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찬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를 분명히 하라!- 김길의 제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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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의로운 규레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119:164)

당신의 의로운 판단들 때문에 하루에 일곱 번 제가 당신을 찬양합니다(히브리어직역)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찬양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들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기분 좋으면 찬양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슬프면 음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을 느낄 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찬양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는 찬양과 노래를 구분해야 한다. 찬양은 그것을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이 사실이 많은 것을 결정한다. 찬양을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찬양을 하는 사람의 삶, 마음, 가사와 멜로디가 하나님을 향하여 있는 것이다.

시편 119편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신 일들에 대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특별히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그것에서 나오는 판단들에 대해 찬양하길 원하신다. 하루에 일곱 번씩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들을 느끼고 있으시다는 점이 놀랍다. 그만큼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한 마음이 열려있고, 동행하는 삶이고, 느껴지면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인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하루에 일곱 번은 쉬운 일이기도 하다. 나는 막내와 화상전화로 통화하는 일을 늘 즐겁다고 느낀다. 아들의 변화를 세밀하게 느끼면서 돌보고 관계를 시도하는 것은 누가 시키거나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다. 좋으면 그렇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향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집중하면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관심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 잠깐 즐겁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하면 내 삶의 모든 것이 좋아진다.

인생을 좋게 만드는 가장 확실하고 빠르고 쉬운 방법이 있다.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들을 마음으로 느끼고 찬양하는 것이다. 한 시간씩 찬양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간단하게 그때 떠오르는 찬양 한두곡을 부르고 기뻐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다.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이다”(시 119:171).
제 입술이 찬양을 쏟아내니 이는 당신께서 당신의 규례들을 제게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히브리어직역)

하나님은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배운다. 이 과정이 늘 살아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배우는 게 없다면 무언가 삶에 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삶의 내용을 통해 하나님께 배우는 것이 있다면 우리 삶은 살아있고 반드시 열매를 맺고 잘될 것이다. 그것은 가지가 나무에 잘 붙어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것을 판단할 때 기준이 무엇인지, 거룩함과 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우리 삶 속에서 경험된다. 그때 우리는 배운다. 그리고 배운 것을 잊지 않고 삶을 살아갈 때 중요한 기준으로 삼게 된다. 하나님께 배운 것이 사고에 자리를 잡아서, 실제적인 삶의 방향과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줄 때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그때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한다. 배우는 것이 좋고, 배우는 내용이 좋고, 가르쳐 주시는 분이 좋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삶이 좋아진다.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시 119:175).
제 영혼을 살게 하십시오. 그것이 당신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판단이 저를 돕게 하십시오(히브리어직역).

즐겁게 배운 하나님의 규례들이 나를 돕는다. 도움이 되게 하려고 배운다면 얼마가지 못한다. 하나님이 좋고 그분의 생각과 판단들이 좋아 찬양해가면서 배웠더니, 그러한 내용들이 자신의 삶을 지켜주고 옳은 길로 인도해준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나를 지켜준다.

죄를 이기려면 실제적인 판단 과정에서 항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판단을 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판단이 아니라 나의 욕심을 따른 판단이 아니어야 한다. 욕심은 죄를 낳기 때문이다.

욕심으로 판단할 때까진 아직 죄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시간이 지나서 욕심으로 드러난 결정들로부터 나를 지키려면 평소에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들이 내 마음에 있고 경험되어야 한다. 죄를 짓기로 작정하고 지을 수 있다. 그러나 판단을 잘 못해서 결국 죄의 길로 갈 수도 있다.

영혼이 살아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배운 판단들이 살아 있다는 의미다. 살아 있는 영혼 그러니까 욕심에 죽지 않은 영혼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그 찬양은 나를 살게 하신 하나님의 판단들에 대한 것이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삶 속에서 하나님을 배우고 있다. 배울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을 배우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도시 가운데 살아간다. 하나님은 그 도시에서 예배자를 찾으셨고, 도시는 예배자들의 도시다.

몇 사람의 조용한 예배가 도시를 살게 한다. 의인이 없어서 망했던 소돔과 고모라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예배자들이다. 도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욕심대로 팽창해가지만 하나님을 찬양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도시 안에서 모여 찬양할 때마다 도시는 회복된다.

하나님께서 도시를 향해 예배자들을 보시면서 판단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고, 그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아는,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 참된 예배를 드릴 줄 아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런 이들을 찾으실 때 반응해야 한다. 예배를 드리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은 예배를 드려야 부르심을 이루는 것이다.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모여서 에배하기를 좋아하고 예배드리는 것을 사명으로 알아야 한다.

먼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야 나의 영혼이 살아난다. 영혼이 살아야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내가 원하는 것만 했다가 어려워진 삶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먼저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명신교회의 첫 번째 부르심은 도시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함께 모여서 예배를 배우고 드렸다면 이제 자신의 삶속에서, 도시 곳곳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드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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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 목사 전남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예수전도단 간사로 사역했다. 선교단체를 나와 오랜 기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린 끝에 ‘너와 꼭 하고 싶은 교회가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서울 명동에서 예배당도 없이 ‘명동의 신실한 교회’, 명신교회(明信敎會)를 개척했다. 현재 명동을 필두로 아시아의 대도시에 교회를 세우고 청년들을 파송하는 비전을 품는 ‘대도시 선교사’(Metropolitan Missionary)로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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