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 2:42

이 구절은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말씀을 받아 세례를 받은 수천 명이 어떤 행위를 보였는지를 증언하는 누가의 기록이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회심은 도착지점이 아니라 여정의 시작점이었다.
이 점을 분명히 강조하는 성경의 관점은 우리의 관점과 너무나 다르다.

오늘날 우리는 ‘처음에 믿음을 갖는 것’에 사활을 건다. 인생의 어떤 시점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결단을 내리기만 하면 그 후에는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흘러간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런 관점을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부지중에 이런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전도할 때 성경의 관점을 강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주의교회에 속한 우리는 거의 모두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이런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 이처럼 기초가 삐딱하게 놓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이 위험스럽게 기울어져 있다. 즉시 바로잡지 않으면 곧 쓰러질 것이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신자들에게 있어서 믿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신앙은 침대에 편히 누워 주님의 승리의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힘든 여행길을 가는 것이었다. 믿음은 한 번에 해치우는 일이 아니었다. 단순한 행위의 문제만도 아니었다.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고 어린양의 인도에 따라 어디든지 갈 수 있도록 감동과 능력을 주는 마음과 생각의 태도였다.

누가는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계속하니라’”(행 2:42. ‘계속하니라’가 개역개정판 한글성경에는 ‘힘쓰니라’로 번역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그들이 믿음생활을 ‘계속했기 때문에’ 믿음을 굳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믿음의 길을 간 것이 아니라 ‘흔들림 없이’ 갔다.

어느 날 그들은 믿었고, 세례를 받았으며, 믿음의 공동체로 들어왔다. 좋다! 그런데 그 다음 날은? 또 그 다음 날은? 그 다음 주는? 그들의 회심이 진짜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들의 결신(決信)이 어떤 강압에 의한 것이라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이 어떤 모습을 보여야 했을까? 종교적 흥분과 군중심리에 압도되어 믿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방법은 단 하나뿐, 믿음의 길을 계속 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믿음의 길을 간 것이 아니라 ‘흔들림 없이’ 갔다.
누가가 사도행전 2장 42절에 ‘흔들림 없이’라는 표현을 집어넣은 것은 심한 반대에 굴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계속 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흔들림 없이’는 KJV에 나오는 표현이다).

만일 정신적 또는 육체적 핍박이 없었다면 누가가 굳이 ‘흔들림 없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는 불같은 시련과 싸운 믿음의 이야기이다. 그들에게 고난은 그들이 실제로 당면한 현실이었다.

지금도 어떤 나라들에서는 믿음의 형제들이 극심한 박해의 고통 가운데 있다고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의 믿음은 내게 아주 큰 감동을 준다. 그러나 지금 내가 문제 삼는 사람들은 복음주의의 울타리 안에서 무수히 발견되는 신앙의 약골들이다.

오늘날 믿음의 길에 놓여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마음의 평안과 세상적 성공을 강조해야 회심자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전도대상자에게 완전히 솔직해지려면 진실을 적나라하게 말해주는 수밖에 없다. 그들이 현재, 앞으로도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매우 큰 곤경에 처한 도덕적 반역자의 무리에 속해 있다는 것이 그 진실의 한 측면이다.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리라는 것이 그 진실의 또 다른 측면이다. 전자는 소망 없이 혼자 고통 받는 길이다. 그러나 후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잠시 고난을 받지만 고난 중에도 그분께 사랑의 위로와 영적 도움을 받아 오히려 즐거워하게 되는 길이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그들이 따르는 ‘인기 없는 대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알면서도 그리스도께로 돌이켰다. 일단 그분을 따르기 시작하면 언제든지 생명과 자유까지 빼앗길 수 있는 미움 받는 소수의 무리에 속하게 된다는 걸 잘 알았다.

이것은 말로만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오순절 직후 어떤 신자들은 투옥되었고, 많은 이들이 세상의 재물을 잃었으며, 소수는 즉시 죽임을 당했고, 수많은 이들이 박해를 피해 널리 흩어졌다(행 8:1).

만일 그들이 믿음을 부인하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편한 방법을 택했더라면 이런 모든 고난을 피했겠지만, 실제로는 그 편한 방법을 ‘흔들림 없이’ 거부했다.

† 말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사도행전 2장 44~47절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고린도후서 4장 17,18절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 데살로니가전서 2장 2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장 20절

† 기도
주님,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고 깨닫게 하소서. 나의 유익과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의 십자가를 마음에 새기며 나를 사랑하사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당혹감을 안겨주는 믿음’에 대해 다시 들어야 한다.”당신이 출석하는 교회는 당신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도록 자극을 주는가? 당신은 신앙적 도전을 줄 수 있는 다른 신자들과 만날 기회를 가지는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성장을 위한 다른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