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과 ‘베테랑’에 관객이 몰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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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서 푸는 설움

영화와 그 영화를 생산해 낸 사회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영화가 사회를 반영하며 동시에 사회는 영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이번 여름 한국 영화들은 다시 한 번 보여 주었다.

올해 여름 개봉한 한국영화 ‘암살’과 ‘베테랑’은 동시간대에 상영되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로, 한국영화사에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일제강점기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암살 작전을 그린 ‘암살’이 의도한 일은 아니었지만 광복 70주년을 맞은 8월 15일을 기점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서, 정의로운 형사의 활약상을 그린 ‘베테랑’이 개봉 2주 만에 7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러한 추세라면 천만을 넘기는 일은 시간 문제라 할 수 있다.

천만 명 이상을 동원하는 영화들에는 다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매우 재미있다는 오락적인 강점이 있지만, 개봉 당시의 사회분위기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이 분명하다.

지난 해 ‘명량’이 영화진흥위원회의 공식통계상 17,614,679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영화로 기록될 수 있었던 것도 일본과의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이순신과 같은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를 열망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크게 한몫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암살’과 ‘베테랑’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된 사회적 욕구는 무엇일까? ‘암살’이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반면 ‘베테랑’은 현실의 시간대 위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내용과 인물은 달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속에는 유사한 심리가 흐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심에는 ‘카타르시스’(catharsis)가 있다.

영화에서 카타르시스는 흔히 슬픈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릴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후련한 감정을 설명할 때 쓰는 말이다.

용어의 역사적 근원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서 비극을 정의할 때 사용된 말로 비극의 주인공이 비참한 운명에 놓일 때 그것을 바라보는 관중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슬픔과 연민의 감정이 정신적인 고양상태에 이르게 하는 작용을 뜻한다.

종교적으로는 죄를 씻는 ‘정화’ (淨化)의 기능을 설명할 때 쓰기도 하지만, 현대 심리학에서는 마음에 담아둔 부정적 상처나 감정을 흘려보내는 ‘배설’ (排泄)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한다.

즉,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죄를 고백할 때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는 것이 카타르시스의 정화적 의미라면, 마음속의 불편했던 경험이나 정서들이 영화 속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칠 때나,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이나 행동을 주인공이 대신해 줄 때 속이 시원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는 것 역시 카타르시스의 배설적 의미가 되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을 날려버리다

‘암살’은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매국노 강인국을 암살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한국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과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그리고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이 일으키는 거사와 이것을 방해하는 배신자 염석진(이정재)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대립이 이야기를 구성한다.

염석진은 겉으로는 임시정부의 경무국 대장으로 암살단을 조직하는 역할을 맡지만 속으로는 이 계획을 일본에 팔아 한몫 챙기려는 음흉한 모략과 배신을 일삼는 인물이다.

관객의 불편한 진실은 여기서 시작된다. 애국하는 사람들은 고통과 죽음으로 몰리고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한 인물은 해방이 되어서도 어떻게 큰소리칠 수 있는가?

일본 앞잡이를 지켜보며 관객들은 일제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의 과거와 독도영유권 분쟁을 일으키고 어린 여성들을 일본군 성노예로 삼은 종군위안부에 대해 여전히 사죄하지 않은 아베 총리와 일본정부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이 뒤섞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억울하고 불편한 감정들을 한방에 날린 것은 암살에 나선 독립군의 장엄한 죽음이며, 동시에 해방 후에 경찰 고위직에 오른 염석진을 결국에 처단하는 장면이다. “16년 전의 임무,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실행합니다.”

안옥윤은 김구 선생의 명령을 해방이 된 이후에라도 지켜내고 만다. 한국인이라면 해야만 했을 일제청산을 영화가 대신 해주고 있는 것이다.

‘베테랑’은 보다 가볍게 응어리진 현실을 속 시원하게 풀어나간다. 재벌가 2세 조태오(유아인)에게 희생당한 운전기사(정웅인)의 억울함이란 보통의 직장인들이 대기업과 그 오너들에 의해 당해왔던 ‘갑질’의 폐해 그대로였다.

몽둥이로 두들겨 패고는 게임 값으로 수표 몇 장을 건네거나 술과 마약 그리고 여자에 둘러싸여 파티를 즐기는 퇴폐적 행태, 직원들을 노예취급하며 인격을 모독하는 언행들은 이미 언론에서 보도된 재벌가의 흔한 모습들이다.

거기다 ‘땅콩회항’과 ‘후계자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재벌가 자녀들의 권력암투’까지 국민들은 못 볼 것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동안 누적된 국민의 분노와 불만을 풀어준 것은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이다.

재벌 앞에서 기죽지 않고 ‘죄는 짓지 말고 삽시다’고 말할 수 있는 경찰을 우리는 원해왔다.

‘나한테 이러고도 뒷감당할 수 있겠냐’는 재벌의 협박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을 수 있는 민중의 지팡이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여형사 미쓰봉(장윤주)이 조태오의 얼굴을 걷어차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서민의 승리를 알리는 팡파르와도 같은 것이었다.

영화가 없었다면 한국의 힘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서러움을 달랠 수 있을까? 영화관 밖 현실은 돈과 권력을 가진 자의 논리가 지배하고, 힘없고 빽없는 보통사람들은 당하고 살기가 일쑤인 세상에서 영화는 그나마 현실의 위로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영화는 끝났고 현실은 다시 우리 앞에 높여져있는데 이를 어찌할까? ‘암살’과 ‘베테랑’이 관객에게 해주었던 일을 교회는 할 수 없을까?

공의가 실현되고 돈과 권력에 기죽지 않으며,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교회는 만들 수 없을까? 최소한 세상에서 고통 받은 백성에게 교회는 위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사 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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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구
고신대학교 국제문화선교학부교수. 영화평론가. 이메일 moviejin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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