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함이 사라진 획일화된 예배에 ‘춤’을 더하다

예배 안에 춤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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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안에서 특송처럼 춤으로 참여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때에 무용수로서 기대하는 것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춤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흔히 하나님을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춤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언어 이외에 모든 의사 표현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대부분 ‘말’만을 사용한다. 하지만 말은 생각보다 제약이 많다. 타 언어권, 연령별, 교육 수준별로 다르게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경험에 의해 많은 부분이 제한된다.

광야 같은 고된 삶이 어떤 것이라고 말해주는 설교나 책들은 많지만, 그 중에 나의 마음을 울리는 단어나 표현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춤은 시처럼 보는 사람이 해석할 수 있는 여백이 있다. 무용수의 움직임을 보고 하나님과 나의 관계, 그 당시 나의 감정, 하나님의 마음 등을 각자가 겪은 경험에 따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직접적인 설명보다는 비유를 즐겨 사용하셨다. 무용수의 몸이 보여주는 움직임과 동작, 혹은 전체 춤을 보고난 후의 감정 등을 자유롭게 묵상해보길 권한다.

2016년 9월 어노인팅 12집 녹음 집회에서 인도자 최요한 간사님의 곡 <나에게도 말씀하소서>에 무용수로 참여했다. 이 곡은 ‘낯설고 고된 삶 가운데 주님을 기다리니, 주님 제발 나에게 말씀해 주십시오’라는 몸부림이 담겨있다.

나 역시, 지난 날 나에게만 말씀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 광야같은 시간을 다시 기억하며 춤을 췄다. 광야의 시간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시간인줄 알았는데, 이 춤을 추면서 ‘그렇지 않았다’는, 하나님과 나만 아는 비밀같은 위로가 내게 더해졌다.

보는 이들에게도 하나님과 자신만 아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만져지는 춤이 되길 바란다. 그것이 예배 안에 춤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춤으로 예배하는 것, 예배시간에 춤추는 것이 다른분들께는 매우 생소한 장면이겠지만, 내게는 너무나 당연한 예배의 모습이다. 나에게 춤은 너무나 익숙한 언어이지만 예배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지난 미국여행 중 참여한 모임에서, 모두가 영어를 사용하고 나는 혼자 뜨문뜨문 알아듣고 있던 중에, 다함께 한국말로 찬양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어떤 환대보다 나의 문화를 존중해주고 어설프게나마 함께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큰 감동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말’을 주로 사용하는 예배에서 익숙하지 않은 언어인 ‘춤’을 받아드려준 것 역시 내게 큰 감동의 순간이었다. 

항상 말만 가득한 예배 가운데 춤이 더해짐으로 인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다양한 방법들로 주님을 기뻐하는 예배에 더 가까워진 것이다. 이것 역시 예배 안에 춤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미국 아틀란타의 다민족 예술사역단체 ‘Proskuneo‘의 리더 조쉬(Josh)목사님은 예배가 다양하지 않다면 위험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매번 다른 모습의 예배를 드리셨고,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민족과 나라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로 하나님을 높이길 원하신다.

조쉬 목사님은 예배가 너무나 나의 취향에 잘 맞고, 편안하고, 익숙하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한다고 말한다. 예배는 항상 우리의 준비보다 크고, 우리의 갈망보다 크고, 우리의 방법보다 크다.

나에게 익숙한 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익숙한 그들의 언어와 문화들도 하나님의 예배 안에서 다양하게, 아름답게 공존하는 시도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글 = 김미레, 사진 = 오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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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무용수 김미레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무용과 석사
소마(Soma) 전문사
2016 선교한국 아트콜라보예배 무용수
어노인팅 12집 녹음집회 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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