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제와 필요 때문에 늘 예수님은 뒷전 ㅠㅠ – 김길의 제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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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2,3)


1.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는 원인제공과 결과에 대한 책임의 크기로 문제를 정의하고 싶어 한다. 누구 때문에 눈이 멀었는가 즉 원인제공이 누구이며, 그런 원인을 따라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를 정의하면 문제를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다른 답변을 하신다. 누구의 원인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려는 것이 이유라고 하신다.

우리의 익숙한 방법을 따르자면 이런 현실인식은 조금 상황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전적으로 우리가 하고 있는 현실인식 안에 예수님의 인식이 들어있지 않아서다. 예수님께서 가장 정확하게 현실을 인식하고 계시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 우리의 문제정의를 내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정의를 받아들여야 한다.

제자들의 상황인식은 분명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전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근거도 없는 원인을 추측해 누군가를 정죄하는 결과를 도출할 가망이 높다.

내 삶에 일어난 문제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정의하고 계시는지를 알고자 하는 겸손함이 우리에게 늘 필요하다. 그것은 효과적인 문제해결과 직결된다.

우리는 다가오는 문제에 대해 문제를 정의하는 자신의 기준을 따라 결론짓는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해로운가’에 따라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경험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2. 문제정의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기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인제공과 결과에 대한 책임의 크기는 우리가 문제를 정의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한다. 그러한 사실에 대한 해석의 기준은 ‘나의 이익’에 맞춰져 있다. 한마디로 나의 이익을 위해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고, 손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우리의 기준이다.

문제는 내가 알고 분석하는 원인과 결과는 제한적이고, 무엇보다 나의 이익을 위한 본성에 충실함으로 늘 하나님의 뜻과 멀고, 문제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사로가 죽은 것은 그가 너무 아팠거나 예수님께서 늦게 오신 이유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믿게 하시려는 이유로 일어난 일이었다.

문제정의의 기준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에 해당한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나타내길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문제가 정의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심과 통치하심의 내용이 문제를 정의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문제를 정의하고 싶다면, 하나님께서 행하시기 원하시고, 영광 받으시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하나님의 문제정의 기준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순종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한다. 하나님은 문제에 대한 정의와 해결책에 대해 순종하는 이들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이다.

순종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많은 경우 문제는 그대로 있고 다툼과 정죄만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일하심은 더디게 올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그런 일을 아주 가까이에서 느끼고 경험하고 있다.


3. 누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상동에서 묵상모임을 할 때, 번화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고, 문제에 대해 주눅이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전쟁이 작은 것에 대해 아쉬웠을 뿐이다. 처음에 모란에서 모여 기도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도시의 압도적인 문제에 대해 늘 괴롭고 주눅이 들어 있었다.

안정적인 장소를 찾아 피해 어딘가로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르심에 순종해 모란에서 기도할 때 되도록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는 곳을 찾아 기도하고 싶었다. 건물을 보고 지나가는 이들을 등을 지고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지금은 어디에서나 즐겁게 기도할 수 있고 행복하다. 스타벅스 캔커피를 나누며 전도할 때, 사람들이 느끼는 안도감과 성령의 역사하심은 도시를 보시는 예수님의 정의를 받아들일 때 가능한 일이었다.

예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도시는 그저 타락했거나 번화한 곳일 뿐이다. 원인과 결과를 분석해 타락한 모습을 개탄하며, 변화함에 마음을 빼앗기며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도시를 어떻게 보시고,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듣고 알아갈 때, 이미 그 도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퉁치하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책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정책에 순종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기도로 순종하며, 각자의 영역주권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할 필요가 있다고 아브라함 카이퍼의 견해를 들어 로렌은 말한다.

문제가 되는 상황 안에 하나님께서 문제를 정의하시고 해결하시고자 하시는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보시는 것처럼 보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시도록 기도하며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문제는 해결되어갈 것이다.


4 예수님의 제자로 섬기는 교회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를 가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종교를 찾고, 교회도 사람들의 생각에서 예외는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사람들 안에는 본성적으로 자신의 필요가 아니면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명신교회도 사역자들과 성도들의 필요가 있다.

사역자들은 의미 있게 사역을 하고 싶고, 사역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럴 때 행복하다. 성도들은 삶의 필요에 대해 하나님의 도움과 기적이 필요하다. 그 필요가 채워질 때 안심하고 적극적으로 교회생활에 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필요에 의해 관계가 형성되고, 필요를 해결하는 쪽으로 움직이던 관계는 필요가 채워지지 않으면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사역이 주어지지 않거나 잘 안 되거나 삶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거나 문제해결이 잘 안될 때 무시무시함을 느낀다. 순식간에 절대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어려움은 늘 쉽지 않다. 잠재적인 폭탄처럼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자신이 섬기는 교회를 향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있는가? 기준은 무엇인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문제정의를 할 수 있는 개인적 역량이 준비되고, 문제해결을 위해 자신의 관점을 교정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영광이 나타나는 삶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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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 목사 전남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예수전도단 간사로 사역했다. 선교단체를 나와 오랜 기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린 끝에 ‘너와 꼭 하고 싶은 교회가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서울 명동에서 예배당도 없이 ‘명동의 신실한 교회’, 명신교회(明信敎會)를 개척했다. 현재 명동을 필두로 아시아의 대도시에 교회를 세우고 청년들을 파송하는 비전을 품는 ‘대도시 선교사’(Metropolitan Missionary)로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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