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종교생활’ 이야기 0] 신앙과 인격의 성숙은 동의어일까요? 전혀 다른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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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우성균입니다. 행신침례교회 전도사입니다. 페이스북에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신앙 여정을 정리해보고 싶어 쓰기 시작한 #나의 종교생활 이야기를 올리고 있습니다.

사실 글을 계속 써봐야겠다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글을 보시고 먼저 연락을 해오신 분들 때문입니다. 누가 볼까봐 ‘공유’나 ‘좋아요’는 못누르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정말 많이 공감된다고 그것만으로 위로가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간 교회 생활을 하면서 어찌나 힘드셨을까요? 참 안타깝습니다.

그냥 이런 분들에게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성도님 잘못이 아니예요.’하고요. ‘기도가 부족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성경을 더 보셔야죠.’ 그런 얘기 얼마나 많이 듣고 질리셨으면 저 같은 사람의 글을 보면서도 숨죽여 우실까요.

직간접적으로 제가 경험했던 신앙적 딜레마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 주실테니 미리 감사드립니다:) 


신앙과 인격의 성숙도가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헌신도가 높지만 주변 관계가 상당히 어려운 분들을 종종 경험하거든요.

교회가 요구하는 신앙 고백과 행위에 능한 신자인데, 매우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며, 남을 헤아리기보다 상처 입히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신앙과 인격, 물론 둘은 별개의 문제 맞습니다. 인격은 주로 관계적으로 증명되지만, 신앙은 하나님 앞의 경건으로 증명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제가 신앙과 인격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으로 치환하는 것에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불신자의 인격을 다루려는 건 아니고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명 구별되지만 불가분리의 계명입니다. 두가지가 동시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심각한 위험이 있습니다.

한 가지만 나타나는 것은 제대로 된 신앙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신앙심’은 깊은데 거기에서 반영되어 나오는 필연적인 겸양과 온유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뭔가 말이 안됩니다. 쉽게 말해 좀 ‘이상한 신앙’입니다.

참된 중생을 경험하고 하나님과 말씀 앞에 그대로 발가벗겨진 죄인임을 깨닫는 신자는 인격의 수준이 어떠하든지 간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적극적 변화는 아니더라도 자기실체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을 향해 조심스러운 마음과 언행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적인 접근인 것 같고요, 실질적으로 이 신앙과 인격의 괴리가 일어나는 현실적인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결국 위에서 말했던 ‘이상한 신앙’ 말입니다. 두서 없지만 그 현실적인 이유들에 대해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교회가 요구하는 신앙이 철저히 ‘개인 성취적 신앙’에 초점 맞춰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의 중요한 행위가 성경읽기, 기도하기, 교회 헌신, 예배드리기와 같은 것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행위에 있어 성취도가 높은 분들이 신앙심이 깊다고 인정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정작 이 행위들의 결론, ‘삶’이 없는 것입니다. 타인을 향하고 있는 내용이 별로 없는 거지요. 삶을 차지하는 거의 대부분의 영역이 ‘관계’라는 것을 주목해볼 때,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인생을 결정 짓는다고 봐야 합니다.

신앙의 발현은 지극히 평범한 삶의 자리에서 가족과 이웃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로 드러나는 것이니까요.

즉,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추구 되어야 할 삶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반면, 우리가 본질로 내면화해야 하는 영역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행위적이고 평가적이라는 것입니다. 예배 횟수, 기도 시간, 성경 지식 수준, 이런 것으로 신앙의 척도를 삼으니까요.

또한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시는 분들은 자기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레벨업을 이룬 고수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자신의 깨달음, 영적 능력, 은사가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자부하고요. 안타깝게도 그것을 신앙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니 사람들은 되려 신앙의 성취를 이용해서 엉뚱한 짓을 합니다. 신앙심을 가지고 교회에서 왕노릇하려고 합니다. 가르치려고 하고, 기득권이 되려고 합니다.

이렇듯 개인 성취적 신앙의 목적이 사실은 세속적이다보니, 인격의 성숙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관심 밖입니다. 분위기 자체가 그러니까요.

교회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분들이 교회에서 힘 없는 약자를 어떻게 대하고 계시는지요. 케바케이겠지만 저는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교회를 홀로 나오는 학생이나 청년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그 인격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식 귀한 줄은 아는데 남의 자식 마음에 피눈물을 나게 하는 경우도 많지요.

게다가 또 한가지의 문제가 있습니다. 보통, 사회에서는 인격 성숙이 덜 되어 실수가 잦고,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 그것 대로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자기가 고수하고 있는 종교적 특심을 면죄부로 사용합니다.

게다가 다들 또 그렇게 인정을 해줍니다. ‘말’을 잘하고 교회 ‘일’을 잘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잘못하고도 ‘미안합니다.’ ‘내가 실수했습니다.’라고 인정을 잘 안합니다.

정리를 해보면 현재 대부분의 교회에서 추구하고 있는 개인 성취적 신앙은 ‘인격’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참된 신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분위기 자체가 그렇습니다.

