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토크 #06] 나 한 사람을 위해서 신이 죽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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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인간이 연약하여 죄를 지을 때 동정은 하셔도 그냥 용서하실 수는 없다. 영원히 형벌 받아 마땅한 인간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싶어도 합법적인 대속제물이 없이는 사면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성경은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잠 16:6)라고 밝힌다.

그분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만족시킬 방법이 필요했다. 바로 그 방법이 선민 이스라엘에게 제사법으로 제시되었고, 그 제사를 완성한 분이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이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대속 제물이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는 온전한 속죄에 성경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첫째, 피를 흘려야 한다는 원칙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롬 6:23), 육체의 생명은 소화된 음식의 영양분을 온 몸에 공급하는 피에 있다. 음식이 잘게 쪼개져 몸 안에 들어가면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음식에서 영양분을 흡수한 피는 몸 곳곳을 돌며 각 세포를 살리고 노폐물은 거두어 밖으로 퇴출시킨다.

혈관이 막히면 온 몸이 다 막힌다. 이렇게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에 죄인의 생명을 구하려면 속죄제물은 반드시 흘릴 피를 가진 산 짐승이어야 했다. 죽은 짐승은 죄의 삯인 사망을 생명의 값으로 대신 지불해서 무효로 만들 수 있는 제물이 못 된다.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 17:11)

둘째, 대신 형벌을 받는다는 원칙이다. 죄를 지으면 원래는 당사자가 죽어야 하는데 다른 짐승이 그의 죄를 대신 지고 죽는 제사법이 허락되었다. 인간의 죄는 안수를 통해 그 짐승에게 전가된다(레 1:4). 이 대속제물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 1:29)

셋째, 완전한 제물만 용납된다는 원칙이다.

그 짐승이 흠이 있어서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무슨 흠이 있으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잡아 드리지 못할지니 (신 15:21)

예수님은 피 흘릴 육체를 가지되 죄 없는 온전한 인간으로 오셨다. 그분은 교수형이나 종신형으로 죽으실 수 없었다.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뚝뚝 흘리셔야 했다. 그 예수님의 죽음은 바로 모든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죽음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과 관련이 있다. 성경에서도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지워졌다고 분명하게 밝힌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정말 그럴까. 그래도 무언가 줄이 닿거나 그럴 법한 특정인만을 위한 희생은 아닐까’ 이렇게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여러 차례 거듭 확언해두셨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 2:2)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딤전 2:6)

이 ‘모든 사람’에 들 자격 조건은 딱 하나이다. 당신이 ‘사람’이기만 하면 된다! 선하든 악하든, 부하든 가난하든, 유식하든 무식하든 상관없다. 당신이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체를 친히 만드셨고 당신을 개인적으로 잘 아신다. 그분의 피조물 관리대장에 당신의 신상이 올라 있다. 모르신다면 어떻게 당신의 죄를 미리 낱낱이 기록해놓았다가 최후심판 날에 다 끄집어내실 수 있겠는가?

바로 그 죄를 예수님이 가져가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모르시는 사람의 죄는 가져가실 수 없다. 심판과 구원은 아담 한 사람과 예수 한 사람 간의 일대일 맞거래이다. 한꺼번에 ‘모든 사람’만을 거래 대상으로 삼기에 처음부터 개인적으로 그 거래 대상에서 누락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아담이 범한 죄를 짓지 않았지만, 대표성과 연합의 원리로 아담이 초래한 법정적인 정죄의 근거와 타락의 부패성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하나님 앞에서 아담은 한 사람으로서 전 인류였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롬 5:12)

그러나 첫사람 아담의 범죄와 불순종의 효력이 대표성을 갖고 온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둘째 아담인 예수님의 순종과 희생의 효력이 미친 영향과 똑같다. 내가 직접 관여하지 않았지만 아담의 불순종이 내게도 적용된 것처럼 예수님의 순종 또한 내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속죄의 대원칙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로 구원 여부가 결정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2)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 3:23-26)

예수라는 한 실존 인물의 역사적 죽음이 정말 지금 나에게도 적용될까? 이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십자가는 언제까지나 애매모호한 남의 이야기이다. 예수님이 액면 그대로 모든 사람을 위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정말 당신 한 사람을 위해 돌아가셨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니까 이 ‘전체집합’ 말고는 어떤 다른 공식이나 변수도 증거불충분이다. 각양각색의 모든 사람을 위한 십자가이기에 무한 감사한 것이며, 그 어떤 흉악한 죄인도 회개하고 믿으면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하나님은 그럴 의향도 없이 괜히 빈말 하시거나 기분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변덕쟁이가 아니시다. 그분의 약속은 한 번 공표되면 영영 중도변경되지 않는다. 이제라도 그 속죄의 약속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확고하게 보증하시는 구원을 선물로 받는다.

십자가가 바로 나 한 사람과 직접 연관되지 않는다면 모든 인류와도 연관되지 않는다. 뜬구름 잡듯이 그냥 ‘모든 인류’라고만 하면 막연하다. 나 한 사람이 곧 모든 인류라고도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이 바로 나 한 사람을 위해 돌아가신 게 아니라면, 그러니까 내가 예수님이 대신해 돌아가신 사람들의 목록에서 빠져 있다면 예수님은 실질적으로 그 어떤 사람을 위해서도 돌아가신 게 아니다.

나 하나가 없으면 모든 인류도 없기 때문이다. 고귀한 한 개개인이 합쳐 모든 인류가 된다. 그래서 이 문제에 관한 한 하나님께는 나 외에 다른 특정인이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 이 사실을 믿은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죽음 이후에 내 죄에 대한 심판이 진행될 것이라고 불안해하거나 의심할 필요가 없다. 복음이 정말 좋은 소식인 이유는 바로 이 엄청난 속죄의 은혜 때문이다.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롬 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