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결혼생활과 육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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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처음부터 해야 할 것과 안되는 것을 배우면서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가지기도 합니다. 학창시절 교회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다가 죽기 바로 직전에 하나님 믿고 천국 가는 게 행복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복음이 주는 자유와 평안을 알게 될 때 구속과 억압이 아닌 진정한 사랑을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란 많은 자녀들이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유를 구속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교회 안에 남아있지만 여전히 의(義)에 대한 두려움이나 하나님께 적대적인 감정을 갖는다. 이는 율법적인 신앙의 틀은 전수받았지만 복음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 결과이다.

나는 청년 집회 때 청년들에게 묻곤 한다.
“결혼이 구속인가요, 자유인가요?”
어찌 보면 결혼은 한 사람에게 묶이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여성 또는 남성의 유혹으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내가 아내와 관계에 집중하면 할수록 내 마음과 영혼은 다른 유혹으로부터 자유를 경험한다. 나는 외부 일정이 5일 정도 지나면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어진다. 한국 일정으로 인해 저녁에 공항을 향해 집을 나설 때면 발걸음이 참 무겁다. 나는 감정적, 정서적으로 가족에게 묶이기를 스스로 선택한다. 그리고 그 묶임 안에서 자유를 누린다.

율법의 영은 구속과 통제의 영이다. 상대방을 구속하고 통제해서 자신의 지배하에 넣을 때 비로소 안심하게 만드는 영이다. 독재자에게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또한 한국 재벌 가문에 면면히 흘러오는 영적인 힘이기도 하다.

일반화해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버지에게 받은 구속과 두려움이 자녀를 대하는 태도에 반영되어 나옴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영적인 영향은 세대를 이어 흘러가면서 가문 전체의 구성원의 삶에 미친다.
소위 신앙의 명망가에서도 같은 모습을 본다. 잘사는 듯 보이지만 남의 눈을 의식하며, 내면에는 여러 관계의 어려움에 묶여있는 경우가 있다.

복음은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 내려놓음의 삶은 우리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한다. 나는 하나님께 내 의지와 미래를 의탁할 때 진정한 자유를 경험했다.

젊은 시절의 나는 까칠한 완벽주의자였다. 자신에게도 엄격했지만 그 기준을 남에게도 적용하고 동일한 완벽함을 요구했다.

결혼 초에 아내에게도 많은 것을 요구했고, 그것에 맞추지 못하면 불편을 느끼곤 했다. 그 예로, 나는 방이 깔끔하게 정돈되어야 마음의 안정을 찾는 쪽이다. 하지만 아내는 여러 가지를 흘리고 다니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방안을 보면 아내의 동선이 어떠한지를 대강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아내의 그런 모습이 불편해서 잔소리로 바꾸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곧 잔소리로는 어느 누구도 바뀌지 않음을 깨달았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면서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신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믿어지자 내 불편한 감정도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그 무렵부터 아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연습이 시작되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험할수록 육아에 있어서도 편안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내 아이의 성향과 독특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되지는 않는다.

늘 다시 마음을 다잡고 도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나를 용납하고 받아들이며 내 과거의 실패와 무능과 약점을 인정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만큼 아이들의 약하고 부족해 보이는 모습도 품게 된다.

물론 이런 받아들임은 방종과 무절제와는 영적으로 근본이 다르다. 받아들여짐을 경험한 자녀들은 무질서와 나태와 방종의 삶에 발을 담그지 않는다. 구속의 틀 속에서 신음하는 자녀일수록 방종과 일시적 쾌락에 강한 유혹을 느끼고, 거기서 해방구를 찾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신앙적 열심이 특심한 부모의 경우에 신앙적 완벽주의를 가지고 자녀를 대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우리 부부도 한때 그랬다. 첫째와 둘째는 순해서 부모가 훈육할 때 비교적 잘 따라주었다. 그런데 셋째는 반발하는 쪽을 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짚어보는 중에 아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바뀌어야 함을 깨달았다. 또한 첫째와 둘째가 사춘기를 경험하면서 예전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의 태도가 변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부모와 함께 산다고 자동으로 그 신앙이 아이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야단을 친다고 아이가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선교사의 자녀로서 어느 정도의 성숙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기준에 아이를 맞추려고 자신과 아이를 압박해왔음을 인정해야 했다.
<가정, 내어드림>이용규 p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