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초기에는 혼자서 거의 북 치고 장구 치듯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간사님들이 하나둘 새롭게 세워지고, 오래된 멤버들 가운데도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일들이 있었다.

늘 빠르게 결정하고 한 번 결정하면 그냥 밀어붙이기 일쑤인 나의 부족한 성품 때문에 사실 처음에는 이들과 함께 속도를 맞추고 손발이 맞게 사역하는 것 자체가 너무 버거워 힘들고 답답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무식하고 담대한 나와는 달리 심사숙고하고 주변을 배려하는 간사님들과 하모니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내게 많은 훈련의 시간이 되었다.

확신하건대, 간사님이나 멤버들도 아주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족한 가운데 한 가지 깨달은 것은 혼자보다는 여럿이 장기전에서는 반드시 효율적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분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많은 일들이 그 분들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되었음을 보게 된다. 특별히 나의 대책 없는 결단과 믿음의 선포가 실제가 되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력으로 헌신해주신 분들이 그들이었다.

진정한 큰 사역은 무리나 군중이 아닌 결국 제자들이다.

이런 과정을 가리켜 팀워크를 위한 ‘창조적 충돌’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지체들이 한 몸을 이루어 공동의 목적과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서로 깎이는 충돌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더 성숙하고 온전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가 되어준다.

안타까운 것은 이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뛰쳐나가거나 과정 자체를 포기한다면 우리는 그 상태에 머무르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품고 함께할 수 있는 우리의 성숙함 역시 그만큼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역의 사이즈는 일의 중요성과 성취도에 있지 않다. 성경적인 사역의 사이즈란 과연 얼마나 영혼을 품을 수 있느냐와 직결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혼들과 함께 영혼들을 품고 세우는 사역을 하도록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 주님을 향한 열정은 어마어마한데 영혼들을 품고 인내하는 열정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어떤 목사님이 실상은 그것이 거품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하나님이 사랑이신데 하나님을 그토록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영혼을 그만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잃어버린 영혼과 열방의 영혼들을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동역자와 성도들은 사랑할 수 없느냐고…. 그렇다면 그것은 가짜라는 것이다. 이 말씀이 반드시 맞는다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자신의 동기와 태도를 점검하도록 하는 말씀임에 분명하다.

부족하지만 나도 이 과정들을 거치며 언제부턴가 한 가지 정한 것이 있다. 내 옆에 있는 동료들, 함께 주님의 일을 섬기는 그들이 나의 1차 사역 대상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간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들을 여러 방법으로 가르치고 세우는 일을 사역의 우선순위로 삼았다.

그렇다보니 실력이 따라주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흔히 말하는 ‘대량 생산’은 되지 않았다. 몇 년씩 마음을 들여 사역해도 남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마저 실패한 케이스까지 종종 있었다. 아! 정말 힘들다. 만만하지 않다. 먼저는 내가 가진 나의 연약함 때문에 어렵고 아무리 진심으로 해도 그것이 잘 전달되지 않아서 힘들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것이 맞는다고 믿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한다.

조심스럽지만 나는 이 원리가 주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믿고 있다. 주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많은 사역을 감당하셨지만 주님이 가장 마음과 시간을 쏟아 부은 대상은 바로 제자들이었다. 그리고 주님도 한 명 실패하셨다(ㅋㅋㅋ 사실 이 부분이 내게 큰 위로가 된다). 안타깝게도 이런 진리는 꼭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다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사명이자 거룩한 뜻이라는 명분으로 우리는 너무 쉽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이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동일하게 같은 일을 해도 누군가는 그들을 세우고 함께 나아가도록 섬기지만, 누군가는 그들을 이용하기만 한다. 사람을 대하는 동기와 태도에 따라 이 차이는 확연히 달라진다. 물론 이 민감한 차이에서 우리가 항상 자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늘 깨어서 물어볼 수는 있다.

“나는 사람을 섬기며 세우는 자인가? 아니면 이용하는 자인가? 비록 그것이 비전과 사명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대답은 단순하다. 나의 사역을 통해 얼마나 큰일들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제자들(무리가 아닌 진짜 주님을 따르는 사역자와 제자들)이 일어났는지 보면 된다. 큰 사역이 일어나면 안 되는가? 물론 된다! 그러나 진정한 큰 사역은 무리나 군중이 아닌 결국 제자들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제자들이야말로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해 복음 전파와 제자 삼는 사명을 우리와 함께 감당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은 대부분 개인이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에게 주신 말씀이다. ‘우리’를 놓쳐버린 개인은 별 의미가 없으며 ‘나’라는 개인을 붙들어주는 것은 곧 우리라는 몸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이루려고 마음을 쏟기보다 내게 허락하신 ‘우리’를 온전히 세우는 기쁨이 더 큰 기쁨임을 경험하기 바란다. 결국 천국 갈 때 우리가 가지고 갈 것은 큰 사역이나 건물이나 업적이 아니라 바로 사람일 것이다.

† 말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 에베소서 4장 13~16절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 로마서 12장 4, 5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 히브리서 10장 24, 25절

† 기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으로 섬기며 협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도록 늘 지혜를 구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믿음 안에서 함께 세워져 나가는 지체들을 사랑과 격려로 섬기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 자신을 점검해보고 결단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