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연극심리상담 #12] 미움을 없애기 위한 3가지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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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가명, 초등학교 3학년)야, 조금만 조용히 해 줄래? 네가 계속 움직이면서 떠드니까 도저히 설교를 할 수가 없어. 네가 매번 이러니까 전도사님은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

저는 화가 나는 걸 꾹 참고 이야기합니다. 웃으며 따뜻하게 말해주고 싶지만 이미 그럴 수 있는 단계는 지났습니다. 1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는 아이, 선호는 저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입니다.

선호가 처음부터 예배를 방해했던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인가부터 불쑥 불쑥 질문을 던졌고, 일일이 대답할 수 없어 개인적인 질문은 예배 후에 하자고 하면 삐치거나 과한 행동으로 관심을 끌려 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동생들은 그런 선호의 행동이 재미있다며 따라했고, 선호는 더 심한 장난을 쳐서 예배시간의 말썽꾸러기가 되었습니다.

선호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고 느껴졌기에 교회에 제일 먼저 오는 선호를 따로 불러 말을 걸고 안아주며 마음을 전했습니다. 둘이 있을 때는 천사같이 굴어 ‘오늘은 괜찮겠구나.’ 마음을 놓지만 예배가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말썽쟁이가 되는 선호.

칭찬을 해주면 나을까 싶어 찬양 시간에 선호가 입이라도 뻥끗해주는 날은 엄지척 하고 둘만 아는 신호를 보내거나 모두가 듣도록 큰 소리로 칭찬도 해줬지만 그런 날은 오히려 말썽이 더 심해졌지요.

못 본 척 해보기도 하고, 그만하라고 따끔하게 혼내 보기도 하고, 이런 저런 방법을 써 봐도 달라지지 않는 선호가 답답했습니다.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사람들의 관심에 목이 말라, 부정적인 관심이라도 받고 싶어 합니다. 긍정적인 피드백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고, 들을 자신도, 듣기 위해 힘들게 노력할 의지도 없습니다. 선호가 예배를 잘 드리는 날엔 선호의 이름이 거의 불려 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선호가 예배를 잘 드리구나. 정말 멋지네.”하고 한 두 번 칭찬받을 수는 있지만 칭찬이 몇 번 씩 반복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일으키는 날엔 다릅니다. 저는 몇 번씩이나 선호의 이름을 부르고, 친구들은 쳐다보고, 선호가 중심에 서게 되지요.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았던 어느 날 ‘아, 오늘은 선호가 안 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본 받아 사랑해야지.’라고 다짐하지만, ‘선호는 지금 마음이 건강하지 못해서 그래.’라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제 마음은 따라주지 않는 것이었어요.

어느 날 00교회에서 교사대학을 진행하면서 <나는 ~~~~한 학생이 힘들다.>로 잠시 이야기를 나눠 보시라고 했습니다. 그 시간 선생님들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을 보며 ‘공교육 교권도 무너지고 어른을 향한 기본적인 존경도 없는 이 시대에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얘기를 하는데 듣지 않고 핸드폰만 해요.” “너무 산만해서 뭘 할 수가 없어요.”

선생님들은 억울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이야기하셨습니다.

선생님들과 연극치료 작업을 하고 난 후 마지막으로 ‘나 전달법’을 배워보았습니다.

나 전달법

1. 상대의 행동에 대한 비난이나 비평 없는 서술
2. 그 행동이 나에게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
3. 구체적인 영향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느낌
4. 구체적인 요구사항
등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작업을 실제로 해보면 아동청소년들도 1번, 3번은 대체로 잘 찾습니다. 평상시에도 하는 말들이니까요. 하지만 2번은 ‘내 마음보기’라 찾기 어려워하는데 교회선생님들도 마찬가지셨습니다.

“네가 나랑 한 약속을 3번이나 지키지 않아서 나는 속상하고 화가 나.”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네가 핸드폰만 보니까 나는 너무 슬퍼.”등으로 표현하는데 그칩니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그 행동이 나에게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에 있습니다. 때문에 선생님들과 함께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찾아봤습니다.

그러다 저는 선호가 떠올랐습니다.

“네가 계속 움직이면서 떠드니까 도저히 설교를 할 수가 없어. 네가 매번 이러니까 전도사님은 (그 행동이 나에게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 때문에)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이 무엇인지 곧 떠올랐습니다.

“난 아동부 전도사이기도 하지만 나름 심리전문가인데 1년이 넘게 너의 부적응적 행동을 고치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서”라는 저의 자격지심이 숨겨져 있었죠. 그 생각을 하고 나자 이건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도 ‘구체적인 영향’을 찾아보고는 무척 놀라셨습니다.

“네가 나랑 한 약속을 3번이나 지키지 않아서 나는 (네가 나를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닐까 생각되어) 속상하고 화가 나.” “내가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네가 핸드폰만 보니까 나는 (네가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슬퍼.”

이 부분을 적고 소리 내어 읽으면서 상대의 행동이 싫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내 안의 어떤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미움을 없애기 위한 조언

첫째, 내 마음을 잘 살펴보세요. 어떤 경우는 나의 마음을 아는 것만으로 미움이 어느 정도 사라지기도 합니다.

둘째, 상대의 변화도 필요하다면 상대의 행동이 어떤 마음을 불러일으키는지 이야기하며 진솔한 대화를 시도해 보세요. 오해가 있다면 풀릴 것이고, 상대에게 다른 의도가 있었다면 이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요.

셋째, 이 때 중요한 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대의 의도라고 밀어붙이지 않는 것, 그리고 상대가 쉽게 변하지 않더라도 원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는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그런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는 걸 안다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겠지만 변화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저는 선호에게 괄호 속에 숨어 있던 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개인적인 저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선호는 예배를 방해합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밉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라도 관심을 끌려는 선호가 짠하여 한 번 더 눈길을 보냅니다.

내 속에 있는 나를 알고 조금씩 비워 내야만 예수님을 조금 더 닮아 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