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신앙으로 자란 내 아이… 정말 주님을 만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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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가정에서 자라는 것은 축복입니다. 부모님의 기도와 어릴 때부터 항상 주님을 마음을 모시는 삶을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에 다니고 믿는 가정에서 자란다고 해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자녀가 부모의 신앙으로 인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하나님을 만나고 회개하며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삶을 살수 있기를 주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앞에 설 때 죄를 자각하게 되므로, 우리는 죄가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나의 체험을 토대로 이 점을 간략히 예증해보겠다.
나는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믿는 부모에게 양육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이런 감사하고 온화한 환경 덕택에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담거나 추악한 행동을 저지르지 않고 젊은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고막이 터질 듯한 시내산의 천둥소리에 덜덜 떤 적도 없고, 그 소리에 마음속 깊이 죄를 자각한 적도 없었다. 나는 십계명의 마지막 여섯 가지 계명에 대해 자신감을 보인 젊은 관원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늘 살았던지라
정결함 그 자체이신 주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막 10:20)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가까이 접근하기 어려운 시내산 자락이 아니라 성 밖의 황폐한 골고다 언덕에 의식적으로 섰을 때, 그래서 십자가의 수욕과 고통의 비밀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보았을 때, 자신을 희생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자신을 부정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았을 때, 내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 죄인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가 그 사랑 안에서 한 줄기 빛을 보았고, 그 빛을 보는 순간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티끌처럼 작아졌다. 나의 슬픈 마음은 기도하기를 갈망했지만,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없었다. 주님이 나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형언하기 어려운 사랑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죄가 지난날의 우발적인 비행(非行)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자아 중심’이라는 나의 본질적인 태도에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 사랑의 빛 안에서 깨달았다. 그렇다. 내가 손을 입술에 대고 “나는 부정한 죄인입니다! 나는 부정한 죄인입니다!”라고 흐느낀 것은 예수님이 나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데려가셨을 때이다.

나는 기도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감히 입을 열어 기도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사랑을 향해 아무것도 구할 자격이 없는 죄인의 처지였다. 내가 그런 사랑 앞에서 기도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에 관한 계시 이상의 무엇이 필요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 이상의 무엇을 내게 주셨다.
<기도바이블>캠벨 몰간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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