단호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타인 앞에서 인격적 결함이 나타나는 것은 분명히 신앙이 부족한 것으로 인정해야 하고 그것을 서로 상식으로 알아야 합니다.

당연히 남을 가르치거나 영혼을 섬기는 자리에 인격적 결함이 있는 사람을 두어서도 안되겠지요. 예를 들어 말로 다른 사람을 자꾸 상처주는데도 ‘성경지식’이 많고 ‘강의력’이 좋다고 해서 신자를 가르치는 자리에 덜컥 세우면 안된다 이말입니다.

좀 더 확장된 관점으로 보자면, 교회 공동체 자체가 인격적 성숙의 표본을 아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데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도 한 몫합니다.

앞에서 살펴본대로 신자의 인격 성숙은 삶을 살아내는 문제라서 어렵습니다. 교회는 이 ‘돈 안되는 장사’를 하기 보다 교회에 자주 모이고, 교회의 종교활동에 헌신적으로 임하는 것을 ‘좋은 신앙’이라고 치부해준 것입니다.

교회에서의 모습과 삶의 모습, 교인들 앞에서 고백하는 신앙과 삶으로 고백하는 신앙. 이것이 매우 먼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건드리지 않기로 한 것이지요.

목회자도 성도 서로 간에도 암암리에 동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격을 고친답시고 칼을 들이대는 것도 문제지만요, 적당한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 된 상태로 눈감아 주고 있는 것도 문제 아닙니까.

인격의 성숙 여부와 방향성은 공동체 전체의 분위기에 크게 좌우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군중심리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가 이웃 사랑의 명제를 가지고 정작 해야할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그 안에 속한 성도들의 성숙한 인격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타인을 귀히 여기고 아끼고 사랑하는 일은 말로만 하는게 아니잖아요.

가령, 교회 건축한다고 집문서를 내놓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어려운 성도를 돕기 위해 자기의 어려움을 기쁘게 감당하는 신자는 많지 않습니다.

건축헌금이야, 삐까 번쩍한 교회당에 내 지분이 생긴 것 같은 뿌듯한 마음을 선사하지만 어려운 사람 돕는 건 아무 티가 안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교회가 어려운 성도를 돕기 위해 교회의 재정을 사용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는 돕고 누구는 안도울 수 있냐는 형평성 문제, 도와야 하는 기준 정하는 문제, 진짜 도와야하냐는 진정성 문제, 교회 건축이나 다른 사업을 위해 예산 확보해야하는 문제 등. 한두가지가 아니죠. 대체 언제 도울 수 있는 겁니까.

이건 실제로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저도 들은 얘깁니다. 한 교회에서 장학금을 줄 때 선정되는 학생의 기준이 교회 출석, 교회 봉사, 단기 선교 뭐 이런걸 열심히 하는 아이라고 하네요.

제가 보기엔 상식적으로 장학금이 필요한 학생은 ‘돈이 없는 학생’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공동체의 입장에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전혀 적용되지 않습니다. 세속적 기준이 그대로 들어와 있는 곳이 오늘날의 교회입니다. 인격을 논하기 참으로 힘들지요.

교회의 지위, 계급 구조는 어떨까요. 세상에서 좀 난 사람, 돈도 좀 있고 지위도 있고 교양도 있는 분들이 있지요. 네 맞습니다. 그런 분들이 교회에서도 주인 행세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은근히 더 인정 받고 추앙받는 거지요. 이런 암묵적 세속화 가운데에서 어찌 인격이 성숙해질 수 있겠습니까. 판 자체가 틀려먹었잖아요.

제가 개인의 인격을 다루는데 왜 교회의 재정이나 지위 같은 것을 말씀드리는지 아십니까. 교회가 세상보다 못한 상식 수준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다면 개인 신자의 인격 성숙을 논할 자격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교회가 세상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성숙한 일들을 해내고 있으면요, 그 공동체에 속한 신자들의 인격 수준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향한 과도한 헌신을 상식으로 여기는 교회 안에서 자기의 이기심을 채우려고 땡깡쓰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거든요.

신앙적 언어 구사에 능숙하고, 종교 행위가 익숙한 옷이 되어 있는 신자들이 꽤나 많은 것 같습니다. 저또한 마찬가지고요. 입술에서는 숭고한 복음의 용어가 막 튀어나오는데 삶의 자리에서 실제적인 복음을 살아내는 실력은 전혀 없는 저질 신앙. 우리의 현주소 아닙니까.

이쯤되면 신앙과 인격의 괴리를 좁히는 것. 상당히 어려워 보이는데요. 먼저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교회 생활과 그 열심만큼 주변을 좀 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아파하는 자들을 위로하고, 부족한 자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 할 수 있는대로 그렇게 같이 함께 한 성도를 섬기고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쉽게 답을 주거나 기도해주는 거 말고요. 아무 말 없이 주머니를 열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말입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고장난 인격을 조금 치유하는 길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