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 김길의 제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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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막 2:23,24).


1. 질문하는 의도를 분별하라

마가복음 2장 23,24절의 다음 내용을 보면 안식일 문제로 바리새인들이 의논하는 장면이 나온다. 말씀에서 보듯이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 했다. 살의를 가지고 질문하는 내용들이 온전할 리 없다.

질문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그 질문은 살의를 품고 있는 질문이다. 질문에 대한 논쟁은 의미가 없다. 그들의 죽이고자 하는 의도가 중요한 것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상황을 볼 때 의도의 중요성을 이해해야 한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막 3:6).

그들은 안식일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고박하고 죽이고 싶어서 안식일을 문제 삼은 것이다.

혹시 우리가 누군가를 주시하고 있다면, 왜 주시하고 있는지 자신이 마음으로부터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악한 의도를 가지고, 그것을 이룰 근거를 찾기 위해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에서 나온 질문인 것이다. 의도를 분별해야 의도하는 바에 붙잡히지 않게 된다.


2. 거짓을 이길 진실을 설명하라

누군가 살의를 가지고 죽일 근거를 찾을 때, 우리 마음은 심히 위축된다. 그리고 공포심에 붙잡히게 된다.

그러면 죽지 않아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공포가 이긴 것이다. 겉으로 공포심을 이기는 척해도 자신의 정신이 약해지는 것을 막을 순 없다. 계속되는 공격 속에서 정신이 약해져 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계속되는 이런 공격 속에서 살아가셨다. 예수님은 공포심에 붙잡히지도 않으셨고, 정신이 약하여지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다윗과 함께 한 사람들이 진설병을 먹은 성경의 내용을 가지고 설명하시면서 그 질문을 무력하게 만드셨다.

공포심은 악한 의도에서 나온 거짓말에 대한 반응이므로, 진실을 말하고 설명하는 것이 승리하는 방법이다.

거짓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진실이다. 거짓은 악한 의도를 이루기 위해 그 근거를 찾다가 만들어 낸 상황에 대한 의미규정이다.

진실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하나님의 성품에 입각한 의미규정이다. 거짓과 진실의 차이는 사실여부보다 사실에 대한 의도와 의미규정에서 갈린다.

거짓을 무너뜨리고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의도를 파악하고, 거짓을 분별하며 진실에 입각해 강건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공포심은 진실을 볼 수 없게 만들고, 거짓을 피하게만 만들어서 상황을 다스릴 수 없게 만든다. 안식일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말씀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이것보다 더 분명한 진실은 없다.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8).


3. 안식일의 주인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안식일에 대한 규정은 예수님께서 정하신다. 우리가 자주 범하는 실수는 주인이 없는 줄 아는 것이다. 물건에만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도, 신앙의 내용에도, 우리 삶에도 주인이 있다.

바리새인들은 주인이 없으므로 악한 의도를 가지고, 질문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안식일에 대한 올바른 기준과 권한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진짜 주인 앞에서도 주인 노릇을 했다. 바리새인들은 주인이 아니다. 나는 목사로서 성도들의 삶에 혹시 주인 노릇을 할까봐 늘 두렵고 걱정스럽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닌 것으로 기준을 정하고, 사람들에게 그 기준에 합당한지 질문을 함으로써 바리새인처럼 될까 봐 늘 걱정한다.

물론 가장 자주 하는 말은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분의 뜻을 받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쟁이 있을 때, 분별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바리새인들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 모르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인 앞에서 주인 노릇하는 것이다. 꼭 교회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안 계신 곳은 없으니, 우리는 주인 되지 말고 종으로 주인의 뜻을 살펴 살아가야 한다.

주인 노릇하려는 상황을 만나거든 예수님의 방법을 참고해 분별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주인 되신 예수님께만 주인 되시는 권위를 드려야 한다.


4. 주인의

진리는 주인이 있다. 예수님이 주인이시다. 과학적 사실에는 주인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에 대해 생각할 때 과학적 지식이 진리라고 생각하면 과학적 사실 자체가 주인이 된다. 주인 없는 과학이 악한 일에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진리가 아니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이념 안에서 일관성을 요구한다. 모든 상황을 이념 안에서 보고 해석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주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리도 아니다.

진리는 주인의 인격적인 판단과 뜻을 가지고 있다. 안식일이라는 객관적 사실에 대해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는 이런 뜻을 가지고 계셨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

진리 안에는 진리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이 담겨 있다. 진리를 분별할 때, 사실만을 가지고 분별하면 안 된다.

‘사실과 아울러 주인이 있는가’ 하는 점과 ‘주인의 인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인이신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에서 나오는 뜻과 판단이 담겨 있지 않다면, 누군가 주인이 아니면서 주인 노릇을 숨어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악한 의도를 자신은 숨어 있으면서 이루려고 할 수 있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다. 안식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픈 사람이 병을 고치거나 배고픈 사람이 먹을 것을 찾으면 심판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 되신 예수님은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보호하신다. 예수님을 찾는 사람을 위해 예수님께서 계시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자유를 주신 예수님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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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 목사 전남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예수전도단 간사로 사역했다. 선교단체를 나와 오랜 기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린 끝에 ‘너와 꼭 하고 싶은 교회가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서울 명동에서 예배당도 없이 ‘명동의 신실한 교회’, 명신교회(明信敎會)를 개척했다. 현재 명동을 필두로 아시아의 대도시에 교회를 세우고 청년들을 파송하는 비전을 품는 ‘대도시 선교사’(Metropolitan Missionary)로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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