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바빠서 가정을 돌아볼 시간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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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하나님나라의 작은 형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가족을 사랑하지 못하거나 자녀의 신앙 교육을 교회에만 맡겨버린다면 과연 우리 가정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날까요?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가정이 주님의 마음이 흘러가는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일학교에서 자주 부르는 찬송 중에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21c 찬송가 429장)라는 노래가 있다. 내가 항상 감탄해 마지않는 복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를 첫 번째 자리에 두려고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하루에 두세 시간이 덤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물론 미친 듯이 서두르는 현대 사회의 정신병적인 증세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 주인 되신 분이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사 30:21)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분이 매일의 바쁜 일정 속에서 시간을 내어 일을 처리하도록 도울 방도를 갖고 계신다는 의미이다.

조용히 성경 말씀을 음미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 일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는 일 등 중요한 일들을 위한 시간은 언제든지 있기 마련이다. ‘일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이라고 한 것은 가족관계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하나님을 섬기느라 너무 바빠서 가족을 돌볼 수 없다는 그리스도인이 있다. 내가 볼 때 그는 하나님 일을 하느라 지나치게 분주한 것이다. 물론 그가 정말로 바쁜 것은 아니다. 실은 선한 의도를 갖고 주님을 섬기는 중에 어쩌다 보니 삶의 균형을 잃은 것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네 딸이 있다. 이 소중한 아이들은 나를 도와주고 성장하게 하는 천사와 같은 존재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들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이 어린 생명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부분 아내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내 부족함과 너무도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다른 일들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애를 써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같이 거실에서 장난치며 뛰어놀았다. 나는 이야기를 지어내어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때로는 약간 거칠고 난폭한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모험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그만큼 더 큰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지역사회를 섬기는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밤에 나가야 할 때도 최대한 늦게 집을 나서려고 애를 썼다. 아이들의 작은 침대 옆에 함께 무릎을 꿇고 우리의 필요와 삶에 대해서 하나님께 자세히 말씀드림으로써 아이들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도록 충분히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성경 암송을 아주 많이 했다. 성경 구절을 많이 암송해두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총알 없는 총을 가진 사냥꾼과 같다. 이 사랑스런 아이들이 제각기 믿음의 새벽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돕게 하셨다.자녀들을 회심하게 하는 책임을 교회에 맡기는 그리스도인 부모들을 보면 유감스럽다. 성경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라고 권면한다. 이 말씀의 의미는 분명하다. 즉, 나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하나님께서 그 결과를 보장하신다는 의미이다.

아이에게 가르치라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 즉 복음의 진리에 아이가 익숙해지도록 하고 그런 다음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려면 어느 정도의 주입식 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훈련’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공장에서 새로운 일을 가르치거나 어떤 지시를 내릴 때 실례를 보여주는 것만큼 강력한 효과를 내는 것도 없다. 아이에게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당신의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금요일 밤은 가족의 밤이었다. 아내는 사탕과 팝콘을 만들었고, 나는 프로젝터를 꺼내서 영화를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미키 마우스를 정말 좋아했다. 때로 필름을 거꾸로 돌려 뒤에서부터 보여주면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우리는 함께 게임을 하고, 삶을 나누고, 웃고 노래했다. 아이들보다 내가 이 시간을 더 기대한 건 아닌가 싶다.

우리 가정에서는 선교를 강조했다.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도 하고, 그들의 사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 내용을 항상 이해한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큰딸 레이첼이 해외선교지(the foreign fields)라는 말을 헷갈려서 “하나님, 옥수수 밭(the corn fields)에 있는 선교사님들을 축복해주세요”라고 기도한 것이 기억난다. 어떤 때는 “아프리카에 있는 중국인들을 축복해주세요”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우리는 규율을 중요하게 여기고 강조했다. 때로 너무 엄격했던 것 같다. 레이첼은 “내가 첫째니까 아빠 엄마는 나를 키우면서 많이 배우신 거예요. 두 분이 특정 영역에서 왜 그렇게 엄격하셨는지 이해가 잘 안 됐다고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규율에 사랑과 이해를 결합시킬까 하는 것에 마음을 썼다. 아이들을 벌 줄 때는 반드시 먼저 아이들을 앉혀 놓고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아이들이 하는 활동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려고 애썼다.
<하나님이 나의 기업을 소유하시다>스탠리 탬 p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