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허락한 행복, 빼앗기지 마세요 – 김유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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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당장! 나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요 

“갑자기 남편이 죽었어요. 작년 어느 날 사고로 떠나버렸죠. 남겨진 두 아이를 돌보며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나도 남편을 따라 죽고 싶었지만 아이들만 두고 갈 수는 없잖아요. 힘들어도 참고 또 참았어요. 나중에 천국에서 남편을 만나면 수고했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싶어서요.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평소에 쓰지 않는 휴대폰을 발견했어요. 호기심이 생겼죠. 문자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제 남편은 저 말고 다른 여자와 연애를 했더군요. 제게 한 번도 표현하지 않았던 달콤한 말을 주고받은 문자를 보는 순간 죽은 남편을 저주하기 시작했어요.

제 남편은 정말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이제 더 물어볼 수도 없잖아요. 가슴 속에 묻고 살아야겠죠. 제 삶을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녀의 어깨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가린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귀가 빨개지는 것을 보면서 손바닥 안에 눈물이 고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물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왔다. 피부가 눈물을 흡수하는 것이 벅차 보였다. 손등, 손바닥으로 닦아내도 눈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침묵을 깨며, 내가 물었다.
“아…. 그러게요. 어떤 상황일까요? 대답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한 문장으로 이야기해주시면 좋습니다.”
“도망치고 싶은 상황이에요. 더 견딜  수가 없어요.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어요.”
“왜 그렇죠?”
“제 인생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도망치고 싶은 거죠. 이 세상에서 사라져서 영원히….”
“왜 하고 싶은 대로 못하시는 걸까요?”
“아이들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남겨지니까. 그 아이들을 두고 갈 수는 없어요. 아이들이 없었다면 저는 벌써 포기했겠죠.”
“가장 두려운 것이 뭔지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생각해보세요.”
“제가 죽고 아이들만 남겨지는 거죠. 음침한 방에서 아이들이 굶고 있어요. 차가운 방에 엎드려서 아이들이 울고 있어요. 아이들이 더러운 옷을 입고 있어요. 뼈만 남은 정도로 앙상해 보여요…”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몇 퍼센트 정도 될까요?”
“네?”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몇 퍼센트 정도 될까요?”
“없어요. 저는 절대로 아이들을 두고 떠나지 않을 테니까.”
“그럼,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걱정하고 계시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그녀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거꾸로 그녀는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정확한 표현은 이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아이들을 지켜줄 것이다.”

그녀가 도망치고 싶은 욕구는 아이들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서 시작된 감정이다.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녀는 두려움과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은 몇 퍼센트인가요? 

사람은 고통을 느끼면 자연스럽게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낸다.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면, 그 상황에 대한 감정은 현실이 된다. 뇌는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이 현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다.

감정의 방향이 정해지고 나면 신체가 반응하기 시작한다. 몸은 무기력해지고 삶의 의욕은 사라진다. 걷는 것보다 앉는 것이 편하고, 앉는 것보다 눕는 것이 편하다. 이불에 들어가 몇 날 며칠을 누워있을 수 있는 신체적 환경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반격을 가하는 것은 고통 받은 사람에게 모진 일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스스로 자신만의 시스템을 만들어 그 안에 숨어 있는 사람을 꺼내주려면 반격을 가해야 한다. 사기당한 뇌에 진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가짜 감정을 진짜 감정으로 돌이키려면 진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진실을 찾아가는 방법은 바로 실현 가능성을 계산하는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한 확인이다. 계산해보면 안다. 그 확률은 미비해 일어나지 않을 확률과 거의 같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삶의 포기하는 사람들은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까? 우리는 기회가 있다면 그 사람들을 시스템 밖으로 꺼내주어야 한다.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기회가 있을 때, 그 사람을 꺼내줄 수 있다면 우리는 고귀한 생명을 건져낼 수 있다.

진실을 알게 된 사람은 혼란을 느낀다. 그동안 자신을 지켜주던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망연자실한다. 두 다리에 힘이 없어 간신히 붙잡고 서 있던 지팡이를 빼앗긴 감정이다. 지팡이를 빼앗으면 당연히 넘어진다. 힘이 없기 때문이다.

지팡이를 빼앗는 것이 모질게 비칠 수 있다. 그러나 넘어진 사람은 두 다리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지팡이를 빼앗는 것이다. 지팡이가 없어야 두 다리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된다면 그 상황은 어떤 상황인가요?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다 해결되어 최고의 상황이 된다면?”
“제가 지금 작은 가게 하나 차리려고 하거든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제가 옆에 있어 줘야 하니까, 직장은 다니기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남편이 남기고 간 돈이 좀 있어서 몇 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작년 말부터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있어요. 내년에 가게를 차리고 새 출발 하려는데 장사가 어느 정도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팔아보니까 기분이 좋더라구요.”

“가장 원하고 꿈꾸는 삶을 말씀하신 건가요?”
“네, 그렇게 된다면 제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은 몇 퍼센트인가요?”
“내년에 그냥 시작하려고 해요. 되든 말든. 일단 시작을 해봐야 알잖아요.”
“그럼,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봐도 될까요?”
“그렇죠….”


#인생은 행복의 다른 말이 아닌 동의어

인생이 완벽해질 때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인생을 지배할 때는 행복이 사치로 느껴진다.

그러나 불안과 고통이라는 시스템에 균열이 일어나는 즉시 행복이 들어올 가능성이 생긴다. 무엇이 행복인지 집중해서 생각해보자.

이 모든 시련과 어려움이 사라지고 최고의 상황이 왔을 때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것은 결국 일상이다. 우리는 극심한 고통을 벗어나 하루라도 빨리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일상과 행복은 같은 단어다.

죽음과 생명의 경계에는 사건이라는 울타리가 있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우리의 선택이다. 죽음에서 생명을 보면 행복이고, 생명에서 죽음을 보면 불행이다. 그러나 사건은 사건일 뿐이다.

그 사건에 대한 관점이 우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단지 나는 바란다. 당신이 살기를. 소소한 행복에 대해 잠시 떠올리며 미소 짓는 것만으로 당신은 살아날 수 있다. 어서 일상으로 돌아오라. 그것이 당신이 그토록 바라는 행복일 테니 말이다.

글 = 김유비 김유비는 12년동안 은혜의동산교회 부목사로 사역했고 현재 협동목사다. 김유비닷컴에 매진하기 위해 블로거와 상담자로 활동하며, 하나님이 만드신 행복한 가정을 세우고 돕는 일에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태어나 상처입은 어린시절을 보냈다.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 사랑스런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김유비닷컴을 통해 자신이 발견한 행복의 비밀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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