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랑한다면, 성숙한 사랑의 특징 7

사랑한다면 모든 게 허용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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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나는 아홉 살짜리 아들에게

“너는 내가 네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알아요.”
“어떻게 알지?”
“아빠가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늘 말씀하시잖아요.”
“그렇다면 내가 말을 할 수 없게 되어 네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없으면 어떻게 되겠니? 그래도 네 엄마는 내가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그럼요. 아빠가 글로 써서 엄마에게 알려주시면 되잖아요.”
“좋아. 그러면 내가 두 팔을 잃었는데, 발로도 글을 쓸 수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래도 엄마가 알겠니?”
“물론이죠. 제가 엄마에게 말해드리면 돼요.”
“그래? 그렇다면 내가 네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을 너는 어떻게 알겠니?”
그 애는 한참 대답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아빠가 엄마를 대하시는 태도를 보면 알죠.”

그 애가 이 대답을 내놓는 데는 약 5분이 걸렸다. 하지만 결국 그 애는, 사랑이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진짜 사랑한다면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말은 사실인가? 여기서 많은 사람들은 착각에 빠져든다. 우리는 사랑이 모든 것들을 정당화한다고 강조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지금은 당신의 행동의 동기가 사랑이라면 모든 것은 허용된다는 세상이다.

상황윤리에 따르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는 선(善)도 없고 악(惡)도 없다고 한다. 일단 상황이 벌어졌을 때 당신의 행동의 동기가 사랑이라면 당신의 행동은 정당화된다. 윤리적 문제에서 당신이 사랑을 베풀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상황윤리를 믿는 사람들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8,10)는 말씀을 즐겨 인용한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 당신이 사랑의 행동을 한다면 당신은 율법을 성취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남녀 간의 데이트를 예로 들어보자. 상황윤리를 받아들인 여성은 “나는 그 남자와 성관계를 갖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를 원했고, 사랑을 원했다. 그는 간절했다. 내가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의 성관계는 옳은 행위였다”라고 말할 것이다.

상황윤리주의자들이 “사랑의 행동을 실천하라”고 말하면서도 그 ‘사랑의 행동’이 무엇인지를 정의하지 않는 것이 상황윤리의 문제점이다. 그러므로 결국 어떤 상황 속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이기적인 것을 행하면서 그것을 ‘사랑의 행동’이라고 미화하게 된다.

성경은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바로 다음 절은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고 말한다.

정리하여 말하자면, 성경은 어떤 상황에서든 사랑의 행동을 실천하라고 말하면서 그 사랑의 행동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나는 “내게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올바른 사랑이어야 한다. 올바른 사랑은 참사랑의 행동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랑이며, 정확한 지식에 기초한 사랑이다.


성숙한 사랑의 특징들

나는 다양한 국가들과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들이 내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이다.

우리는 언제나 사랑을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일시적으로 열병처럼 찾아오는 것도 사랑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래 가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풋사랑도 사랑이지만, 계속 풋사랑에 집착하면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내가 사랑하고 있는가?”라고 묻지 말고 “나의 사랑이 성숙한 사랑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예를 들어, 결혼 생활에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은 “내가 평생 성공적인 부부관계를 이끌고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나의 사랑이 성숙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성숙한 사랑의 특징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성숙한 사랑은 우리의 존재의 일부분이 아니라 우리의 전인(全人)과 관련을 맺는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상대방의 유머 감각, 성적(性的) 매력 또는 신앙심 같은 일부분에만 매력을 느낀다.

육체적 매력이나 장점을 사랑의 기초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 아리조나 주립대학교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놀랍게도 부부가 육체적 관계에 투자하는 시간은 그들의 전체 시간의 0.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적 매력을 모든 부부 관계의 기초로 삼으려고 한다. 그들은 성(sex)이 모든 것들을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 같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심지어 성숙한 사랑은 영적인 것 하나에만 기초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나도 예수님을 사랑한다. 우리는 함께 교회에 가고 기도하는 것을 즐긴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빌리 그래함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나도 예수님을 사랑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분과 내가 결혼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우리의 존재의 일면(一面)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그것은 전인(全人)과 관계된다.

둘째, 성숙한 사랑은 ‘서로 존경하고 존중해주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의 성실성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숙한 사랑은 “만일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이러이러하게 했을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숙한 사랑은 ‘주는 것’이다. 성경은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레 19:18 ; 눅 10:27). 또한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라”(엡 5:28)고 가르친다. 자신의 행복과 안전과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능이다. 만일 다른 사람의 행복과 안전과 발전을 자기의 그것들만큼 중요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숙한 사랑의 소유자이다.

셋째, 성숙한 사랑은 헌신과 책임감에서 나타난다. 어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 관계 속에서 상대방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책임을 거론하기 전에 먼저 나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성숙한 자세이다. 부부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들은 이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만일 결혼 전에 이런 책임감을 갖지 못한다면 결혼 후에도 가질 수 없다.

넷째, 성숙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기쁨을 느낀다. 성숙한 사랑은 상대방과 떨어져 있으면, 함께 있기를 갈망한다. 떨어져 있을 때 사모하고 함께 있으면 기쁨이 배가(倍加)되는 것이 성숙한 사랑이다.

다섯째, 성숙한 사랑에는 역동적 성장과 창조성이 나타난다. 그것은 정체되어 있지 않다. 사랑은 성장하지 않으면 사라지게 마련이다. 사랑이 성숙할 때 우리는 그것을 상대방에게 표현할 방법들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런 표현 방법들을 찾을 때 우리는 창조적이 된다. 예를 들면, 나의 아내는 발렌타인데이 카드를 만들 때 매우 창조적인 솜씨를 보여준다.

여섯째, 성숙한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본다. 미성숙한 사랑은 맹목적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완벽하다고 착각한다.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성숙한 사랑은 이 사실을 알고 인정한다. 성숙한 사랑의 소유자는 상대방의 단점들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받아들인다.

일곱째, 성숙한 사랑의 소유자들은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대를 향해 마음을 연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신뢰하고 서로 솔직해지며, 마음속의 가장 깊은 비밀이라도 털어놓을 수 있다.

성숙한 사랑에 도달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의 성숙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가진 후에 결혼해야 한다.

내용 발췌 = 기독교교양 : 조시 맥도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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