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십자가의 도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만물 위 보좌에 연합된 복음의 온전성’이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보좌에 오르셨다. 이것은 진리이며 역사적 사건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행하신 것만 믿으면 복음의 온전성을 누리지 못한다. 예수님이 행하신 그 사건 속에 우리가 연합되었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즉, 복음의 온전성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자는, 주님과 함께 이미 죽었고(갈 2:20), 함께 살았으며(엡 2:5), 승천하셔서 보좌에 앉으셨을 때 함께 보좌에 앉혀졌다(엡 2:6). 이 진리를 알게 하시려고 주님이 우리 안에 성령으로 오셨다(요 14:20, 17:21). 그리고 성령은 우리를 다시 오실 예수님께로 이끄신다(롬 8:4,23, 빌 3:21). 이것이 복음의 온전성이며 온전한 복음이다.

그런데 왜 굳이 ‘온전한 복음’이라고 말할까? 그 이유는 죽음, 부활, 승천, 보좌, 성령강림, 재림이라는 사건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즉, 하나로 연결된 온전한 복음을 모르고 부분만 안다면 온전한 복음에 합당한 예배와 생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1997년에 하나님이 “이 온전한 연합의 복음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이 복음을 전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많은 성도들, 목회자와 선교사들에게 놀라운 반응을 들었다.

“저는 신앙생활을 몇 십 년 동안 했지만 이렇게 중요한 복음의 온전성은 몰랐어요. 물론 죽음, 부활, 승천, 보좌, 성령강림, 재림이라는 각각의 사건에 대해 왜 몰랐겠습니까? 다 알고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 사건들이 통합적으로 하나라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복음이네요.

특히 승천하여 보좌에 앉혀진 진리가 놀랍네요. 죽음과 부활 연합의 복음과 성령 연합 복음을 연결하는 놀라운 열쇠가 바로 보좌 연합이라는 것에 대해서 처음 들었습니다.”

죄 사함은 구원의 목적이 아니다.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한 필요조건이 죄 사함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려면 죄 사함이 필요하고 죄를 만들어내는 공장인 옛 생명이 죽어야 하며 새 생명으로 태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 계획은 하나님의 생명 안에 넣으시고 하나님이 계신 나라의 중심인 보좌에 앉히시는 것이다. 우리의 새 생명 안에 성령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생명 안에 들어갔고 그가 계신 하늘에 앉혀진 존재임을 알게 하신다.  아버지께서 계신 보좌에서 예배를 받으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그의 자녀가 되었으나 여전히 완전하지 못하기에 온전하게 순종할 수 없다. 그러면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감히 만물 위 보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옛 자아를 복음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어떠한 노력으로도 불순종하는 옛 자아를 처리할 수 없다.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많이 읽으며 암송하고 예배하며 ‘봉사, 헌신, 전도, 선교’를 한다고 해서 자아(옛 생명)가 죽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 이미 죽은 자가 성령을 좇아 행하게 되는 영적생활이다. 자아를 죽이기 위해 그 행위를 하려고 하는 것은 율법에 매여 있는 모습이다.  우리의 노력으로 자아를 죽일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실 필요가 없다.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내가 죽지 않으면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시지 않는다는 것인데, 얼핏 보면 복음 같지만 표현 자체로는 복음이 아니다.

물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이니 주님 나라를 위해 자아 포기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진정으로 예수님이 내 삶 속에서 살아주시는 표시가 날 것이라는 귀한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을 잘못 들으면 ‘아, 내 자아는 아직 안 죽었으니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와 살아주시도록 나를 열심히 죽여야겠구나!’라고 율법적으로 이해할 위험이 크다.

“네가 자아를 죽이면 내가 들어갈게!”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린다. 이 표현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거듭난 자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께서 이미 들어와 계신다는 이미 이루어진 진리를 믿지 못하게 할 위험성이 있다.

도대체 나를 얼마나 죽여야 예수님이 들어오시겠는가? 자아를 죽이려고 노력하지 말고, 자아가 이미 죽었음을 선포하라. 그것이 복음적인 자아 처리다. 자아가 아직 안 죽은 것같이 느끼는 내 감정이 진리가 아니고 성경이 진리다.

자아가 이미 죽었음을 선포하라.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자는 부족한 자아가 죽은 것이다. 자아가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가 크리스천이다.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이미 이루어진 진리이지 이뤄야 할 목표가 아니다.

그러므로 보좌의 예배가 속히 이루어지도록 하는 복음적 처리는, 자아를 죽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옛 자아가 죽은 것을 믿습니다”라고 진리를 선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 말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장 17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 에베소서 2장 8, 9절

† 기도
주님, 죽은 옛 자아의 습관이 자꾸만 튀어나옵니다. 옛 자아가 죽었음을 매일 선포하게 하시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날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온전한 예배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 도우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자아를 죽이려고 노려하지 말고 자아가 이미 죽었음을 선포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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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때 듣는 '갓피플기도음악'은 다양한 상황과 관계가 혼재되어 있는 우리들 일상의 흐름 속에서 임재를 구하며 드린 기도음악연주입니다. 그렇게 여느 누구와도 같이 매일의 일상을 살고 있는 갓피플 동료와 가족들이 기도시간에 연주했습니다. 교회의 기도시간에 반주자가 없을때, 집에서 홀로 기도하실 때, 산책하며 주님께 마음을 드릴 때 저희들의 기도연주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