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아내가 조용히 불렀다. 무서웠다. 그녀 선에서 막기에 어려운 심각한 일이 생긴 것만 같았다. 두렵고 긴급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말할 때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20년을 같이 살면서 아주 드문 일이었다.
“왜?”
“임신이래….”
정적이 흐르고,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아, 어떻게 하지? 사실이 아니었으면….’

언제나 힘든 일은 예측할 수 없이 왔다. 갑작스럽게. 그것이 제일 무서웠다. ‘아내가 이 말을 하기까지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첫아이를 기르면서 우리는 아이를 기르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다. 발달이 늦는 아이를 돌보며 병원과 센터를 다니면서 치열하게 배웠다.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두 아이가 커서 부모의 품을 벗어나려는 시점에 셋째 임신이라니! 마치 제대하고 나서 다시 입대한 것 같았다. 마음이 복잡하지만 일단 아내를 안고 믿음으로 기도했다.

“주님, 우리가 믿음으로 감당하기 원합니다.”

강의를 하러 집에서 나와 전철을 기다리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 만나서 평생 고생이네. 여보, 미안해.’ 한참 울고 난 후에 마음을 일으켜 세웠다.

‘아내를 보호하고 가정을 지켜야 한다. 믿음으로 감당해야 한다. 막막하지만 그래도 감당해야 한다.’ 마음을 굳게 먹고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집안일을 도맡았다. 아내는 두 달여를 누워서 지냈다. 의사가 누워있어야 한다고 했다. 두 달이 지나자 조금 움직일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아내가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임신 초기에 하혈이 있었고, 중간에도 잠깐 그런 상황이 있었다. 이번에도 금세 좋아질 거라 생각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 금방 끝날 거라며 나를 안심시키고 진료실로 들어간 아내가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 나왔다.

“여보, 바로 큰 병원으로 가야 한대요.”

병원 관계자와 구급차를 타고 아주대병원으로 갔다. 병원은 낯설고 힘든 곳이다. 두렵고 힘든데 충격적인 소식이 쉽게, 아무 느낌 없이 전달된다.

산부인과 의사는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왜 앉아있냐며 누우라고 했다. 아이가 바로 나올 것 같다면서. 내진을 하더니 5개월인데 아이 발이 만져진다고 했다. 의사의 표정이 아주 비관적이었다.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염두에 두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산모도 위험하다면서 서울에 가서 아이가 빨리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수술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출산할 수도 있으니 내게 결정하라고 했다. 여기서 아이를 낳을 것인지 서울로 갈 것인지. 나는 아내의 손을 잡은 채 병실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응답은 오지 않고, 긴급한 두려움이 나를 덮었다. “여보,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아내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빨리 결정해야 하는데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었다. 이게 좋은 결정이 될지 자신이 없었지만 나는 믿음으로, 그렇지만 거의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여보, 서울로 갑시다!”

아내도 아이를 보호하는 쪽으로 하자고 했다. 의사 한 명이 동승해서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아내의 손을 잡고 기도하며 1시간여를 달려 신풍역에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

아내는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뭐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함께 울 것 같아서 아무 말도 못하고 눈빛으로만 힘내라고 말했다. 그리고 종일 봉지에 싸서 들고 다녔던 아내의 신발을 안고 수술실 벽을 붙잡고 울었다.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들이 갑작스럽게 나를 덮쳤다. 내 시험에 아내가 속수무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를 만나지 않았으면 평생 편하게 살았을 텐데….’

그때도 예수님이 내 옆에 계셨을 텐데, 그분과 함께였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시험 속에서 예수님을 찾지 못하고 홀로 시험에 맞서고 있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히 2:18)

예수님은 시험을 당하셨다. 이 말씀이 내 시험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말씀 그대로 이해하면 예수님이 시험을 겪으셨고 그것을 이기셨기에 시험을 당하는 자들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잘 알고 계시며, 우리가 이기도록 도우실 수 있다는 것 같았다.

그런 이해가 합당한가? 어쩐지 내 시험과 예수님의 시험이 동일선상에서 이해되지 않았다. 나를 도우신다는 것도, 내가 도움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얼른 와닿지 않았다.

내 문제에 예수님이 얼마나 도움이 되실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과 마음을 아시고, 따뜻한 마음으로 찾아오시는 그분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수님의 도움은, 어려울 때 그분이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아무도 함께할 수 없는 상황과 시간에 찾아오셔서 함께 계신다. 물론 내가 느끼지 못했어도 그분은 함께 계셨다. 그러나 내가 알고 느꼈다면 더욱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두려움이 상처로만 남지 않고, 인생에서 가장 예수님을 절실하게 가까이 만나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어려울 때도
예수님은 함께 계신다

문제가 안 생기도록 예수님이 도와주시고, 문제가 생겨도 즉각 해결해 주시면 좋겠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도움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진정한 도움은 내 시험에 대해 깊이 공감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이해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그분은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상황과 마음인지 아시고 깊은 이해로 같이 있어주신다. 좋으신 예수님이 나를 아시고, 내 시험을 아시고, 나와 같이 계신다. 그 예수님을 만나고 느낄 것인가 아니면 나 혼자인 것처럼 있을 것인가?

전철을 기다리면서, 수술실 벽을 붙잡고 혼자 울 것이 아니라 예수님 옷자락을 붙잡고 울었어야 했다. 두렵고 미안한 눈물이 아니라 그분을 의지하고 위로받아 흘리는 눈물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분명 예수님이 주시는 위로가 있었다. 내가 느끼지 못했지만 그분은 여전히 내 곁에 계셨다.

예수님의 도움은 나와 같이 우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도움을 받는 것은, 나를 아시고 내 시험을 아시는 예수님과 함께 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예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분은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시고, 두렵지 않게 해주시고, 문제도 해결해주신다. 늘 배우는 것이지만, 어려울수록 예수님에게 가야 한다.

† 말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야고보서 1장 2-4절

† 기도
주님, 어려움 앞에 서 있다보면 주님이 나를 도우신다는 것이 마음에 와 닿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려움 앞에 온전히 저만 두지 않고 옆에서 함께 울고 계신 주님이 계셨다는 말씀에 눈물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더 이상 저 혼자 울지 않겠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겠습니다. 어려울수록 주님 앞에 더 나아가겠습니다.

† 적용과 결단
주님은 시험과 어려움 앞에 서 있는 나에게 찾아오셔서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내 옆에 계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 그분 앞에 업드립시다. 그분만이 나의 생명이며 문제의 해결책이심을 고백하기를 소원합니다.



낭독으로 만나는 테마
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