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롬 8:15,16)

인간은 관계적인 존재다.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신분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가 되었는가? 주인과 종의 관계인가? 아니면 심판관과 죄인의 관계인가?

주님이 새 생명 안에서 이루어주신 나의 신분은 바로 자녀의 신분이다.

자녀 된 생명이라는 말을 더 뚜렷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교 대비한 것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라는 구절에 나타난 종의 생명이다.

종이란 말은 당시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 시대의 종은 나귀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있다면 말을 하고 못 한다는 정도다. 나귀도 주인의 소유이고 종도 주인의 소유였다. 주인에게는 소유를 사고팔고 죽이고 살리는 권한이 있다.

아무리 주인의 사랑을 많이 받은 종이라도 종은 주인의 아들과는 다르다. 필요 유무에 따라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재산으로 처분될 수 있는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 그런 의미의 종을 말한다. 그러니까 종은 언제 주인의 마음이 변할지 항상 불안하고 두려워한다.

반면에 아들은 신분에 관한 한 무서워 떨 필요가 없다. 물론 부모가 속상하면 “너, 내 자식 아니야, 나가!” 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 진짜 나갔다가는 “나가란다고 진짜 나가?” 그래서 또 혼이 난다.

 이 신분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완전한 신분이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그러니까 우리의 영을 격려해서 큰 소리로 “아빠” 하고 부르짖게 하신다. 아빠는 친아버지를 부르는 말이다. ‘나 같은 놈이 자식이야? 난 틀렸어’ 하고 주저앉을 때 성령이 충동을 일으켜서 “아니야, 아빠야!” 하고 소리치게 하신다.

 이렇듯 하나님이 십자가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은 자녀 된 생명이다. 물론 이것은 십자가를 통과하여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에게 주어진 것이다.

예수님이 주인인 사람,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받았다는 것이다. 자녀의 권세는 그 어떤 것으로도 주고받고 사고팔 수가 없다. 자식이든 부모든 서로를 부인할 수가 없다. 잘해도 잘 못해도 언제나 부모와 자식이다.

 이 관계는 상황에 따라서 붙고 떨어질 수 없다. 어느 때는 화가 나고 속상해서 입으로 부인하는 말도 하지만 그런 말 한마디에 절대 끊어질 수 없다. 이것이 우리를 얼마나 안전하게 하는지 모른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5)

기뻐하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우리 안에 주신 이 새 생명, 복음 안에서 허락된 축복이 얼마나 안전한지, 천지가 다 없어져도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는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자녀 된 권세다.

자녀를 키우다보면 참 재미있다. 똑같은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손가락 크기가 다 다르듯이 아이들이 제각각 다르다. 그중에 막내가 재미있다. 옛 어른들 말씀에 내리사랑이란 말이 있다.

그 말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 똑같이 사랑하는데 부모로서 경험이 쌓이고 늦게 낳다보니 자식 생각하는 마음이 뭔가 더 애틋하다는 것이다. 보통 막내가 이런 부모의 심정을 귀신같이 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집 막내가 도대체 부모를 겁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첫 아들은 참 엄하게 키웠다. 나도 처음 부모가 되어 혈기방장하던 초보 아빠이다 보니 첫 아들이 완전 실험대상이 된 것이다. 내가 새벽기도 빠지면 죽는 줄 알고 자랐기 때문에 첫째도 갓난아이 때부터 엄마 등에 업혀서 새벽기도를 나가야 했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는 제 발로 걸어서 주님 앞에 나가야 된다고 해서 잠이 안 깬 채 어른 손에 매달려서 새벽기도에 나왔다. 만약 예배 시간에 울기라도 하면 어떻게 거룩한 예배를 방해할 수 있느냐고 단단히 혼이 났다.

큰애들을 야단칠 때는 정의감에 불타서 동정심을 억누르고 매도 들 수 있었는데, 막내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려고 근엄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가도 막내가 문을 열고 “아빠!” 이러면서 들어오면 갑자기 웃음이 나와 차마 때리기 어려웠다.

게다가 아이들에게 점수가 행복의 조건은 아니라고 가르쳤더니 우리 애들은 점수에 매우 자유로운데 막내는 더 심했다. 초등학교 때인가 한 번은 선생님이 사인을 받아오라고 했다고 시험지를 불쑥 내미는데 100점 만점에 20점 맞은 시험지였다.

그런데도 아무 거리낌이 없이 상장 내놓듯 당당하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야, 점수가 행복의 조건은 아니지만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했더니 자기가 오히려 충격을 받은 표정을 하며 “아빠…. 그게 얼마나 받기 어려운지 아세요?”라고 한다.

너무 당당해서 이제 내가 더 당황스럽다. 아무리 성적에 자유해도 이렇게까지 개기는 것은 잘못이고 상황은 분명히 야단맞을 만한 상황인데 너무 당당하니까 웃을 수도 때릴 수도 없어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턱 밑에 손을 모아 내밀더니 “아빠, 천 원만!” 그래서 “어, 천 원? 왜? 줘? 천 원…”

이러다가 아이 손에 천 원을 쥐어주니 문을 탕 닫고 나가버렸다. 순간 내가 속았다는 생각이 딱 들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아들의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 하나님께 그렇게 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떨어질 수 없는 신분이 이 자녀 된 신분이라는 것이다.

 

† 말씀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 갈라디아서 4장 6절

그런즉 누그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고린도후서 5장 17절

기도
하나님, 저를 자녀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천지가 다 없어져도 변함이 없고 흔들림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되고 은혜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십자가의 은혜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이 완전한 아들 됨을 감사합니다. 이 신분에 맞게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이 신분에 맞게 살기 위해 몸부림 치겠습니다.

적용과 결단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승리는 따 놓은 당상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연약한 마음은 수없이 흔들리고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으로 감사와 찬양이 끊이지 않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시다.



낭독으로 만나는 테마
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