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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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출근길은 전쟁입니다. 내 한몸 준비하기에도 바쁜데 기껏 차려준 아침을 안먹겠다며 냉장고에 넣어버리는 아이를 보며 목구멍까지 화가 났지만 주님… 을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다시 서둘러 준비합니다.

순간 이 글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왜 아이에게 화를 낼까? 정답은 내 맘대로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나마 배우자는 어느정도 포기가 되었지만 아이에게는 아직이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나의 부속품이 아니라 주님앞에서는 동등한 자녀입니다. 주님이 만드신 그대로 인정하기를 원합니다.

큰아이 문제를 직면하고 조금씩 해결해가는 중에 둘째 서연이 문제가 터졌다. 몽골에서 내가 일하는 동안, 아이는 크리스천 보모 언니 손에서 자랐다. 참 착하고 신실한 몽골 자매였다.
연구소 사역을 정리하고서 자유를 만끽하며 기도 모임 등에 바쁘게 돌아다니던 중에 만 3세였던 서연이가 갑자기 이상한 감정적 증상을 보였다. 엄마들은 자녀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이때는 남편이 얘기해주지 않아도 일차적으로 나와 관련된 것임을 인정할 수 있었다.
‘내가 또 뭘 인정해야 되나?’
이것이 내 문제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꺾어야 했다. 다음으로는 그 문제와 상처를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소독하고 수술 받아야 했다. 온전해지려면 따끔하고 아파서 눈물 흘리는 치유의 시간과 대면할 용기가 필요했다.

서연이는 엄마에게서 잘 떨어지지 않는 성향인데 아침에 내가 출근할 때마다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역을 안 하면서도 내 목마름을 채운다고 또다시 아이를 떼놓고 나갔던 것이 미안했다. 그래서 어린 서연이에게 물었다.
“서연아, 왜 그래? 엄마가 너를 놓고 나가서 싫어?”
갑자기 아이가 큰 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약속했다.
“엄마는 네가 엄마를 따라 나가면 기다리느라고 힘들고 심심할까 봐 그랬지. 이제 시장을 가든, 기도회를 가든 꼭 서연이랑 같이 나갈게.”
그 이후로는 서연이 도시락을 싸서 내가 가는 곳마다 데리고 다녔다.

우리는 키우기 편한 아이를 좋아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힘들어서이다. 둘째 서연이가 어렸을 때 ‘얘는 왜 이렇게 낯을 가리고 엄마에게서 안 떨어질까?’라는 생각에 힘들 때가 많았다.

몽골 사람들은 워낙 아이들을 예뻐하기 때문에 식당에서 손님이 식사를 하는 동안 종업원들이 아이들을 안아주고 놀아주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우아하게 먹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얘는 유독 왜 이럴까?’ 하면서 오랜 시간 힘들어하다가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서연이를 낯가리지 않는 다른 아이랑 비교하며 힘들어할까? 하나님께서 얘를 이런 성향으로 만드신 것인데….’ 그 후 서연이의 낯가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니 상황이 똑같아도 내 마음이 예전처럼 힘들지 않았다.
<가정, 내어드림>이용규 p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