장면은 평생을 안고 살아온 내적 갈등이 해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덕수에게 아버지의 말씀은 당위적 명령이자 신앙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평생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닌 가족을 위한 삶을 살게 만든 갈등의 중심이었다.

힘든 인생을 살았지만 아버지와 약속을 지키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만족할 만한 평가에 이르는 모습은 관객에게 가족을 위해 희생한 아버지를 가슴 깊이 품을 수 있게 만드는 감동의 요소로 작용한다.

위대한 국민의 발견

《문명의 충돌》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 사무엘 헌팅턴은 하버드대 국제지역 아카데미 수석교수인 로렌스 해리슨과의 공동저서로 출판한 《문화가 중요하다》에서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에 대한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1990년대 초 나는 가나와 한국의 1960년대 초반 경제 자료들을 검토하게 되었는데, 60년대 당시 두 나라의 경제 상황이 아주 비슷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다. (중략) 30년 뒤 한국은 세계 14위의 경제 규모를 가진 산업 강국으로 발전했다. (중략) 반면 이런 비약적인 발전이 가나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략) 내가 볼 때 ‘문화’가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한국은 수출 5731억 달러, 수입 5256억 달러에 무역수지는 475억 달러 흑자를 기록한 세계 8대 무역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 이유를 영화 ‘국제시장’은 확인시켜준다.

끈끈한 가족애를 바탕으로 자식들을 어떻게든 부모세대가 겪었던 고통을 받지 않도록 잘사는 세상을 물려주려는 책임과 희생의식은 한가족을 살렸을 뿐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일으킨 원동력이었다.

오직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보며 우리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아버지 세대가 겪은 고난의 시간을 그린 영화를 보며 흘리는 눈물은 단지 주인공의 슬픔과 고통이 관객에게 전이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난을 이겨내고 가족을 지켜낸 주인공이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란 자랑스러움이 기쁨의 눈물로 함께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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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지배와 전쟁을 겪은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공적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외국에 원조를 주는 공여국이 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2014년도에 우리가 제공한 원조금만 2조원에 이른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정치발전을 단시간에 그리고 동시에 이룬 나라 또한 대한민국 밖에 없다. 우리가 아버지의 고단했던 삶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성경은 과거 역사에 대한 기억이 미래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가 ‘국제시장’을 보는 일은 단순히 추억과 회상으로 감상에 젖을 수 있는 현실의 여유를 만끽하기 위함이 아니다.

아버지 세대의 고난과 희생을 기억함으로 미래의 희망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신 32:7).

영화 ‘국제시장’은 1983년에 있었던 이산가족 상봉 생방송의 기억으로 끝을 맺는다. 만일 이 영화의 속편이 나온다면 IMF경제위기와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건 그리고 세월호 침몰사건이 틀림없이 등장할 것이다.

전 국민의 금모으기 운동으로 IMF위기를 극복했고, 온 교회가 나서서 태안 앞바다에 기름 묻은 돌들을 일일이 닦아 생태계를 복원시켰듯이, 세월호의 아픔을 이기고 발전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국제시장 2’에는 담겨있으리라.

그때에 우리 자녀들은 다시 한 번 한국 아버지의 위대함에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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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구
고신대학교 국제문화선교학부교수. 영화평론가. 이메일 moviejin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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