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 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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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이 세상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이는 마치 이방인들이 이 땅에서 ‘샹그릴라(이상향의 도시)로 에 갈 수 있을까요?’나 ‘그 지상낙원의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초월하기 원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실제 삶은 세상에서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는 달리 말하면 “행복을 주는 세상의 중심지는 어디일까요?”와 같은 질문입니다. 모든 것의 근원이 되며,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고통과 환난이 없고 항상 행복을 주는 곳 말입니다.

우리 모두 그곳에 가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살면서 그곳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어 합니다. 나아가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행복을 주는 세상의 중심지는 문화의 중심지일까요?

사람들은 문화의 중심지로 모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참여하고 나누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역사를 보면 문화는 계속 변해왔습니다. 쉬운 예로, 작년에는 세련돼 보여서 잘 입었던 옷도 지금은 촌스럽게 보여 입을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문화의 중심지가 행복을 주는 곳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행복을 주는 세상의 중심지는 어딜까요? 어디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영원한 행복을 주는 세상의 중심지는 ‘그곳이 어디일까’라고 생각하는 내가 아닐까요? 우리가 그렇게도 찾아 헤매고 가고 싶어 하던 곳이 바로 나 아닌가요?

결국은 내 마음이 영원한 행복을 주는 세상의 중심지입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봅시다. 내가 정말 세상의 중심지일까요? 그렇다면 나는 영원히 변하지 않고 항상 행복해야 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내 마음은 늘 기쁘고, 슬프고, 외롭고, 분노하고, 다시 슬퍼하며 요동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역시 허상일 뿐 영원한 중심지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아가 만들어낸 인식 속에서 세상을 보고 느끼고 생각할 뿐, 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도 못하고, 그 인식조차도 제한되어 있으며, 늘 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또한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메타인지(meta-cognition: 나의 존재를 의식하는 의식)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생각을 모아보면 적어도 행복을 주는 세상의 중심지는 내 생각과 상관없는 곳이어야 하고 변함이 없는 영원한 곳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세상의 중심지는 바로 ‘나 자신을 부인한 곳’일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가기는 힘든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포기해야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성령 충만을 받으신 후 성령에 이끌리어 왜 광야로 가셨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육신의 죽음 전에 먼저 죽기 위해서 가신 것입니다.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4,25)

이방인들이 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샹그릴라’는 티베트어로 ‘마음의 해와 달’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음의 해와 달은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영원히 현존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행복을 누립시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3).

내용 발췌 = 하나님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