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은 여전히 나야 나 ㅠㅠ- 김길의 제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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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nothing to eat)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막 8:1)

1. 사람이 많은데 먹을 것이 없을 때

마가복음 8장의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 주는 의미를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이 말은 모인 모든 사람들이 돈이 없다는 의미일 수 있다.

가난할 때 예수님과 동행하며 즐겁게 지냈는데, 부요해져서 예수님과 소중했던 관계가 없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3일 동안이나 먹을 것 없이도 광야에서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삶에 무언가 부족함이 있는 사람들이란 의미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 예수님께서 계신다는 점이다.

예수님 앞에서 어떻게 일관된 삶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예수님 없는 부요함이나 높아짐이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그런 것을 자신도 모르게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미 마음에서부터 예수님과 동행함이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싫진 않지만 광야에서 의미없이 있는 것이 싫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된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막 8:2)


2. 은혜없는 삶의 구조

큰 무리는 사흘 동안 먹을 것없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이런 관계의 내용도 드물 것이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 삶에 와계신다. 내가 어려울 때, 좋을 때 상관없이 나의 삶에 와계신다.

말씀을 근거로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신경을 쓰셨다. 사람들이 굶는 것을 볼 수 없으셨던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불쌍한 삶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막 8:3)

예수님은 배고프고 대책 없는 이들의 먹을 것에 관한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셨다.

그들이 3일을 굵었고, 집에 돌아가다가 아마 길에서 기절할 것이라고 걱정하셨다.

나에게 대책이 없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대책을 세우신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나만이 세운 삶의 계획들과 대책들이 있는가? 그러한 것들은 나보다 앞서서 걱정하시는 예수님의 뜻에 방해가 될 수 있다.

나에겐 아무런 대책이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분주하게 움직이신다.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대책을 세우실 필요가 있는 삶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막 8:4)


3. 삶의 결정적 조건

광야는 삶을 결정하는 조건이 된다. 광야에서는 어떤 사람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미 3일을 굶었고 앞으로도 뾰족한 방법은 없다.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도 그곳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것처럼,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은 예수님께서 하실 수밖에 없는 것을 정확하게 증명한다.

누구나 어떻게 할 수 없는 삶의 조건들이 있다. 어떻게 그런 광야를 빠져 나갈 것인가?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만나 은혜를 받아야 벗어날 수 있다.

삶의 결정적인 조건들이 우리를 덮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 우리의 삶을 불쌍히 여기시고 앞서서 대책을 세우시는 예수님이 계심을 잊지 말자.

어떻게 할 수 없는 조건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예수님을 의지하는데 그 삶을 사용해야 한다.

삶은 조건 충족이 아니라 조건 없는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막 8:5).


4. 예수님의 은혜가 올만한 삶인가?

배고프고 대책 없는 우리 삶에 어떤 떡이 있는지 물어보실 때부터 그 삶은 예수님의 역사하심 안에 있게 된다.

4천 명이 사흘 동안 굶은 것과 떡이 일곱 개 밖에 없는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

배고픈 이들을 먹이시겠다는 생각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계신다.

예수님이 일하시면 나의 삶을 덮치려는 결정적인 조건들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수님께는 그런 조건들이 한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한계가 예수님의 한계는 아니다. 예수님은 불가능이 없으신 분이다.

언제나 문제는 나의 불가능에 주님의 전능하심이 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은혜가 올만한 나의 삶인가?

문제가 크고 능력이 모자랄수록 주님이 불쌍히 여기심은 더욱 커진다. 예수님의 긍휼하심 말고는 기댈 곳이 없다.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막 8:10).

언제나 그랬듯이 예수님이 떠나셨다. 우리는 늘 떡이 필요한 인생이지만 그것으로 주님을 붙잡을 수 없다.

예수님은 사명을 따라 떡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계속 주님과 같이 있고 싶을 때 우리는 그의 제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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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 목사 전남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예수전도단 간사로 사역했다. 선교단체를 나와 오랜 기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린 끝에 ‘너와 꼭 하고 싶은 교회가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서울 명동에서 예배당도 없이 ‘명동의 신실한 교회’, 명신교회(明信敎會)를 개척했다. 현재 명동을 필두로 아시아의 대도시에 교회를 세우고 청년들을 파송하는 비전을 품는 ‘대도시 선교사’(Metropolitan Missionary)로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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