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3년, 독일의 한 부유한 광산주의 아들로 태어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원래 법률을 공부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22살 되던 해, 친구와 함께 스토테른하임이라는 촌락을 향해 걸어가다가 무시무시한 천둥번개가 내리치면서 앞서 가던 친구가 즉사하는 사고를 만났다.

루터는 그 순간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혀서 “성 안나시여, 저를 구해주시면 저는 수도사가 되겠습니다”라고 얼떨결에 맹세하고 말았다. 그리고 2주 후에 그는 실제로 어거스틴 수도원의 사제가 되었다.

루터는 평소에 자기의 죄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했다.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없는 법이라 수도사들도 대충 타협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는데, 상당히 고지식하고 순진한 루터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철저하게 수도원의 법규를 지키며 수련하고 선행과 죄의 고백, 자기 부인을 통해서 자신을 구원해보고자 노력했다. 금식하고, 기도하며, 노동하는 등 모든 것을 다해 보았다. 어떤 때는 겨울에 담요만 덮어쓰고 3일씩 금식하며 덜덜 떨면서 지내기도 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 비참한 죄를 인식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떨었다.

그러나 루터는 아무리 금식하고 기도하고 수련해도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필사적인 자기 수련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적 만족이 없었다. 선임 사제에게 너무 자주 고해성사를 했고, 그 죄목도 사소하기 짝이 없어서, 나중에는 선임이 “제발 나가서 제대로 된 죄를 짓고 그때 다시 오라”고 루터에게 짜증을 낼 정도였다고 한다.

한번은 선임이 루터에게 “제발 나에게 그만 오고 하나님을 한번 사랑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루터는 “난 하나님을 싫어해요!”라고 말했다. 루터는 당시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죄인들을 벌하시는 의로운 하나님을 은밀하게 증오했다. 드러내진 않았지만, 나는 하나님에게 화가 나 있었다.”

당시 루터의 하나님은 무섭고 너무 거룩하며 멀리 계신 분이었다.

죄책감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던 루터는 1510년 가톨릭 사제들의 성지인 로마 여행을 통해서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원했다. 그러나 오히려 기존의 로마 가톨릭 지도자들의 냉소적인 태도와 세속적인 삶의 방식에 충격을 받아 더 시험에 들었다. 그러자 루터의 잊지 못할 은사인 슈타우피츠(Staupitz, 비텐베르크대학 신학부 초대학장)가 이런 충고를 했다.

“루터, 성경을 깊이 연구해보게.”

슈타우피츠는 루터에게 신학 학위를 하면서 성경을 연구하면 영적 침체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루터는 성경 연구에 전념했고, 30세의 나이에 비텐베르크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1515년, 루터는 성경을 깊이 읽어 내려가다가 성서에서 새로운 용서의 확신을 발견한다. 특히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한없는 사랑에 감동을 받는다. 또한 로마서를 읽어 내려가다가 한 구절에 특히 감동을 받는데, 이것은 종교개혁의 핵심이 담긴 유명한 구절이 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이 말씀을 통해 그는, 인간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오직 십자가 은혜만이 인간의 죄를 없애고, 악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의(義)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거저 주신 선물을 기쁘게 받고 주장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오직 십자가 은혜만이
인간의 죄를 없애고, 구원한다

우리는 ‘우리 안에 내재하는 의’가 아니라, 우리 밖 곧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의’를 통해서 구원받으며, 이 의는 오직 믿음으로만 완성된다. 이것이 바로 루터의 그 유명한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의 신학이다. 간단히 정리해서 ‘이신득의’(以信得義, Justification by Faith), 즉 오직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교리이다.

이신득의는 그동안 로마 가톨릭교회가 가르쳐온 구원론에 정통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가톨릭교회는 사람이 구원받는 데 믿음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선한 일’(good works)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한 일이란, 말 그대로 남을 돕고 좋은 일을 하는 것과 교회가 주는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의 일곱 가지 성례에 착실히 참여하는 것을 포함했다. 그러므로 죽을 때까지 확실히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가 모호했고, 교회의 노여움을 사서 출교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가르쳤다.

이 같은 로마 가톨릭의 구원론은 사람들을 교황청의 권위 아래 철저하게 묶어놓는 하나의 도구이기도 했다. 루터는 바로 그 교리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섬으로써 로마 가톨릭교회의 존재의 뿌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 말씀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 로마서 5장 17~21절

† 기도
어둡고 캄캄하던 시절, 죽음의 위협과 싸우면서 믿음의 신학을 앞세웠던 루터의 정신을 우리도 본받게 하옵소서.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일어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 적용과 결단
죄책감에서 벗어나길 원하시나요? 오직 십자가 은혜만이 죄를 없애고 악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저 주신 선물을 기쁘게 받고 주장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