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태어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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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 누운 아이가 물어봅니다. “엄마, 우주에서 보면 저는 먼지보다 작은 존재겠죠?” 아이를 바라보며 이야기 해줍니다.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은 너를 알고 계셨고 이 우주보다 너의 존재가 더 크단다. 그래서 그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주신거야.”

 곧 수학능력시험이 다가옵니다. 시험이라는 무게감이 눌린 아이들을 바라보며 꼭 이야기 해주고 싶습니다. 시험결과와 성적에 상관없이 너는 하나님나라의 가장 귀한 존재란다!

우리의 마음이 무거워지는 경우 중 하나는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할 때다. 유구한 인류 역사와 이 땅에 살다 간 무수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갑자기 우리가 넓은 해변의 모래 알갱이 하나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느끼는 데에도 어느 정도의 사색이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인간 개인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또 결코 영원하지 않은 것에 거짓 영원성을 부여하기 위해 인간의 자아에 의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만한 인간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세상이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믿기 힘들어 할 정도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다려보면 시간이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다. 시간은 그를 먼지로 만들어 바람에 날려버릴 것이고, 그의 친구들도 그들에게 친숙한 정든 곳을 하나씩 떠나 사라질 것이며, 그들을 기억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그 후 찾아오는 여러 세대들은 그들 위에 망각의 층(層)을 겹겹이 쌓아올릴 것이고, 그들은 이 땅에서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마침내 더 이상 이름으로는 알려지지 않고 단지 통계 숫자로만 남을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한다면, 다른 것은 제외하더라도 최소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우리 마음 깊이 새기려 해야 한다.

그분의 메시지가 너무나 완전하고 포괄적이기 때문에 그것의 의미를 한 문단이나 한 페이지나 한 권의 책 안에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토록 놀라운 복음의 모든 것을 글로 써서 책에 담는다 해도 그 책들을 두기에는 온 세상이 너무 좁을 것이다.

십자가의 복음이 주는 유익 중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복음이 인간의 존엄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기 전까지 아무리 하찮은 존재였다 할지라도, 그가 그분을 만나는 순간부터는 아주 귀중한 존재로 변한다.
주님이 그에게 손을 얹어주시면 더 이상 그는 ‘그냥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는 즉시 특별한 사람이 되며, 우주적 의미를 갖게 된다. 하늘의 천사들이 그를 알아보고 그를 섬기기 시작한다(히 1:14).
전에는 얼굴 없는 허다한 무리 중 한 사람이었고, 우주의 미물(微物)이었으며, 바람에 날려 끝없는 불모지를 떠도는 보이지 않는 먼지 한 톨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얼굴이 생기고, 이름도 갖게 되었으며, 의미 있는 큰 계획의 한 부분으로 당당히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양들의 이름을 일일이 다 아신다.

어떤 젊은 목회자가 도시의 큰 교회 목회자에게 “저는 단지 산간벽지에 있는 작은 교회의 목회자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자 도시 교회의 목회자는 “목사님, 작은 교회라는 것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무명의 그리스도인은 없다. 하나님의 아들들 중 하찮은 사람은 없다.

각각의 그리스도인은 모두 중요하며, 밤낮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표지판이다. 예수님이 무수히 많은 사람 중에서 우리를 뽑아내 그분께로 부르시면 얼굴 없는 사람이 얼굴을 갖게 되고, 이름 없는 사람에게 이름이 주어진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우리의 존재보다 열등한 존재로 간주한다면 주님은 슬퍼하신다. 하나님 없이 우리 자신만 떼어놓고 생각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우리가 향해 가고 있던 ‘저 망각의 심연’이 본래의 우리에게 합당한 곳이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 그분의 사랑을 받을 만한 공로가 전혀 없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주장할 수 있는 우리의 권리를 죄 때문에 박탈당했다. 그러나 영원한 언약의 피가 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기에, 이제 우리는 자녀로서 아버지에게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아버지의 집에 거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기 때문에 아무런 두려움이나 당혹감 없이 그분의 식탁에 앉을 수 있다. 그분의 나라에서 아주, 아주 중요한 존재가 된 것이다!
<하나님 길에 우연은 없다>A.W토저 P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