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신학을 만드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인격과 하시는 일에 대한 논리를 정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먼저 하나님에 대한 이론을 세운 뒤, 거기서부터 삶의 적용으로 연결시키는 길이다.

루터는 첫 번째 길을 택했다. 먼저 자신의 삶에서 행위로 죄와 죄책감을 해결하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려는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루터신학이 탄생했다.

그러나 칼빈은 두 번째 길을 택했다. 먼저 하나님에 대한 논리를 세우고, 거기에 기초하여 죄인들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 적용을 뽑아냈다.

칼빈신학의 시발점은 모든 크리스천이 그 권위를 존중하는 ‘사도신경’이다. 칼빈은 사도신경에 네 가지 핵심이 있다고 했다. 첫째, ‘성부’에 관하여, 둘째, ‘성자’에 관하여, 셋째, ‘성령’에 관하여, 넷째, ‘교회’에 관하여이다. 바로 이 고백이다.

“나는 성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과, 거룩한 공회(holy catholic church)를 믿는다.” 이것은 《기독교 강요》의 전체 구성 뼈대가 되기도 했다.

또한 칼빈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 of God)이었다. 루터신학의 핵심이 ‘이신칭의’였다면, 칼빈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이었다. 루터의 주제 구절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였다면, 칼빈의 주제 구절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였다.

루터나 칼빈이나 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엄청난 경외심을 갖고 있었지만, 루터의 신학이 용서의 기적에 그친 데 반해 칼빈의 신학은 우리가 용서 받은 것을 포함하여 모든 방면에서 하나님의 뜻이 절대적으로 이뤄진다는 확신이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자 전 우주를 다스리시는 절대 지배자이시므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이 개입되시지 않은 것은 없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의 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칼빈은 그들의 죄까지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고 믿었다. 모든 죄와 모든 선이 다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

칼빈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주권을 세상 모든 영역 속으로 흘려보내는 데 주력한 인물이다.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자, 실천하는 신학자였다. 칼빈은 루터나 츠빙글리보다 한 세대 후에 살았기 때문에, 루터의 이신칭의 신학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었고, 루터가 제대로 다루지 못한 기독교 신앙의 일면들을 좀 더 자세히 다룰 수 있었다.

그중에 가장 많이 다룬 것이 바로 성화론(聖化論, doctrine of sanctification)이다. 즉 “구원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부작용이 생겼다.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믿는 가톨릭보다 개신교도들이 오히려 더 선행을 안 하는 것이다. 이것을 칼빈은 은혜로 구원받는 신학의 오용이라고 했다.

그래서 칼빈은 절제된 도덕적 생활을 강조했다. 구원받기 위한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 점에 있어서 칼빈은 루터보다 훨씬 더 엄격했다.

믿음의 결과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우리가 더 이상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심판받지는 않지만, 진정한 크리스천은 구약의 율법이 바른 도덕적 인격을 세우는 하나님의 기준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론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반드시 그에 맞는 행위를 보이게 되어 있다. 자신의 삶에서 거룩을 추구하려 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진정한 크리스천일 수 있는가? 도덕적 의로움을 향한 강렬한 추구야말로 칼빈주의의 핵심 사상 중에 하나이다. 칼빈은 도덕적 인격을 진정한 종교의 상징으로 보았고, 이것은 칼빈주의의 적극적 사회참여를 설명해준다.

하나님은 택자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시다. 그래서 칼빈의 예정론은 단순히 천국 가는 티켓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셔서 교회뿐 아니라 사회 전반, 세상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영광을 흘려보내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계획이 있으시다는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했던 칼빈은 이것이 교회뿐 아니라 사회 전반, 즉 세상 모든 영역에 동일하게 임해야 한다고 믿었다.

 

† 말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사야 43장 10~12절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야고보서 2장 14~17절

† 기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헌신하여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가 흘러들도록 평생 몸부림치며 헌신했던 존 칼빈의 마음과 기도가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도 재현되기를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당신은 거룩을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까? 내 인생의 통치를 주님께 맡기며 주님의 영광 드러내는 삶으로 헌신하기로 결단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