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매료시키는 지혜는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영원한 지혜’이다. 영원한 지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혜와 세상의 심리학을 공부해본 나는 그것들의 약점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눈에 금방 띄는 그 한계들을 잘 알고 있다.

모든 문화에는 그 문화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독특한 지혜가 있으며, 그 지혜에는 또한 특유의 한계들이 있다. 어떤 문화에서든 간에, 인간의 마음과 상상에서 나오는 지혜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내가 ‘영원한 지혜’라고 부르는 것은 다르다. 이것은 히브리 민족을 통해 계시된 지혜이다.히브리인들이 가르친 지혜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아주 많이 나온다. 시편이나 잠언이나 전도서를 읽으면 하나님의 영원한 지혜를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히브리 교리의 ‘창조의 지혜’와 동일시했는데, 창조의 지혜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와 만물을 창조한 음성이다. 요한은 헬라인들이 그의 글을 이해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는 했지만, 창조의 지혜를 헬라 사상과 조금도 연결시키지 않았다.

당신이 교부들의 글을 읽으면, 그들도 창조의 지혜를 믿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태고의 신적 영감이 육신으로 오신 분이요, 지극히 밝은 영원한 빛이며, 하나님의 능력의 흠 없는 거울이시라고 믿었다. 그들이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그분의 선지자와 친구로 만들어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표상(表象)이셨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선지자로 만들었는가?
성경 말씀의 증언에 의하면, 그것은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시편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다윗을 통해 말씀하신 기록들이 많기에 때로는 다윗의 말이 메시아의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 한 가지 예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시 22:1)라는 말이다. 물론 이 시편을 쓴 것은 다윗이다. 그러나 인간 다윗을 통해 말씀하신 것은 메시아, 메시아의 영, 하나님의 태고의 지혜이시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또 다른 성경 말씀은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라는 구절이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태고의 영원한 지혜’라는 히브리 교리와 신약성경을 연결 짓게 된다.

사도 바울은 이 히브리 교리와 신약성경 사이의 연결성 때문에 히브리 교리가 헬라 사상과 다르다고 가르쳤다. 다른 사도들은 그렇게 가르칠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바울은 그렇게 가르쳤다. 히브리인의 성경과 헬라 철학을 모두 공부한 박식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도들은 구약성경 외의 것을 다룰 수 없는 입장이었지만, 바울은 헬라 사상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2-24)라고 말했다. 또한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라고 말했다.

고린도전서 1장에 이어 2장에서도 그는 히브리인들의 메시아 교리와 헬라 사상을 날카롭게 구별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 2:1-5

사도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던 당시, 학문의 도시였던 고린도에는 철학자와 지식인과 학자가 많았다. 바울은 그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지, 또 그들의 헬라 사상과 히브리인들의 지혜 교리를 어떻게 대조시켜야 할지를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 편지를 썼다.

철학과 기독교를 동일시하지 말라

현재 유행하는 철학의 뿌리가 아무리 오래 되고 고상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철학과 기독교를 동일시하려고 시도할 때 기독교는 즉시 능력을 잃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라. 사도 바울은 이런 식의 동일시를 시종일관 거부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로고스’를 단지 ‘말’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헬라 사상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도 요한과 마찬가지로 바울도 하나님의 로고스, 즉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대 헬라인 중 어떤 이들이 때로 하나님의 로고스에 꽤 가까이 갔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그들의 인간적 이성과 논리의 한계에 갇혀 있었다. 반면, 히브리인들이 가르친 지혜는 어떤 문화보다도 큰 것이었기에 어떤 사상 체계 안에 갇힐 수도 없고 설명될 수도 없었다.

지혜가 큰 소리로 외치는데
그 말이 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가치 없는 일인가?

_ 아이작 왓츠 (Isaac Watts)
<지혜가 큰 소리로 외치는데>

 

† 말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요한복음 1장 1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 잠언 9장 10절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 고린도전서 2장 7절

† 기도
영원한 지혜이신 하나님, 당신을 영화롭게 할 그 지혜를 오늘 제 마음에 말씀해주십시오. 기쁜 마음으로 인간적인 제 지혜를 버리고 당신의 지혜를 의지합니다. 제 지혜와 지식의 한계에 막혀 멈추지 않게 하시고, 그 한계를 넘어 당신의 거룩한 존전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세상에서 유행하는 철학과 기독교를 동일시하려 할 때 기독교는 즉시 능력을 잃고 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성경 말씀(시편이나 잠언, 전도서)을 읽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지혜를 만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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