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태복음 6:34)

교회생활을 오래하신 분들에게 옛날의 관성을 발견하곤 한다. 심지어 대예배 시간에 이 성경구절을 읽을 때도 제대로 보지 않고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라고 읽는다.

‘내일’이 무엇을 잡고 있는지 모르지만, 누가 ‘내일’을 잡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

개역개정 이전의 번역판인 개역판에는 그렇게 번역되어 있었으니, 오래전에 머리에 박혀있는 대로 읽게 되는 것이다. 조사가 하나 있고 없고에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에 엄청난 역할을 미치게 되는 성경말씀이다.

“내일 일은 내일’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걱정할 것이 있지만 내일 것까지 끌어당겨서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염려하는 주체가 내가 되는 것이 문제이다. 왜? 예수님은 그러한 의미로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에서 주어는 ‘나’ 혹은 ’너’가 아니라 바로 ‘내일’이다. 즉 내일에 대한 염려는 내일이 스스로 알아서 해준다는 것이다. 영어 번역을 보자.

“Tomorrow will worry about tomorrow itself.”

예수님이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말씀하셨는데도, 우리는 말씀과 현실을 분리시켜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내일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매우 특별하게 다가온다.

내가 스탠퍼드대학교에 있을 때 한 미국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I don’t know what tomorrow holds, but I surely know who holds tomorrow.”

‘내일’이 무엇을 잡고 있는지 모르지만, 누가 ‘내일’을 잡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는 그의 말이 내 마음에 불을 당겼다.

그때 마침 나는 인생의 30대를 온전히 떼어 놓아 주님께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채, 고민이 사라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 친구의 말이 나에게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내일은 불확실하고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생존만을 생각하다 보면 기세가 꺽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나 보다. 내일 일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고 말이다. 내일은 알아서 내일이 염려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나로 하여금 생존의 두려움에서 뛰쳐나와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과 돌파의 멘탈을 주셨다. 

† 말씀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에베소서 5장 8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장 1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언 16장 3절

† 기도
내일은 주님의 것입니다. 더이상 두려워하며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기를 결단합니다. 내일의 주인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겠습니다. 어그러지고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빛이 되어 살아가겠습니다. 나를 소유하고 계신 하나님에게 제 모든 것을 맡겨드립니다.

† 적용과 결단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로 인해 주님께 드리기를 주저했던 모든 것들을 이제는 기쁨으로 드리기로 결단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함을 주시기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