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노인팅 찬양과 묵상 #03] 내가 버린 십자가 다시지고(어노인팅 예배캠프 2017) by 최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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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십자가 다시지고”의 작곡 과정을 회상해보았습니다. 작년 가을 무렵 ‘다시 생각해보는 제자도’를 주제로 ‘2017 어노인팅 예배캠프’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예배 인도를 준비하고 선곡하는 과정에서 우선 ‘제자도’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도서와 설교, 정민영 선교사님의 강의를 살피며 제자도 의미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명확하듯 제자도 의미 또한 선명하였기에 선곡 과정도 순조로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선곡을 위해 찬양악보집과 음원을 토대로 노래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제자도를 담아낸 곡들이 많지 않아 당황했습니다.

기대했던 것처럼 선곡 작업이 쉽게 풀리지 않아 고민 끝에 작곡을 시도했습니다. 제자도 의미가 명확하고 선명하기에 곡에 담을 내용은 뚜렷했습니다. 그러나 이조차도 무엇 때문인지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가사를 움켜지며 며칠을 전전긍긍(戰戰兢兢) 하다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도’라는 단어를 헤집어 의미를 전달하는 노래를 만들 것인가? 혹은 ‘제자도’라는 단어로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하나님 사랑, 그 가치와 의미를 선택하고 따르는 내가 되길 노래할 것인가?

두 질문 앞에 멈춰 많은 시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전자(前者)는 타인에게 복음과 제자도를 신학 구조로 조리 있게 설명하고 그리스도가 구원자 이심을 알기 바라는 가사를 담은 노래라면, 후자(後者)는 저 스스로가 그리스도를 단순한 구원자로 깨달아 영접하는 것을 넘어, 내 주권과 소유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넘겨드리는 선택과 결단을 노래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옳다고 말할 수 없지만 선택하는 과정이 매우 힘들고 불편했습니다. 돌아보면, 후자를 선택할 때 ‘복음’과 ‘제자도’를 제 삶에 비추어 보게 되는 것인데, 이 안에서 드러나는 제 영혼의 혼탁함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노래에 담겨질 고백이 나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로 이끌어주길 기대하며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제자도의 의미를 찾아 꺼려지던 단어와 문장을 조합하며 가사를 써 내려가니 역시나 마음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단순한 이해를 넘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의지를 주님께 맡기고 세상 가치를 역행할 때 따르는 대가를 감당하는 것임을 알기에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거친 이 세상에서
뒤틀린 가치 속에
복음의 의미를 찾아간다
허망한 세상에서
공허한 가치 속에
십자가 의미를 따라간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한 나의 선택과 그 대가는 무엇인가?” 어쩌면 세상은 복음 없이도 맑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공허하고 허망한 메시지를 쏟아붓습니다.

거칠고 뒤틀린 가치가 난무합니다. 세상 가치는 오늘의 유익과 만족을 주지만 결국, 영생 없는 존재로 타락시킵니다. 그래서 나의 유익과 만족을 버리고 내 소유주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 스스로 자신을 변혁의 자리로 올려놓아야 함에도 반복해서 버려왔던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십자가의 가치를 다시 선택하는 길로 저 자신을 옮기고자하는 마음으로 이 곡을 작곡하였습니다.

 

나의 유익과 만족을 버리는
주께 생명과 영혼을 드리는
그 길을 한번 더 선택한다

 

‘종교인이 아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 2017년 어노인팅 예배캠프를 통해 선포되었던 주제 입니다. 제게 밀려온 고민은 아마 이 글을 읽게 되실 많은 분들께도 동일하게 해당하는 무게일 것입니다. 말처럼 쉽지 않지만 복음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함께 살아가길 기대합니다.

 

내가 버린 십자가 다시 지고
결코 시들지 않는 주의 영광 위해
내가 놓친 진리를 다시 잡고
절대 변하지 않는 주의 약속 믿어
예수 따라가리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4~35)

글 : 최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