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님의 말씀, 주님의 진리를 떠나면 큰일 난다. 

하나님은 인격이신 하나님이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진리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기에 충분한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목숨을 걸고 진리대로 산다면 다른 책임을 묻지 않으실 것이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5-17)

디모데후서 3장 1절에서 바울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라고 경고한다. 죄 된 인간과 그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는 시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고 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 시대가 그렇다.

사람들이 자기를 더 사랑하는 지독한 자아추구가 노골화된다. 절대 권위를 무시해버린다. 부모든 선생이든 나라든 다 싫고, 나 좋으면 좋은 것이다. 절대 진리란 없다. 지독한 자기추구, 자기만족, 자기쾌락, 다원주의, 인본주의, 상대주의가 충만해져서 나중에는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며 살겠다고 핵가족화하고 자기주장이 뚜렷해진 지금 이 시대가 과연 살 만해졌는가? 공동체는커녕 어느 누구에게 매이지 않아서 자유를 누리는가? 가정의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지고 우울증과 이혼과 자살로 수없이 고통하는 때가 이미 말씀처럼 이루어졌다.

수많은 지식과 볼거리가 넘쳐나고 무슨무슨 시대다, 디지털이다, 혁명이라고 하며 상상 못할 세계가 펼쳐진다고들 하는데, 교회는 어떻게 할 거냐고, 전통적인 교회와 예배 방식으로는 살아남지 못한다,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고 세미나와 기사로 온통 떠들썩했는데 그럼 우리는 얼마나 새로워졌는가?

그래서 교회가 새로워졌는가?

말세에 고통하고 복잡하고 변화무쌍하게 환경이 바뀌어갈 때 주님은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는 대책을 내놓으신다. “이렇게 어려운 말세에 고통하고 복잡한 때가 이르면 교회가 선도하며 나가야 된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더욱 꼴통이 돼라”라고 하신다.

14절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라”, 점점 더 성경 꼴통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놀랍다. 우리 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아주 다르다. 하나님의 지혜는 영원하시다. 세월이 변하고 유행이 바뀌어도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전도서 말씀처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 아무리 유행이 바뀌고 세월이 바뀌고 장난 수준이 좀 높아져도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죄인 인간은 안 바뀐다.

교회는 교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교회는 오락센터도 정신치료센터도 아니다. 유행을 선도하는 그룹도 아니다. 교회는 세상 어디서도 줄 수 없는 유일한 그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 교회가 전문으로 해야 할 일에 전문이 되어야 한다. 살아 계신 주님의 진리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신다.

“성경은 너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신다. 세상 어느 지혜도 어떤 종교 철학 이데올로기도,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영원한 구원을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직 이 성경의 계시 안에만 허락되어 있다. 성경에는 주님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원형의 생명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 지침, 모든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이 있다.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새 삶의 인생 지침서, 이 성경이 네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주의 사역을 한다는 사람이 다른 방법, 잡다한 지식은 많이 알면서 정작 성경을 모르고 복음을 모른다면 이런 기막힌 이야기가 어디 있겠는가.

주님은 하나님의 사역을 섬기고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주신 말씀이면 충분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성경에 전념하여 성경 안의 이치에 굳건히 선다면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성경은 그 표현이 단순하지만 성경의 진리는 가장 정확하고 완벽하다. 이 말씀에 대한 확신 없이 어떻게 무슨 근거로 교회를 운영하며 감히 사람들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겠는가? 모든 교회, 모든 영적인 것의 기반이 바로 진리요 말씀이다.

신령할수록 성령님이 강력하게 역사하고, 성령을 체험하고 교제하는 사람일수록 그 증거는 말씀과 진리에 더 밝아지는 것이다. 성령은 진리의 성령님이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언어를 통해서 자기 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성경 말씀이 살아 있는 주님의 말씀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당신의 마음을 보내셨다는 말이다. 다른 무엇보다 더 이 말씀이 주님의 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에 민감하고 성령과 동행하고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은사를 행하는 사람일수록 누구보다도 성경의 진리요 복음의 진리에 정확히 초점을 맞추고 주님의 진리에 더욱 분명히 서야 한다.

복음, “기쁨의 소식”이라는 말은 기쁨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기쁨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기뻐야 한다. 그래야 그 기쁨을 전하게 된다.

그러니까 괜히 사명감에 들떠서 펄펄 뛰지 말고 내 안에 진정한 기쁨이 올 때까지는 기쁘다고 말하지 말라. 기독교는 변호인을 둔 것이 아니라 증인을 두었다. 그렇다면 기다려야 한다. 사역한다고 좇아다니기보다 내 안에 기쁨이 이루어질 때까지 오히려 주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기쁨이 소리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될 때 누가 아무리 말려도 나가서 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순서가 바뀌었다. 그러니까 내용 없이 사역으로, 엉뚱하게도 자신을 위해, 야망 성취를 위해서나 가는 것이다.

주님의 진리는 죽은 진리가 아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 말씀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 디모데후서 3장 14절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 야고보서 1장 21절

† 기도
말씀이면 충분합니다. 모든 것의 기반은 진리의 말씀이면 충분합니다. 이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움직여 실제가 되게 하소서. 내 안에 참된 복음으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고, 그 기쁨으로 소리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진리이신 주님의 말씀만이 모든 교회와 사역, 영적인 것을 세우는 기반입니다. 성령을 체험하고 교제하는 사람일수록 말씀과 진리에 더 밝아져야 합니다. 그동안 말씀읽기에 소홀했다면 말씀읽기에 도전합시다. 말씀읽기를 하고 있다면 더 집중해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를 기도합시다.



낭독으로 만나는 테마
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