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묻는 태도’를 갖기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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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공개수업, 번쩍번쩍 손 잘드는 아이들 속에서 올릴까 말까 꼼지락 거리는 아이를 보며 속이 터졌습니다. 질문도 잘하고 답도 잘하고 선생님과 소통하면 좋겠는데.. 아이고. .답답해라… 모르는게 있으면 질문하면 얼마나 좋아…

‘답답하니?’ 주님이 저에게 물어보시는것 같습니다. 다 아는것 같고 이미 해본것 같아서 묻지 않고 나아갔던 시간들… 내 소견에 옳은대로 살았던 것을 회개 하게 됩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마노아처럼 자녀를 내 소견에 옳은 대로가 아닌 주님께 인도하심을 받는 부모가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묻는 태도’를 갖기 원하신다.

마노아가 아내를 통해, 하나님이 아기를 주겠다고 하셨다는 그 놀라운 소식을 듣자마자 보인 반응을 보라.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_삿 13:8
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_삿 13:11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_삿 13:12
계속 질문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 시대를 특징짓는 말씀은 사사기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 말씀이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_삿 17:6 ; 21:25
타락한 사사 시대는 하나님께 묻지 않는 시대였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는 것이다.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다.

그런 시대에 마노아는 계속 하나님께 질문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가? 타락했던 그 시대 사람들처럼 질문 없이 그냥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마노아처럼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질문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여기에서 심각한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당신의 삶에서 마노아가 보여주는 겸손히 질문하는 모습이 대체 언제부터 사라졌는가? 언제부터 ‘나는 성경을 잘 아니까, 나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아니까’ 내 소견이 항상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게 되었는가? 우리가 진짜 크리스천이 되려면 이것부터 회복해야 한다.
내 생각이 100퍼센트 옳다고 생각되는 그것조차도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하나님, 제 생각에는 이게 옳은 것 같은데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여 뉘시오니이까”라고 질문했고, 그 질문에 예수님은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라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바로 이어서 바울은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질문했다. 이 질문으로 시작된 것이 바울의 신앙생활이다.

기도는 내 뜻에 맞는 목표 하나 정해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다. 마노아의 기도의 모범을 보라.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_삿 13:12
자녀를 위해 이렇게 기도해보았는가?
혹시 내 자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간섭하지 마시고 그저 내 기도제목에 응답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아내는 것이 기도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이 가슴 아픈 오해가 한국교회를 탐욕스럽기 짝이 없는 괴물 같은 공동체로 만들어버렸다.
기도는 우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 앞에 내 생각, 내 뜻은 내려놓고 겸손히 질문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삶을 여쭙고, 할 일을 여쭙고, 나아갈 방향을 여쭈어라. “하나님, 제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겁니까?” 우리가 다 하나님께 이렇게 질문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길 바란다.  그래서 가장 기초가 가장 튼튼한 삶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바란다.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이찬수 p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