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 고독한 우주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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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 감독의 최신 영화 ‘마션’ (The Martian) 은 사고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식물학자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귀환을 다룬 영화다.

형식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한 사람을 고향으로 데려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으는 휴먼 스토리를 담았다.

영화는 두 가지의 큰 줄기를 형성하며 관객들에게 긴장감과 무사귀환을 향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는 화성에 남겨진 주인공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귀환시키기 위해 지구의 과학기술자들이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주 미아로 버려진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기독교문화에 영향을 받은 아메리칸 휴머니즘의 전형이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길을 떠나는(마 18:12,13) 성경의 이야기에도 부합하지만, 위기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책임을 다하는 행동을 통해 다문화사회에서 사는 미국인들을 연합시키려고 애써온 미국의 휴머니즘 정신도 함께 엿볼 수 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책임을 다한다는 높은 이상과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다양한 인종과 전문가들 심지어 중국의 과학자들까지 힘을 합친다는 설정은 차가울 것 같은 지성과 과학의 면모를 따뜻한 휴머니즘의 온기로 감싼 모습이다.

< 마션>은 할리우드가 그동안 보여준 낙관주의 세계관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이미 영화 <그래비티>를 통해 우주 미아가 될 뻔 했던 여성 우주과학자를 지구로 귀환시키는 데 성공한 여파를 몰아서, 이번에도 관객들의 기대에 어긋남 없이 화성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을 지구로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이것은 할리우드의 가장 중요한 이념인 ‘해피엔딩’을 충실히 따른 결과일 뿐이다.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자들은 영화 관객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관객이 행복해지려면 우주개척을 성공적으로 이끈 위대한 미국의 과학자를 화성의 미라로 만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화성에서도 변함없는 주인공의 굳건한 정신과 과학적 사고를 통한 생존기술의 활용은 이러한 낙관주의를 지탱하며 관객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일 뿐이다.

신앙과 과학, <마션>을 읽는 두 가지 방법

<마션>은 한 번 볼 때와 두 번 볼 때가 다른 영화다. 영화비평가들에게는 ‘거듭 보기’가 영화 보는 법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고마감 시간에 쫓기는 대부분의 영화전문 기자나 평론가들은 한 번 보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많다. 그러나 <마션>만큼은 두 번 보아야 깊은 맛을 알 수 있다.

처음 보았을 때 <마션>은 현대의 과학주의 세계관이 깔려 있는 영화처럼 보인다.

미항공우주국 (NASA)의 아레스 3탐사대는 화성에 착륙한 이후 주거시설을 설치하고, 화성의 이곳저 곳을 탐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탐사 도중 모래폭풍을 만나 식물학자인 대원 마크 와트니가 실종되고, 급박한 상황에서 탐사대는 그가 사망했다고 판단 화성에서 철수, 지구로 돌아 가는 귀환 길에 오르고 만다.

의식을 되찾은 와트니는 기지를 수습하고 수리하여 일단 생존공간을 마련하는 데 성공한다. NASA와의 교신에 성공한 이후 와트니는 구조대가 돌아오는 동안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식물학자의 지식을 총동원한다.

화성의 흙을 퍼서 동료들이 남긴 인분을 섞어 기지 안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모습은 인간의 지혜로움을 흥미 있게 보여주었다.

과학적 지식과 이것을 바탕으로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모험이 지구와 화성에서 펼쳐지지만, 우주에 홀로 남아 있는 인간의 겪는 심리적 고뇌와 고통에 대한 종교적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광활한 우주를 대면하고 화성에 홀로 남겨져 고독에 이르는 상황에서 인간이 오직 과학기술에만 의지해서 살아남으려는 모습은 과연 바른 것일까?

영화에는 무신론 과학자들이 믿은 과학이 결과적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현대인에게 과학이 신을 대신할 수 있다는 사고를 전해주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모세의 여정으로 <마션>을 본다면

그러나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는 가운데 두 번째 영화 관람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마션> 속에서 모세의 광야생활을 떠올리는 가운데, 훌륭한 기독교의 영성을 발견할 수 있다.

4년 후에나 오게 될 구조대를 기다리며 생존해야 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는 고독 속에 드러나는 참다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소명을 받기 전 모세가 경험했던 광야생활에 대한 은유와도 같은 것이다. 영화 속 화성의 황폐한 이미지는 모세가 떠돌아 다녔을 것 같은 광야를 연상시킨다.

와트니는 매일 우주선 밖으로 나가 지평선을 바라본다. 모든 인간과의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 살았던 모세 또한 그랬을 것이다.

특히 최고의 지성과 최첨단 과학으로 무장하며 화성까지 날아온 와트니가 모래폭풍의 위력에 졸지에 우주 고아 신세가 되어버린 것은 과학의 시대에 인간의 겸손을 가르쳐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모세도 한 때는 바로의 궁전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신분이었지만 광야로 도망친 이후에는 양치기로서 40년을 살 때 고독과 더불어 겸손함을 배우지 않았을까.

과학주의를 신봉하는 현대인에게 ‘마션’은 그럼에도 위대한 과학이 만들어낸 인간승리로 이해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사막으로 갔던 교부들 (Desert Father) 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인격의 덕목을 가르쳐준다.

첫째, 고독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딤후 1:7)다.
둘째. 현재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미루고 인내함으로 견디는 자기통제력(갈 5:23)이다.
셋째, 현상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볼 줄 아는 비전(마 19:26)이다.

감자를 재배하기 위해 불씨가 필요할 때 와트니는 우주기지 안에서 유일하게 불이 붙는 동료의 ‘나무십자가’를 불쏘시개로 사용한다.

“당신은 현재의 제 상황을 이해해 주시는 거죠? 부탁해요!” 나무로부터 불을 볼 줄 알고, 숨 쉬는 공기로부터 물을 생각하듯, 우주의 고독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비전이다. 거듭 볼수록 영화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가치는 영화를 보는 또다른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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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구
고신대학교 국제문화선교학부교수. 영화평론가. 이메일 moviejin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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