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순례 보다 더 중요한 일상의 삶-유기성 영성칼럼

유기성 영성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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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장로 부부 순례팀들과 하루 동안 받은 은혜를 나누고 마지막 기도를 하는데, 생각지도 않은 기도가 나왔습니다. “내일 성지에서 뿐 아니라 숙소에서 또 식당에서 또 버스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진정한 성지 순례를 하려면 숙소와 식당, 그리고 길을 걸으면서 주님과 동행하여야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처음 성지순례를 왔을 때는 특별한 은혜도 영적인 사건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성지순례가 거듭되면서 그런 감격은 사라졌습니다. 이미 다 가본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성지순례를 통하여 익숙한 이후에 더 큰 은혜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처음 성지순례를 왔을 때, 갈릴리 호수에서의 선상 예배 때 모두가 다 성령의 역사를 놀랍게 체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풍랑이는 바다 한 가운데서 성찬식을 했습니다. 성찬을 마치고 배에서 내려오면서 주님께서 풍랑이는 상황에서 주님과 연합하는 특별한 체험을 주셨음을 깨닫고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오늘 묵상한 말씀은 눅 2:1-20입니다. 구주가 나신 큰 기쁨을 전해준 천사들이 등장하고 하늘에서는 찬사들의 합창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곧 사라졌습니다. 들판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목자들은 다시 일상적이고 반복적이고 지루하고 도망가고 싶은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전과 똑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때부터 주님이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묵상하는데, 주님은 일상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셨습니다. 늘 반복되어 지루하기까지한 일상 속에 주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답답해 하시는 장로님들이 계십니다. 구약 성경이 그렇게 분명히 예언되어 있고, 그들이 사는 곳이 성지인데, 어떻게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열심이 없는 모태신앙인을 보는 1세대 성도들의 답답함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을 너무나 많은 기회와 은혜를 받고 있음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큰 은혜를 받고도 스스로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일상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지 않으면 그렇게 되고 맙니다.

쿰란 공동체에 가서 성경 필사 과정을 들으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성경을 필사하다가 ‘하나님’이란 이름만 나오면 다시 정결예식을 하고 그 단어를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란 단어 하나에도 이처럼 감격해하고 경외함으로 대하였기에 그들은 그 놀라운 은혜를 누리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성경책을 손에 들고 있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이며 가장 놀라운 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곧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순간인 것입니다. 시험산에서 예수님께서 40일 금식 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음을 묵상했습니다.

우리에게 시험 거리가 계속 일어나는 이유가 성령이 떠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께서 시험 가운데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시험거리가 많은 일상이 성령이 이끌어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엔게디 골짜기에서 가이드 이익상 목사님이 시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라는 구절을 원어적인 표현으로 읽어 주었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왔다가 펄쩍 펄쩍 뛰듯이 제가 하나님 앞에서 펄쩍펄쩍 뜁니다” 너무나 실감이 나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익상목사님이 “사슴이 왜 펄쩍펄쩍 뛰는지 아십니까?” 물으셨습니다. 대답하셨습니다. “시냇물에 물을 마시러 왔는데,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슴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두려웠겠습니까? 그래서 펄쩍펄쩍 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편 기자가 하나님을 찾고 찾았는데,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심정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시 42:2 )

이익상목사님의 설명을 듣는데 제 심정을 그대로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라’,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라’고 외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빈정거리듯이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았더니 주님이 뭐라고 합디까? 뭐라도 들리는 것이 있습니까?”

그 때마다 ‘주님을 바라보았더니 이런 저런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고 말해 주고 싶지만 그렇게 못하는 답답함이 있습니다. 주님은 왜 극적인 체험을 계속 주시지 않으시고 평범한 일상의 일들만 계속 경험하게 하시는 것인지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기도합니다. “주님, 어떤 특별한 일들을 허락해 주셔서 제 체면을 세워 주십시오” 매일 영성일기 컬럼을 쓰는 일도 때로는 마른 우물에 바가지를 긁는 것 같은 심정일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또 무슨 글을 써야 하나?”

그런데 주님은 제게 일상의 삶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진정 놀라운 일이고, 안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한 체험만 구하면 오히려 미혹받고 실족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사가랴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신 목적에 대하여 예언하였을 때,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눅 1:75) 하였습니다.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사는 것은 극적이고 즐겁고 놀랍고 흥미로운 삶이 아닙니다. 두려운 일이 많으며 지루할만큼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구원받은 우리의 삶입니다. 이 목표를 정확히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성지순례의 마지막 3일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성지순례 여정은 은혜가 많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 일상 생활에 돌아갔을 때입니다. 

그 때 성지순례 때 보다 더 분명히 주님과 동행하여야 성지순례를 잘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지 순례 여행 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