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개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을 종으로 삼는 것에서 끝나고 맙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일까요? 사랑은 복종하고 싶은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순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하세요. 주님의 종이 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신앙이 진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고 하나님을 종으로만 만들려는 신앙은 ‘반쪽 신앙’도 아니고 ‘3분의1 신앙’쯤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램프의 요정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는 사랑의 고백을 올려드리는 진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이 되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종에게는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데 쉽게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은 예외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면 자유함을 얻습니다. 기독교가 가진 역설(逆設)이지요. 하나님의 종이 되면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으로부터 자유하면 종이 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휴가를 맞아 홍천에 간 적이 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잠자리채 하나 들고 아이들을 데리고 새벽예배에 다녀오는데, 가는 길에 보니 물이 조금 고인 웅덩이가 있고, 그곳에 개구리 몇 마리가 모여 있었습니다. 가만 보니 곧 해가 뜨고 웅덩이의 물이 마르면 개구리들이 죽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개구리가 저렇게 있으면 죽어”라고 하니 이해를 잘 못합니다. “왜 죽어요? 물속에서 잘 놀고 있는데요?” 그래서 “여기는 웅덩이니 물이 곧 마를 테고, 물이 마르면 개구리는 웅덩이 위로 못 올라오고 죽고 말어”라고 했더니 “그럼 살려줘야지!” 하며 잠자리채로 개구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웅덩이 밖으로 꺼내어 살려주기 위해서였지요.

그러자 개구리들이 죽겠다고 도망칩니다. 잡히면 죽는 줄 알고. 그래도 열심히 잡았습니다. 몇 마리는 잡아서 건져주고, 몇 마리는 끝까지 도망가기에 할 수 없이 포기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계속 개구리만 잡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개구리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왜 그렇게 죽겠다고 도망쳤을까요? “잡히면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습니다. 잡히면 살고, 안 잡히면 죽는 것이었지요. 잡힌 개구리는 아마도 “아이고, 이젠 죽었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살았습니다. 반대로 끝까지 도망친 개구리는 “휴,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하며 안도했겠지요. 하지만 곧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잡으려고 하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손길을 피해 도망가기 바쁩니다. 잡히면 죽는 줄 알고. 하나님의 종이 되면 자유를 빼앗기고 내가 가진 것도 다 잃게 되는 줄 알고 열심히 줄행랑치지만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종으로 만드시는 분이 아니라 자유케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실 수 있습니다.

자유케 하는 분의 종이 되면 자유를 얻습니다. 거꾸로 자유케 하는 분에게서 자유하면 종이 됩니다.

페이스북, 믿음의 책: 로마서 이야기김동호 | 규장

† 말씀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사무엘상 3장 10절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베드로전서 2장 16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요한복음 8장 32절

† 기도
하나님께 전심으로 순종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는 사랑의 고백을 올려드리는 진짜 믿음을 소유하기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하나님, 말씀하세요. 주님의 종이 되겠습니다”라는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인가요?
이 고백을 결단해 보세요! 그리고 자유케 하시는 분의 종이 되어 진정한 자유를 얻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