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하지 않는 교육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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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한 장의 종이를 들고 왔습니다. 올해 수능 문제 일부였습니다. 문제를 보고는 아이 얼굴을 보았습니다.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입니다.

선생님이 주신 마음을 생각해보니 제가 대학시험 봤을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어려운 지문과 문제들이 요즘 아이들의 현실임을 깨닫고 더 열심히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이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종이를 내민 아이의 손을 저는 꼭 잡아주며 말했습니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괜찮단다. 하나님이 너를 향한 계획을 발견해가자꾸나. 

나는 경쟁 없는 교육이 가능함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각자를 위한 독특한 길을 예비하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신뢰하며 경쟁을 부추기는 세상에 속지 말고 저항해야 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동산에는 경쟁이 없었다. 누구나 굶주리지 않고 필요한 것을 누릴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그렇게 만드셨다.
그런데 죄가 들어오면서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로 바뀌었다. 강한 자가 승자가 되어서 독식하는 구조로 변형되었다. 그래서 경쟁에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특히 전쟁을 경험했던 한국 사회는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다음세대인 우리에게까지 전이시켰다. 그래서 ‘경쟁에서 지면 안 된다. 빨리 뛰어야지, 천천히 뛰다가는 폭탄에 맞는다’라는 생각이 뿌리 깊이 박혀있다. ‘빨리 빨리’ 문화의 배후에는 빨리 뛰지 않으면 도태되고,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손해를 입는다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세상 가운데도 사랑과 은혜의 법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이 있다. 좁은 길을 선택하면 망할 것 같은데, 막상 믿음으로 그 길로 가다 보면 예기치 않은 놀라운 삶을 경험한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으며, 특별한 은혜와 아름다운 결과를 만난다.

마찬가지로 경쟁하지 않으면 낙오자, 실패자로 전락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남들이 주목하지 못했던 블루오션(blue ocean, 경쟁자가 없는 유망한 시장)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인도네시아에 경쟁하지 않는 학교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여러 과목을 스스로 공부한다. 교재가 안내자가 되어 학생들이 교재를 따라간다. 학생들이 스스로 하루 공부할 목표를 정해서 공부한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목표를 잘 설정할 수 있도록 공부 도우미 역할을 할 뿐이다. 학년 구분도 의미가 없고, 모든 학생이 한 교실에서 공부한다. 성적표에는 학생의 진도와 진보 상황만 기록하고, 등수는 기록하지 않는다. 우리 학교의 학생 중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분투하는 현지인 목회자 가정의 아이, 어려운 가정 여건에서 자란 아이, 다른 학교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낸 아이도 있다. 그런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들어와 1년 정도 지나면 얼굴이 밝아지고, 부모 및 친구 관계에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다.

사실 이것은 모험이었다. 아이들이 잘 받아들이고 적응할 자신이 없었지만 하나님이 우리 공동체의 자녀들을 위해 갖고 계시는 계획을 신뢰하며 용기를 내었다.

얼마 전 새로 전학 온 친구에게 학교의 장점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 아이가 아직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이 작은 학교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게 하셨는지 고백할 때가 올 것이다. 경쟁 관계가 학생들을 더 높은 성취로 이끌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나는 학력고사 세대인데, 학력고사에서 전국 일등을 한 아이도 대학에서는 열등감에 시달리는 것을 보았다. 우리 안에 건강한 자존감이 자리 잡지 않으면 경쟁 체제 속에서는 일등부터 꼴등까지 전부 열등감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학생들이 평안히 공부에 집중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경쟁이나 강요로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잠재적 능력을 확인하고, 작은 성공 속에서 그것을 어떻게 발전시킬지를 깨달으면, 아이가 확신을 가지고 전심전력을 다해 달려가게 된다. 그럴 때 아이들은 성공적인 삶의 길을 발견한다.
누군가는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결국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라며 걱정할지도 모르겠다.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경쟁 체제에서 시달린 아이보다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며 자신감을 길러온 아이가 더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외부의 압력이나 위기에도 돌아가거나 주저하기보다 돌파를 결정하고 꾸준히 전진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격려해줄 필요가 있다.
나는 하나님께 아이들의 미래를 내어맡겼을 때 그들을 훨씬 더 강하게 만들어주심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말한다.
“얘들아, 너희들이 어떤 영역을 잘하지 못한다고 주눅 들지 마. 하나님이 예비하신 정말 아름다운 길이 있단다. 천천히 가고, 조금 돌아가도 괜찮아. 길이 없는 게 아니야. 막힌 길 뒤에 다른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을 보게 된단다. 오히려 진짜 네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그분께서 지금 네가 가려는 길을 막으신 것일 수 있어.”
<가정, 내어드림> 이용규 p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