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장 가까운 친구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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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릴 땐 다치지 않도록, 조금 더 크니 친구 관계에 대해서 많은 기도를 하게 됩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기를 바랄 뿐 아니라 내 아이가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을 흘려보내는 좋은 친구가 되기를 같이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좋은 친구를 만나는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인생의 가장 좋은 친구이신 주님과 동행하여 주님을 닮아가는 아이되기를 기도하려고 합니다.  


어머니는 대개 내가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그녀의 지혜를 숱하게 전해주었다.
우리 팀이 경기에 져서 내가 실망할 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기거나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란다. 어떻게 플레이를 했느냐가 중요한 거지.”
또는 내가 모형 비행기 조립설명서를 따라가지 못해 좌절할 때면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을 집중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친구들에 관한 것이었다. “유유상종(類類相從, 끼리끼리 어울린다).” 어머니가 내 친구들을 인정하시는 건지 아니면 더 나은 친구들을 사귀라며 내게 말하는 건지 헷갈렸다. 어머니 자신도 어느 쪽인지 확실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의 진리는 분명했다. 아이든, 십대 초반이든, 십대 후반이든, 청년이든, 중년이든 우리는 가장 가까운 친구들처럼 된다. 믿어도 좋다.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할 때, 그들의 가치관과 신념과 결정의 통로가 된다. 성경에서 솔로몬은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라고 했다(잠 13:20). 지혜로운 사람을 가까이 하면 더 지혜로워진다. 경건한 사람을 가까이하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가능성이 높다.
좋은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면 나도 좋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 반대 역시 사실이다. 잘못된 사람들과 어울리면 그들과 한 통속이 되어 멍청하고 위험한 짓을 할 가능성이 높다. 주변에 온통 수동적이고 동기를 잃은 사람들뿐이라면 자신도 무언가를 덜 하게 되지, 더 하게 되지는 않는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하나님을 줄곧 무시한다면 나도 그분에게서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

내 삶을 돌아보면 나 혼자 곤경에 처했던 경우는 매우 드물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멍청하거나 지혜롭지 못한 짓을 했을 때마다 똑같이 어리석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거꾸로 나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성공했던 경우도 드물었다. 경기에서 좋은 플레이를 했을 때, 나를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준 훌륭한 감독이나 동료들이 있었다. 지도자로 성장할 때, 결코 진공 상태에서 성장한 게 아니었다. 활력을 불어넣고 귀중한 피드백(feedback)을 해준 사람들이 늘 곁에 있었다. 영적으로도 다르지 않다. 내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울 때마다 주변에는 어김없이 경건한 사람들이 있었다.

친구를 보여주면 당신의 미래를 보여주겠다. 내 삶의 모든 성공은 내가 오늘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꿔 놓은 결정의 직접적인 결과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혜로우며 최고의 사람들과 연결되었다.
일단 찾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그런 이들을 계속 보내주셨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그분은 적절한 사람들을 사용해 내게 영향을 미치시며 나를 더 낫게 만드셨다. 나의 나 된 것은 과거에 선택한 친구들 덕분이다. 당신도 다르지 않다. 당신이 아는 사람들이 당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결정한다. 오늘 어울리는 사람들이 내일의 당신을 빚고 있다.
<더 나은선택>크레이그 그로쉘 p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