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연극심리상담 #10] 분노는 부정적인 감정도 불필요한 감정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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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제발!

B : 안 돼.

A : 제발!!!

B : 안 돼…

연극치료에 참여한 내담자 A와 내담자 B. 마주 선 A와 B는 각각 한 가지 말만 할 수 있습니다. A는 ‘제발’이고, B는 ‘안 돼’입니다. 먼저 A가 큰 소리로 말합니다.

“제발!”

B는 A의 눈을 피했고 작은 소리로 ‘안 돼’라고 말합니다. 뒤이어 A는 B에게 다가가 목소리 높이며, 더 강하게 ‘제발’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B는 여전히 A의 눈길을 피하며 거부의 의사로 읽히지 않는 ‘안 돼’를 말합니다. A의 감정은 점점 증폭되었고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B를 몰아붙입니다. B의 목소리를 점점 기어들어갔고, 나중에는 뒷걸음질까지 치며 A를 피했습니다.

상황극을 마친 후 A와 B에게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A : 뭔가 후련해요. 상대요? 네. 주눅 드는 게 보였어요. 마음이 아팠고요. 그런데 상대가 주눅 드는 걸 보니 그럴수록 더 몰아붙이게 되네요. 그래야 제가 원하는 걸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B : 특별한 감정은 없어요. 제 태도가 상대에게 주는 영향이요? 글쎄요, 그런 것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A는 가사와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로 아이에게 폭력적으로 굴고 있는 전업 주부였고, B는 사람들의 부당한 요구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몸과 마음이 지친 직장인이었습니다. A와 B가 속해 있는 치료 집단은 ‘대인관계 개선’을 목표로 하여 모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A와 B 사이에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둘 다 ‘분노를 느끼고 이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과 관련한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둘 모두 자신의 태도가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채지 못했지요. 위와 같은 상황극을 통하여 A는 필요 이상으로 분노를 느끼고 과하게 표현하여 상대를 얼어붙게 만든다는 것과 B는 표현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표현하지 못해 상대가 주도권을 장악하게 만든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분노’라는 말에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느끼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지요. 그러나 분노는 부정적인 감정도 불필요한 감정도 아닙니다. 상대나 상황이 자신에게 해를 가하고 통제하려고 들 때 이에 저항하는 ‘분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인간의 기본 감정 ‘희로애락’ 중에 가장 극적으로 표현되는 역동적인 감정이며 따라서 상대나 상황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감정입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의 분노하심이 여러 번 언급되는데 이는 죄를 지은 인간을 향한 정당한 표현이었습니다. 문제는 ‘분노’를 느끼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느끼고, 적절하지 못하게 표현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분노와 관련된 문제를 겪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불신’과 관련된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내가 너보다 더 성숙하고 나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기에 너는 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분노를 만듭니다. 누군가를 향해 “너는 잘못됐어. 그렇게 살면 안 돼. 왜 내 말을 안 듣니? 내가 몇 번이나 이야기했잖아?“라며 상대방을 바꾸려고 할 때 분노가 올라옵니다.

그 밑바닥에는 상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습니다. 타고 난 기질과 성격은 사람마다 다르고, 자란 환경과 현재 처한 환경도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아,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너는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 할 수 있겠구나.’라며 상대를 인정하며 믿어 줄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불신은 스스로를 향하기도 합니다. ‘정말 이것 밖에 못해? 더 열심히 잘해야지. 이게 정말 옳은 거야? 더 나은 것이 있을 거야.’라며 스스로를 다그치지도 해요.

이러한 불신이 심해지면 상대에게 나쁜 의도가 있다고, 그 중에서도 나를 힘들게 하려고 작정했다고 믿게 됩니다. 밤에 아이가 울며 자지 않는 것은,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것은, 친구가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은 ‘나를 무시해서’, ‘나를 힘들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 중심적으로 보게 되면 나를 힘들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분노의 대상이 되지요.


A는 자신의 불신을 바로 인정한 반면 B는 자신에게는 불신의 문제는 없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 B가 어린 시절의 사건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엄마는 중학생 형은 차로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 저에게는 자전거를 타고 가라고 하셨어요.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 어느 날, 그 날도 엄마는 우산을 갖고 형의 학교로 갔고, 저는 비를 맞은 채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왔지요. 흠뻑 젖어 집에 들어섰는데, 엄마는 칠칠치 못하게 다 젖어 왔냐며 야단을 치셨어요. 그 때 기분이요? 글쎄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모두들 B가 무척 화났을 것 같다고 했지만 정작 B는 정말 괜찮았다며 자신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게 뭐 그리 큰일인가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저는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내담자들이 B의 이야기로 즉흥 상황극을 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B는 극이 끝날 즈음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아, 속상하네요. 아직 어린 애였는데…” 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습니다.

상황극을 어떻게 바꾸면 좋겠냐고 묻자, “엄마가 다가와 젖은 머리를 닦아주며 ‘고생했네.’라고 말해주면 좋겠어요.”라고 해서 B의 요구대로 상황극을 다시 해보았습니다.

상황극을 마친 후 실제로는 왜 그렇게 말하지 못했냐고 묻자 B는 말했죠.

“괜히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말해봐야 상대는 받아주지 않을 것이고 갈등만 생길 거라는 두려움, 어차피 상대는 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이것이 바로 불신’이라는 것을 B 역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분노는 결국 두려움입니다. 상대가, 세상이 나에게 해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 두려움이 커지면 스스로를 거칠게 만들거나, 반대로 완전히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이에요.

사람들은 ‘분노’의 이미지로 ‘불’을 떠올립니다. 불은 잘 사용하면 굉장한 도움이 되지만 잘못 다루면 엄청난 위협이 되지요. 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 억압하거나 걷잡을 수 없이 휩싸이지 않고 적절히 잘 다루게 된다면 분노를 통해 나 자신을 지키며 변화와 성장을 경험할 것입니다.

(분노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글 = 김소진  김소진 루트연극치료놀이터 센터장이자 하나님의 딸, 부모님의 막내 딸, 연극배우의 아내, 귀여운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 교육과’를 졸업했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원에서 ‘연극치료학’석사를 받아 연극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넘치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에, 충남 청양에 작은 시골교회에서 아이들을 섬기는 사역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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