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말씀묵상하는 쿡쌤] 양심이란 무엇인가?-디모데후서 1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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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어와 성경을 한꺼번에 읽고 묵상할 수 있도록 돕는 쿡쌤입니다. 세상에서 영향력 있게 살아가고자 하는 비전을 품은 크리스천들에게 영적 유익과 영어실력향상까지 가져다주는 계기가 영어말씀묵상을 통해 일어났으면 합니다.

하루에 짧게라도 주님과 대화하고,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주님이 주시는 새 소망과 지혜와 용기를 얻는 시간이 잠깐이라도 마련되길 바랍니다.


4년 전, 봄일 것이다. 새벽기도를 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날 읽었던 구절이 오늘 같이 묵상할 디모데후서 1장 3절이다. 이날 이후로는 묵상을 하면서 영어성경 뿐만 아니라 헬라어원문성경도 꼬박꼬박 챙겨보게 되었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디모데후서 1:3]
Timothy, I thank God for you–the God I serve with a clear conscience, just as my ancestors did. Night and day I constantly remember you in my prayers. [ 2 Timothy 1;3]
[영어를 국어처럼 해석하는 순차적 해석] 디모데야, 나는 감사한다 하나님께 너를 위해서— 그 하나님을 내가 섬기는 깨끗한 양심으로, 마치 나의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밤낮으로 나는 쉬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널 내 기도 속에서.

평소에는 그냥 넘어갈 부분이었는데, 그날따라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오는 하나님께⋯”에서 묵상이 막혔다. 다음 구절로 넘어갈 수 없다. 하나님을 양심으로 섬긴다. 이런 말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말이다. 보통은 “진실한 마음과 간절한 심정으로 섬기는 하나님⋯” 아니면 “신령과 진정으로 섬기는(예배하는) 하나님⋯”으로 표현될 말이다.

사도 바울은 왜 여기에 ‘양심’이라는 단어를 넣었을까? 오전 내내 이 구절을 생각하면서 ‘양심’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국어사전, 백과사전, 철학사전 ⋯ 하지만 거기에 실린 양심의 뜻으로는 오늘의 묵상한 구절을 풀어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양심’의 의미와 별반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철학사전에서 찾아본 ‘양심’의 뜻은 이렇다.
“양심이란 인간이 사회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도덕적인 책임을 생각하는 감정상의 느낌을 말한다. 즉 자기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각 개인이 스스로 그 행위에 대해 평가하는 것에서 생긴다 ⋯”

오전 내내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마지막에 읽기 시작한 헬라어 성경에서 답을 찾았다. 헬라어성경에 나오는 ‘양심’은 수네이데시스(συνείδησις)이다. 의미는 ‘서로를 아는 것’( knowing together with)이다.

양심이라는 단어의 뜻이 ‘서로를 잘 아는 것’⋯ .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비로소 사도 바울이 왜 하나님을 양심으로 섬긴다고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후 나는 성경 속에서 양심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로 다윗과 사도 바울이었다. 그들은 우리보다 양심의 의미를 훨씬 넓고 깊게 알고 있었다. 심지어 양심을 인격체처럼 대하고 있었다. 이것은 잠언 기자가 잠언 8장에서 ‘지혜’를 인격체처럼 표현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날 받은 감동과 통찰을 그대로 책에 담았다. 이 책은 필자가 처음 출간한 《양심 : 하나님의 음성통로》이다.

‘양심’이란 단순히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인간의 품성을 나타내는 게 아니다. 양심은 하나님과 내가 서로 교제하게 도와주는 수단이다. 즉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음성의 통로다. 그래서 다윗은 “양심이 밤마다 나를 교훈하도다“라고 하였다.

밤새도록 양심이 내게 말을 한다. 세상에 누가 이런 표현을 할 수 있겠는가? 다윗은 양심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고 있었다. 동시대 사람들이 하나님은 구만리 장천 하늘에 계실 거라고 생각할 때, 다윗은 이 땅에서 매일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일방적인, 한쪽만의 행위가 아니다. 서로 말이 오가는 교제를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말을 걸고, 하나님은 내게 답을 하시는 것이다. 이런 섬김이, 이런 예배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진정한 섬김(예배)일 것이다.

양심 이후로 필자는 영어성경읽기와 헬라어성경읽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영어성경읽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경이다.

그런데 이 성경은 맨 처음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원어 성경의 문자들을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고대어를 공부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서는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언제든지 간편하게 원어성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원어 성경구절의 단어들을 발음할 수 있으며, 독해할 수 있으며,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단, 이 모든 것이 영어로 되어져 있다, 영어독해만 된다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길도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