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터키를 방문할 때였다.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드디어 라오디게아 교회 터에 왔네.”
“왜 그렇게 오고 싶었는데?”
“성경을 읽으면서 정말 궁금한 게 있었거든.”
“그래? 뭐가 궁금했는데?”
“그동안 중보기도 강의를 하면서 라오디게아 교회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직접 보고 싶었어. 왜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 놓았다고 했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소아시아 일곱 교회 유적지 중에서 어느 곳을 갈지 결정해야 했다. 일곱 교회 터를 모두 찾아가기에는 일정이 맞지 않았다. 나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가고 싶었다. 다행히 터키 대표 관광지인 파묵칼레가 라오디게아 교회 유적지와 가까이 있어서 전체 일정도 잘 맞았다.

나는 교회 유적지에서 성경도 읽고 자료도 찾아보면서 다시 한번 라오디게아 교회에 관한 본문을 정리했다.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원독자 중심으로 설명을 들으니 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성령이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요한계시록 3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위의 말씀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익숙한 성경구절이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이 교회 밖에서 문을 두드린다고 하시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

‘예수님은 교회의 주인이신데 어찌하여 교회는 주인을 안으로 모셔 들이지 않고 밖에 계시게 한단 말인가?’

언뜻 보면 예수님도 이해하기 힘들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되는데 두드리고만 계신다. 주인이 자기 집 문을 열지 않고 다만 두드리고 계실 뿐이라니…. 노크 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그때 비로소 들어가시겠다는 말이다. 안에서 문을 열면 들어가서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시겠다고 하신다.

‘도대체 이것은 어떤 상황이며, 이 내용은 무슨 뜻일까?’
나는 오랫동안 묵상하고 공부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하나의 건물이 아니고 그 지역에 사는 성도들을 통칭한다.
그들은 교통과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에 살았다. 면직과 모직 산업이 발달한 도시에 살았기에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도 많았다. 돈이 많으니 주님을 의지할 일이 적었다.

그래서인지 신앙은 미지근했고, 기도의 열정은 식었다. 주님의 뜻을 묻고 말씀대로 살고자 했던 열정은 세상의 부요함 속에 묻혔다. 어느새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을 문 밖으로 밀어내버렸다. 그래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말씀하셨다.

“문을 열어라.”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는 문을 열지 않았다.

문을 여는 방법이 무엇인가? 성도는 무엇으로 주님을 자신의 삶 가운데 들어오시게 할 수 있는가? 바로 기도를 통해서다. 그러므로 문을 연다는 것은 곧 기도한다는 뜻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이 들어오시도록 기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내면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했다.

재물에 눈이 멀어 영적인 부요함을 볼 수 없었다. 벌거벗은 내면의 수치를 가릴 생각도 못했다. 주님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도 문을 열지 않은 까닭이다. 기도하지 않은 결과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기도하지 않는 교회였다(계 3:14-22).

기도는 예수님이 들어오시도록 문을 여는 일이다. 그분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의지하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든지 기도로 문을 열면 예수님이 들어와서 주인이 되신다. 그때부터 우리는 그분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행복한 교제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하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왕이 되신다. 그러면 우리 삶에 하나님나라가 임한다. 의와 희락과 평강이 넘치는 하나님나라의 가족이 된다. 예수님은 기도로 문을 여는 사람들을 통해 그분의 주권을 나타내시며, 왕으로 다스리시고, 그 뜻을 이루신다. 기도로 문을 여는 사람에게 그분의 은혜를 베푸신다.

그런데 왜 문을 열지 않는가? 그 이유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해 알 수 있다.
재물에 눈이 멀어 영적 벌거벗음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더 의지하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에도 어떤 사람들은 자기만의 생활 방식을 예수님이 오셔서 바꾸실까 봐 두려워서 기도하지 않는다.

목자 없이 위험을 만나는 양이
가장 위험하다.

그러나 “주님, 들어오세요. 제 삶의 주인이 되어주세요”라며 어려움 중에서 주님을 찾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주님께 빨리 문을 여는 사람은 언제든지 도움을 받는다. 환난이 선으로 바뀌는 은혜를 누린다.

환난이나 재앙을 만나면 도리어 기도하지 않고 더 멀리 도망가는 사람이 있다. 예수를 믿어도 소용이 없다면서 다른 신을 찾거나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러 간다. 예수님을 부르지도 찾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은 당연히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예수님을 향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주님은 밖에서 기다리신다. 주님은 도움과 은혜를 준비하셨지만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줄 수가 없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까지 문 밖에서 기다리신다. 이것이 누구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이유다. 기도는 예수님의 은혜를 향해 문을 여는 행위다. 우리가 그분을 향해 안에서 문을 열어야 한다.

 

† 말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 요한계시록 3장 15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 요한계시록 3장 19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 잠언 8장 17절

† 기도
문 밖에 기다리고 계신 주님, 기도하지 않고 더 멀리 도망간 저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도움과 은혜를 준비하고 저를 기다려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제 저의 문제를 갖고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의 그 큰 은혜와 사랑을 향해 기도로 문을 열겠습니다.

† 적용과 결단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주님의 뜻을 묻고 말씀대로 살고자 했던 나의 열정은 세상의 부요함 속에 묻히지 않았는지요? 나도 그들처럼 주님을 문 밖으로 밀어내버리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봅시다. 주님 앞에 기도하며 문을 엽시다.



낭독으로 만나는 테마
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