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동 1416-5번지 커피마을 #9] 골목 교회 목사, ‘목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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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편 – 제가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할 수 있다면 ▷

# 달려라 커피, 지금 당신께 달려갑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제 삶은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그전에는 커피마을 안에서만 칩거하다시피 했는데 매일 커피도구를 가지고 이곳저곳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안에서 대피하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에게 선원들이 한 말은 “가만히 있으라”였습니다. 결국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었기에 피해가 컸습니다.

그런데 저는 세월호만 아니라 한국사회와 교회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 때문에 침몰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커피마을의 문을 닫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저는 시위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다른 면에서 그들과 연대하기를 바랐습니다.

2014년 8월부터 1년 동안 세월호 희생자 형제, 자매 멘토링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경기도와 서울에 자리한 중학교 2곳에서 커피바리스타 강습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커피를 가르쳤습니다.

학교에 들어가서 커피를 가르치면서 저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많은 어려움 가운데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교사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으며, 마음의 병을 가진 선생님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도 커피수업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해서 경차(레이)와 트레일러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장비를 갖춘 뒤 연대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9월에는 광화문에 나가서 열흘 동안 매일 저녁에 인디밴드 공연과 커피를 나누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10월부터는 8주간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커피를 마시고 와플을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 서울연회 마포지방이 모든 비용을 지원했습니다. 저는 ‘달려라 커피’를 사회적 심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 위에서 불의함으로 인하여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될 수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세월호 유가족들과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며 기도하겠습니다”란 현수막을 걸었더니 경찰이 와서 떼라고 말합니다.

제가 “무엇이 문제냐”라고 따졌더니, 젊은 경찰은 “유가족들이랑 같은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라며, 제가 믿지 못할 말을 남기고 황급히 떠났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왜 유가족들과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며 기다리면 안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종북좌파’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 교회에서 설교할 때, “세월호 이야기만 안 했으면 참 좋을 텐데”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저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하고 생존자들에게 커피를 가르치는 일이 왜 종북좌파란 말을 듣는지, 어떤 교회에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 골목 교회 목사, 목수가 되다

세월호 참사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젊은이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교회 밖에 있는 젊은이들이었는데 세월호 참사가 자신을 바꿨다고 고백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이키는 기회가 되었고, 그 일로 인해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는 가운데 한 권사님의 도움으로 ‘청소년 목공놀이 마을공작소’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대마다 참포도나무교회 청소년들과 목공 작업을 했습니다.

커피마을에서 만난 4,50대 남성들은 대부분 위기를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직장에서는 밀려나고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희망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업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단순한 일을 하는 정도에서 만족해야 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삶의 보람을 느끼고 그 일을 통해 타인들을 돕는 것은 생각해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문제가 사실은 교육의 문제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들의 문제가 아닌 그동안 학교와 교회에서 정말 배워야 할 것들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들이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한 희망을 비춰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기에는 지난 30년간 우리 사회와 교회는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공부가 ‘의,식,주,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옷과 먹을거리 그리고 집과 가구를 만드는 일들 이 모든 것들을 예술적인 활동으로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어 준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는 ‘1시간학교’는 이 네 가지 영역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함께 밥을 먹고, 노동을 하고, 잠을 자고, 여행을 떠나고, 음악회를 준비하는 일들을 통해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은 삶의 기술들을 습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 목공놀이 마을공작소’의 시작은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마을공작소가 생긴 뒤로 청소년들이 교회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생들도 자신들도 이 다음에 중학생이 되면 저에게 목공을 배우겠다고 합니다.

지역 목회자들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아서 가구를 만들어갔습니다. 그 가운데 저는 기도 하나를 마음에 품었습니다. “감신대에 목공소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게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제가 목공을 하면서 힘을 많이 얻었던 것과 같이 후배들이 목공을 통해 마음의 쉼을 얻고 또 목회의 힘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목공을 통해 기도하는 법, 침묵하는 법, 살아내는 법을 배우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현실이 되어서 2016년 봄학기에 감리교신학대학교 신대원에 ‘선교와 목공예술’이라는 목공신학 강좌가 열렸습니다. 이 일을 위해 한 교회의 도움을 받아 ‘감신목공소’를 꾸렸습니다.

30평이 넘는 공간에 학생들이 DIY로 목공 작업을 할 수 있는 목공교실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24명의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하고 15주간의 목공수업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변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학기말 과제로 ‘자기 의자 만들기’를 주었는데 학생들이 대부분 ‘자기 의자’를 만들지 않고 아빠의 의자, 아내의 의자, 아이의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아빠와의 추억이 담긴 의자를 만들었고, 한 친구는 이제 태어날 자신의 아이를 생각하면서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신학교에서는 대부분 지식만을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신학교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마음으로 기도하는 방법, 마음으로 신학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마음으로 신학을 하게 될 때 삶과 신학의 분리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해 ‘가구제작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이제 정말 자격을 취득 받은 목수인 셈입니다. 그렇지만 진짜 목수가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말입니다(다음주 계속).

글, 사진 = 안준호 
마을지기라고 불리는 안준호 목사(참포도나무교회)입니다. 저는 어느 날 부터 한 마을(백석동 1416-5번지)에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동네아이들과 뛰어놀며 어느덧 바리스타가 되었고 목수가 되었습니다. 한 잔의 맛있는 커피를 나누듯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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