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그의 복음전도가 인간의 지혜에서 나오지 않고 성령과 능력의 나타남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로써 그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오해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전 2:5-7

또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1-24

우리는 바울이 여기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유대인은 능력을 원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원하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지혜에서 흘러나왔다

사도 바울이 그의 글들에서 줄곧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기독교는 세상의 일반적인 것들과는 달리 신적(神的)인 것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지혜에서 흘러나왔다. 기독교는 인간의 머리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머리로 설명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주변 사람들이 기독교로 착각하는 것들이나 교파주의 같은 것들은 심리학이나 철학으로 설명될 수 있겠지만, 기독교는 그럴 수 없다.

바울은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지혜가 인간의 지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지성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의 마음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면 인간의 마음에 의해 설명될 수 없다. 심리학이 기독교를 설명하려 한다면, 그것이 설명하려는 것은 성경적 기독교가 아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종종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 비유들은 선택받은 자들, 즉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비를 하나의 비유라고 본다면, 이 비유는 인간의 지성에 의해 전혀 설명될 수 없고, 오직 성령께서 그 마음에 빛을 비추어주실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오직 영원한 지혜와 능력에 의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 신적 지혜와 능력 없이도 종교나 교단을 성장시킬 수는 있다. 영원한 지혜와 능력이 없어도 교회를 세우고 수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성장시킬 수는 있지만, 참된 기독교를 성장시킬 수는 없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기독교 신앙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런데 이것은 영원한 지혜와 능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 주님은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눅 21:15)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이것이 단지 신앙적 격려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분이 이 말씀을 하신 얼마 후에 일어난 일을 기록한 사도행전 6장을 읽어보라. 여기에서는 스데반이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행 6:10)라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그리스도인들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영원한 지혜(하나님의 창조적 지혜)의 세례를 하나님께 받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교회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

“소경은 손에 랜턴(lantern)을 들고 있다 할지라도 도랑에 빠질 것이다. 소경의 손에 있는 랜턴은 낡아서 못 신는 장화와 다를 바 없다.”

이 속담에서 말하는 것처럼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랜턴이 소용없다.

이 진리를 교회에 적용해보자. 교회에 온갖 종류의 교사와 교육프로그램, 온갖 종류의 성장 전문가와 성장 프로그램이 있다 해도 눈이 없다면 그 교회는 도랑에 빠질 것이다. 이 창조적 지혜가 없는 교회는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교회 안의 어떤 이들은 학문에 의존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때 학문은 의안(義眼) 같은 것이다. 의안은 눈 같은 느낌을 주고, 겉모습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눈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시각장애인에게 시력을 줄 수는 없다.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는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방향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방향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연예오락이고, 다른 한 방향은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문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새 복음주의이다. 지혜와 능력으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을 학문으로 이루려는 노력은 의안으로 앞을 보려는 것과 같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영원한 지혜(하나님의 창조적 지혜)의 세례를 하나님께 받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교회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

† 말씀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 고린도전서 1장 24절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 고린도전서 2장 5절

† 기도
하나님, 많은 교회들이 갖가지 프로그램들과 성장 전문가들을 통한 세미나로 성장을 갈구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창조적 지혜임을 고백합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과 같은 현시대의 교회가 본질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십시오.

† 적용과 결단
의안은 눈처럼 보일 뿐 앞을 볼 수 있는 시력을 주지는 못합니다. 우리의 복음이 의안이 되지 않기를,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기를 이 땅의 교회를 위해 중보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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