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연극심리상담 #4] 끄덕끄덕^^ 공감의 지혜를 높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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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저는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그 자체로 인식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공감이란 글자 말 그대로 ‘같이(共)’ ‘느끼는 것(感)’ 것입니다. 그러나 ‘같이 느끼기’가 말처럼 쉽고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파란색 안경을 쓰고 온 세상을 파랗게 보는 사람이 빨간색 안경을 쓴 사람이 보는 세상을 같이 느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다르고 경험하고 느낀 바가 다른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얼마 전 초등학생들 연극치료 집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각자 자기만의 공간을 꾸미고,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한 다음 그 요구에 응한 친구를 자기 공간으로 초대하는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민서(가명)는 “오늘 있었던 일을 한 가지 얘기해주세요”라고 자신의 요구를 말했지요. 민서의 공간에 들어가고 싶은 집단 내 다른 친구들이 열심히 자기 이야기를 했는데, 아이들 중 수민이(가명)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한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다음 민서는 “다 들어와도 되는데 수민이는 안 돼요. 난 수민이가 싫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수민이는 흥분해서 “나도 너 싫어. 안 들어가도 돼”라고 화를 냈습니다.

민서는 친구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유아적 수준의 공감 태도를 보였습니다. 물론 민서가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있을 법한 일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비단 어린 아이들만의 태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된다고 저절로 공감의 수준이 올라가고, 그 능력이 성장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당신이 싫어’하고 내 마음을 닫는 순간 더 이상 상대의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민서에게 거부당해 화를 내던 수민이는 정말 화가 난 것일까요? 정말 민서의 공간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걸까요? 여러분이라면 수민이에게 어떤 공감의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상대의 행동을 먼저 보고, 그 말만 듣는다면 깊이 있는 공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선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속상했던 일을 힘들게 털어놓았는데 민서에게 또 다시 따돌림을 당한 수민이를 한동안 바라봅니다.

“수민이가 많이 당황스럽고 속상하겠다. 화가 났지만 슬프기도 할 것 같아.”

아마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수민이가 표현한 감정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수민이가 내뱉은 말 뒤에 숨은 의도, 욕구, 의미 등까지 알아줄 수 있습니다.
“수민이는 민서네 집에 정말 들어가고 싶었는데 들어가지 못해 속상했겠다. 다른 친구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싫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민이만 들어오지 말라니 당황스럽고 창피했을 것 같아. 더구나 민서랑 친해지고 싶어서 오늘 학교에서 따돌림 당해 속상했던 이야기까지 했는데, 그런 창피한 이야기까지 뭐 하러 했을까 싶은 마음에 후회도 되고, 슬프기도 했을 것 같아”라고 말입니다.

수민이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감정까지 공감해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수준의 공감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개인적인 감정, 관계, 문제 등이 얽혀 있다면 공감은커녕 비난과 원망이 앞서기도 하지요. 그럴 때 좋은 방법은 그저 가만히 들어주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같이 머물면서 ‘그 느낌(感)’을 그저 ‘함께 하는 것(共)’입니다. 이 또한 공감의 한 방법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도저히 그 분의 뜻을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민서처럼 “하나님, 싫어요. 저리 가세요”라고 외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이해할 수 없지만 자신의 생각으로 이렇게 저렇게 이해해보려고 끼워 맞춰 그분의 뜻을 왜곡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땐 잠시 그저 그분께 집중하며 그 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노력해보세요. 아무래도 들리지 않는 그분의 음성을 기다리다 지쳐갈 때라도 ‘분명 내가 모르는 뜻이 있을 거야. 들리지 않는 건 그분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일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가만히 귀 기울여 보는 것이지요.

이런 노력이 있을 때 타인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공감의 수준을 높여 갈 수 있습니다. 공감은 아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배우고 익혀야 비로소 가질 수 있는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