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히스토리 5] 가톨릭의 반종교개혁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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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교회 역사학적 측면에서 아주 의미 있는 해입니다(✪◡✪)

종교개혁이 지금의 내 신앙생활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종교개혁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함께 살펴보러 가시죵


# 종교개혁의 파장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처음 루터가 95개조 논제를 발표하면서 종교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을 때만 해도 가톨릭 교황청은 이 일이 이토록 커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가톨릭교회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뭔가 해야 했다. 개신교 종교개혁에 대한 가톨릭의 반격을 역사가들은 ‘가톨릭의 반종교개혁’이라고 부른다.

1. 새로운 수도회들의 탄생

히메네즈 추기경

1520년경부터 수많은 가톨릭 수도회들이 새로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 수도회들이 가톨릭 내부의 종교개혁 움직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새로 생겨난 수도회들은 묵상하는 삶을 철저히 강조하는 경건주의가 한 축이었고, 또 다른 한 축은 적극적으로 세상 속에 뛰어들어 개혁하는 행동주의였다.

오라토리오회 : 사회와 교회의 개혁은 개개인의 영혼 개혁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핵심 사상이었다.
카푸친회 : 독실한 프랜시스파 수도회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프랜시스의 빈곤과 봉사의 가르침을 보다 철저하게 지키자는 원칙주의자들이었다.
맨발의 갈멜수도회 : 스페인 수도회로, 신발을 안 신는 그들의 습관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돌아온 프랜시스 수사들 : 카푸친회처럼 독실한 수사들이었다. 1570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곧 확신되어 북미대륙과 세계 곳곳으로 선교사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2. 가장 영향력이 컸던 예수회의 창립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현대 교회사에 두고두고 영향력을 미치는 단체는 바로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창립한 ‘예수회’다.

로욜라는 영적 투쟁의 경험 속에서 하나님과 사탄은 모두 인간의 외부에 있는 존재들이며, 인간에게는 이들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 로욜라는 훗날 ‘영성수련’이란 책으로 출간된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완성했는데,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데 있음을 그것을 통해 철저히 알게 하려고 했다.

그는 훈련 프로그램의 매뉴얼대로 자신을 철저히 훈련하여, 마르틴 루터가 그 몸부림의 결과로 가톨릭교회로부터 멀어졌다면, 그는 가톨릭교회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게 됐다.


3. 트렌트 종교회의 이후의 가톨릭

마테오 리치 신부

원래 가톨릭 교황은 엄청난 돈과 권력을 손에 쥐고 휘둘렀던 무소불위의 존재였다. 그러나 그로 인해 교회가 타락했고 개신교 종교개혁을 촉발시켜 가톨릭의 위상은 크게 흔들렸다.

트렌트 종교회의는 개신교의 종교개혁 사상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기존 가톨릭의 신학적 입장은 하나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종교재판을 통해 교권을 옹호하고, 예수회 수사들의 활약으로 유럽의 주도권을 개신교에게 넘겨주지 않고 나름대로 잘 버텨냈다.

하지만 개신교 종교개혁의 원인 제공을 한 가톨릭 내부 지도층들의 도덕적 타락에 대해서는 반성과 변화의 의지를 보였고,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자체 개혁들을 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1,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교황청은 넓은 영토와 군사를 다 잃으면서 힘을 잃게 되었다.

중세기 내내 오직 가톨릭 신앙만을 절대 유일 신앙으로 강조하며 다른 종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가톨릭교회가 20세기 중반에 와서는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180도 입장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 교황청의 이런 반성과 변화의 시작의 뿌리를 찾는다면 16세기에 일어난 개신교 종교개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용 발췌 = 한홍 목사의 종교개혁 히스토리
사진 = 강신욱, 규장, 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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